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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낑낑대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출구로 나오니 반가운 지인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지인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역에서 완전 가깝다!"
"나름 역세권이라구!"
회사를 다니는 지인은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 늦게 돌아온다. 나 또한, 이번에는 지인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취재를 하러 가야하기에 정작,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간단하게 짐 정리를 하고 담배를 한대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들어 올 때는 유심히 살피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제보니 지인의 집 앞마당에는 온갖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다. 골목이다 보니, 환경미화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가 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지인이거늘, 유독 담배꽁초가 많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 나는 지인에게 물었다.
"야! 담배 꽁초 겁나 많은데?"
"몰라! 고딩들이 와서 몰래 피나?"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아침 일찍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어느새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지인은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였고, 나는 오랫만에 늦잠을 자며 꿈 속에서 지인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얼마나 잤을까?
창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근처에서 공사라도 하는건가? 나는 꾹 참고 밀린 잠을 보충하였다. 정오가 될 무렵, 가까스로 일어나서 정신을 차렸다. 남대문에 들렀다가 집에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준비태세를 할 기세로 캐리어에 짐을 때려 박았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바깥 기온을 확인해보기위해 창문을 열었는데, 의외의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수상한데?"
담벼락 넘어 정체불명의 빨간 텐트가 보였다.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는 소음의 진원지는 저 곳이었다. 딱 봐도 여럿명의 남자들이 텐트 안에 있었다. 바야흐로 일선 부대에는 혹한기 훈련이 한창인데, 이들도 도심 속에서 그들만의 혹한기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걸까?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지난 며칠동안 나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던 의문이 그제서야 해결되었다. 지인의 집 앞마당에 버려져 있는 정체불명의 쓰레기, 범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아저씨들이 나와 담배를 피우고는 거침없이 앞 마당으로 담배꽁초를 버렸다. 분명히 바로 옆에 휴지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용서치 않겠다!"
나는 DSLR의 설정을 고속연사로 바꾸고는 범죄현장을 향해 쉴새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종군기자의 마음이 이럴까? 행여 텐트 속의 아저씨들이 볼세라 확실하게 은,엄폐를 하였다. 좀 더 가까이서 찍고 싶은 욕심에 현관문을 열고 조심스레 다가왔다.
방 안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텐트가 있는 쪽이 훨씬 높았다. 텐트 안에 앉아 있는 아저씨의 머리가 담보다 높았다. 그말인즉슨, 고개만 돌리면 카메라를 든 내가 보인다는 이야기다. 괜시리 걸려서 좋을 게 없어보였다. 나가자마자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는 증거물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채 10컷도 찍지 않았는데, 텐트 쪽에서 대화가 들렸다. 잠시 담배나 한 대 피고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미 건물으로 들어가기에는 늦었다. 그렇다고 카메라만 들고 있어도 뻘쭘하였다. 이윽고, 2명의 건장한 아저씨들과 눈이 마주쳤다. 내 손에 들려있는 카메라를 보더니 연신,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다.
'아나! 내 인생은 맨날 위기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마치 통화를 하는 척, 혼자 대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카메라 테스트 해봤는데, 별 문제 없는데? 그래! 잘 찍히고, 렌즈도 칼핀이야!"
그렇게 위기를 모면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예전에 어디선가 본 이론이 떠올랐다. 일명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이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에 공동 발표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뉴욕의 한거리에 있는 주인 없는 빈 집에 어느 날 동네 꼬마가 돌을 던져 유리창 한 장이 깨졌다. 유리창이 깨진 채 계속 방치되자 사람들은 이 곳은 마음대로 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벽에는 온갖 낙서가 난무하였고, 거리에는 쓰레기로 가득 찼다. 결국, 그 집을 중심으로 각종 범죄가 난무하는 우범지대가 되었다. 고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결국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내용이다.
그간의 의문이 풀려서 시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버려지는 양심에 마음이 무거웠다. 지인에게 말하여 집주인에게 말하라고 전하고는 그 곳을 떠났다.
이상 쓰레기 불법투기현장에서 리얼로그 악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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