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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06년 2월, 대한민국은 아니 전세계는 제 20회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군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스포츠뉴스를 보며 대한민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었다.
"가츠야! 오늘 1500미터 결승전 몇 시에
하냐?"
"새벽 3시 30분이지 말입니다!"
"오늘 당직사관은
누군데?"
"2소대장입니다!"
"아나! 못
보잖아!
"어흐흑흑ㅜㅜ"
"올레!
금메달이다!
그랬다! 매일 밤 10시에 무조건 취침을 해야되는 우리들은 항상 생중계를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상과 동시에 우리들은 스포츠뉴스에
집중하며 새벽에 있었던 결과를 확인하며 울고 웃었다. 비록 생방송으로 생생하게 응원하지는 못하였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당시 우리 부대 앞에는 용호정이라고 불리는 큰 호수가 있었다. 여름에는 호수 주변에 개념없이 자라는 잡초로 인해
제초작업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겨울이 되면, 호수가 깡깡 얼어붙는다. 천혜의 스케이트장이 되는 것이다.
매년 겨울이 되면 그
곳에서 빙상대회를 개최하곤 하였다. 동계올림픽이 한창인 당시에는 더욱 신경써서 대회를 준비하였다. 각 소대마다 대표선수를 한 명씩 선발하여 중대팀을 꾸려 집중 육성에 들어갔다. 물론,
우승을 하면 포상휴가가 나오니 꽤나 메리트가 있었다. 상병이었던 나는 선수 선발 명단을 작성하였다. 마음같아서는 내가 직접 출전하고 싶었지만,
스케이트를 전혀 타지 못하였다.
"어디보자! 자기가 사회 있을 때, 스케이트 좀 타봤다!
거수!"
"썰매
말고! 스케이트! 스 케 이 트 몰라?"
어쩜 하나같이 여자친구가 없어서 스케이트장 구경도 못해 본 녀석들 마냥, 한 명도
거수하는 인원이 없었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이럴 때는 나의 감을 최대한 발휘하여 쓸만한 녀석으로 뽑아야 된다.
평소
운동신경이 좋고, 넘어져도 아파하지 않을, 아니 마음대로 뽑아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녀석이 필요하였다. 4개월 후임인 노일병이 적격이었다.
"노일병 너 밖에 없구나!"
"가츠상병님! 저 한번도 타본 적
없습니다!"
"괜찮아! 그냥 냅다 뛰면 돼!"
경기방식은 간단하였다. 중대마다 중대장
포함 간부 3명과 병사 4명, 총 8명이 한 팀을 이뤄 8바퀴를 먼저 돌면 된다. 어차피 잘 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승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올림픽 결승전 못지 않았다.
축구의 군대스리가가 악명 높은 이유는 거친 플레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강한
승부욕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하는 것은 모두 전투이다.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면
죽음 뿐이다!"
웃자고 하는 게임에 다들 목숨 거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느덧 용호정 주변에는 자신의 중대를 응원하는 병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 올랐다.
출발선상에 대기하고 있는 노일병과 눈이 마주쳤다. 우수에 젖은 그의 눈동자는 나로 하여금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내심 잘 타지도
못하는 노일병을 등 떠밀어 출전시킨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군대에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억울하면 군대 일찍 오지 그랬어?"
"준비!
탕!"
출발신호를 알리는 총성과 함께 선수들은 총알과 같이 뛰쳐나갔다. 마치 100M달리기라도 하듯이 힘차게 질주를 하였다. 평소 운동신경이 좋은
노일병도 이에 질세랴 악착같이 질주하였다.
"오!
멋져!"
그래도 조금이나마 연습한 성과가 있었다. 선수들은 앞만 보며 더욱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근데 자세히
보니, 스케이를 타는게 아니라, 정말 뛰고 있었다. 뭥미?
"5중대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드디어 이어지는 커브, 사실 이 게임의 승부는 커브구간이었다. 다들 직진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커브구간에서는
확연하게 실력 차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명품
커브는 바라지도 않아! 제발 돌기만 하자!"
발군의 스피드로 선두권을 유지하던 노일병, 드디어 커브구간에
진입하였다. 사실, 스케이트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몸을 눕혀서 커브를 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니,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결국, 다들 속도를 줄여서 엉거주춤 커브를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노일병, 그는 이미 무아지경이었다. 자신이 국가대표인양 왼손을 빙판 위에 대고는 고난이도 커브를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오옷! 저 녀석! 설마? 스케이트 신동이었나?"
"커브는
아무나 도는 게 아니죠!"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였다. 이내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더니 용호정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신기한 거는, 뛸 때보다 넘어져서 미끄려지는 게 훨씬 더 빨랐다. 냉정한 중대원들, 아무도 부상을 걱정하지 않는다. 냉큼 일어나서
빨리 뛰어가라고 난리다.
"달려! 달려! 달려!"
우리들의 치어리딩을 받은 노일병은 다시 일어나더니 냅다 뛰기 시작하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 타는 게 아니었다. 뛰는 거였다. 그렇게 다시 직진코스를 쏜살같이 뛰어가더니, 어김없이 커브구간에서 시원하게 미끄러져 주는
퍼포먼스를 발휘하였다.
결국은 노일병의 몸개그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대는 우승하지 못하였다. 내심 아쉬웠지만, 다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경기하였기에 후회는 없었다. 나는 노일병에게 달려가서 궁디팡팡 세례를 해주며 수고하였다고 하였다.
"너는
마치 한 마리 치타 같았어!"
그렇게 우리만의 빙상대회를 모두 마치고 다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아직 사회는
동계올림픽 열풍이 한창이었지만, 우리들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혹한기훈련을 떠나야만 하였다. 영하 20도의 뼈 속까지 얼어붙는 강원도 산
속으로 말이다.
대한민국은
든든한 국군 장병들이 지키고 있을테니, 우리 선수들은 아무 걱정마시고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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