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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의 두 다리가 되어주는 지하철, 우리는 매일 그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보기만 해도 피곤해보이는 직장인과 학생, 때로는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아리따운 미녀까지 지하철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다. 하지만 지하철은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한번도 지하철을 탄 적이 없어!"
믿기지 않지만, 이런 사람들도 있다. 아니 아주 많다. 그렇다고 내가 타본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던, 나도 서울에 가게 되면 자연스레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근데 서울버스는 왠지 두려워!"
지하철은 마음껏 타고 다니면서 버스 타기는 왠지 꺼림칙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은근히 버스 타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방에 사는 소시민에게 서울버스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었다.
얼마전, 지하철역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메라 렌즈를 직거래로 팔기 위해 SLR클럽 장터에서 약속을 잡았다. 카메라 자체가 고가의 제품이다보니, 중고거래가 활발하였다. 그러나 고가인만큼 대다수의 거래는 직거래로만 이루어졌다. 장터게시판을 보면, 정말 괜찮은 매물이 올라온다. 행여 누가 가로챌까봐, 빛과 같은 스피도로 예약을 하여도 어김없이 판매자는 서울시티즌이다.
"돈이 있어도 못 사는 더러운 세상!"
어김없이 댓글창에는 지방에 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컨트리맨들의 댓글이 빼곡히 달려있다. 자꾸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샌다. 각설하고 나는 서울에 와 있었고, 지하철역에서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쯤 오시고 계세요?"
"지금 명동이예요! 금방 도착할 듯 합니다!"
"10분이면 오시겠군!"
먼저 도착한 나는 개찰구를 나와서 지하철역을 살펴보았다. 문득, 어린시절 게시판에서 본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용산에 게임시디를 거래하러 갔다가 구매자로 나온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고, 돈 뺏기고, 게임시디마저 뺏긴 한 소년의 처절한 글이었다.
설마? 나도 당하는 거 아냐? 군대까지 다녀 온 녀석이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위를 잘 살펴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주로를 확보하기위해 동선을 맞추고 있었다.
"무조건 감시카메라 앞으로 가자!"
혼자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역사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앞 쪽에 서 있던 낯선 사람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였다.
"뭐...뭐지?"
"학생! 이것 좀 봐주지 않겠나? 도통 눈이 침침해서 안보이네!"
위 사진에서 보면 가장 오른쪽에 있는 서울지하철 노선도였다. 그 앞에서 한 남성이 나를 부르며 애타게 도움을 청하였다. 사연인즉슨, 눈이 침침하여 노선도에 적혀있는 지하철 운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침 할 일도 없었기에 혼쾌히 다가가서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어디 가시는데요?"
"천안까지 가야되는데 도통 안 보여서 가격을 알 수가 있나!"
"천안이라?
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천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주요 지명은 그나마 자주 다녔기에 바로 찾을 수 있었지만, 천안은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지리적으로 아랫쪽에 있다는 것만 떠올랐다. 게다가 몇호선에 있는지도 몰랐다. 미로처럼 엉켜있는 노선도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훝으며 천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거짓말 안하고 진심으로 열심히 찾았다.
"빙고! 찾았어요! 보자! 2600원이네요!"
한참을 헤메이다가 결국 찾아냈다. 나는 보물섬이라도 찾은 마냥, 기뻐하며 옆에 서 있는 남성을 바라보며, 해맑게 외쳤다. 비로소 나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였다.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불안감!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나를 머슥하게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를 어째! 천원 밖에 없는데! 1600원만 주지 않겠나?"
"말...말도 안돼! 내가 지금 낚인건가? 존내 열심히 찾아줬는데! ㅅㅂ!"
그제서야 모든 게 이해가 되면서 순간 울컥하였다. 돈을 구걸하는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나를 속였다는 사실에 급불쾌하였다. 나는 노숙자를 향해 분노의 눈빛을 뿜어내고는 돌아섰다.
지금까지 눈치 하나만큼은 자신있었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속다니, 노숙자가 아니라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노숙자의 구걸 스킬에 감탄하였다. 나로 하여금 이토록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다니, 어느새 분노는 사라지고 쓴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축 쳐진 어깨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 설날도 다가오는데 착한 일 한번하자!"
물론,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결코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차라리 다른 곳에 기부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렇지만 그는 나에게 받을 자격이 있었다.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요즘들어 부쩍 멍해진 나에게 다시금 긴장을 하라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다시 돌아가 담뱃값이라도 하라고 쥐어주고는 지하철 입구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하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지목하였을까?
"설마? 그는 내가 촌놈인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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