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보기
때는 바야흐로 03년 7월, 당시 전세계는 중국발 사스로 인해 한차례 홍역을 치뤘다. 하얼빈에서 유학 중이었던 나도 잠시 한국으로 대피하여 있다가 안전해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다시 출국길에 올랐다. 유학생인 나는 유효기간이 1년인 X비자(유학비자)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때는 급히 귀국하는 바람에 연장신청을 하지 못하였다.
중국을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한국여행사에서 L비자(관광비자)를 임시로 발급받고는 학교로 돌아가서 X비자로 교체하기로 하였다. 관광비자까지 무사히 발급받고나서야 나는 중국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7월 17일, 부모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당시의 여자친구를 만나서 오순도순 손잡고 하얼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츠! 이번에 들어가면 개강할 때까지 백두산 놀러가자!"
"오호! 굿 아이디어! 근데 너 비자는 잘 받아왔지? 쪽팔리게 쫒겨나면 버리고 갈거임!"
"왜이래! 날 뭘로 보고! 애송이 취급하지마샴!"
나는 여자친구의 여권을 확인하고, 백두산 여행계획을 세웠다. 잠시후,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무사히 하얼빈공항에 착륙하였고, 입국심사대로 갔다. 언제나 입국수속은 떨린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두근거렸다.
한국에서는 주로 나이가 지긋하신 심사관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하얼빈 공항에는 내 또래의 젊은 여자가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 있었다. 설마 입국 심사도 알바생을 고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너 정체가 머야?
"나는 악랄가츠다!"
"비상벨 누른다! 두번 묻게 하지마라!"
"저는 한쿡에서 온 유학생이랍니다!"
"근데 유학생이 왜 여행비자로 들어왔어?"
"급하게 오는라고요! 학교가면 유학비자로 재발급 할 거예요!"
그렇게 별문제없이 입국하였고,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는 방학 중이라 한산하였고, 유학생들도 거의 한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개강은 9월 1일인데 우리가 너무 일찍 들어온 셈이다. 한달 반동안 여행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 요량으로 왔지만, 금새 심심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치안은 위험하다고 하는데, 사실 한국만큼이나 안전하다. 엄청난 인구에 걸맞게 중국의 경찰인 공안의 수도 엄청나다. 곳곳에 사복 공안들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며, 길거리에는 차량 50대중 한대는 공안차량일 정도로 흔하였다.
나는 공안 아저씨들의 보이지 않는 보살핌에 광활한 중국 대륙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입국하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 계획하였던 백두산 여행을 4박 5일로 다녀왔다. 운이 좋아서였을까? 날씨가 무척이나 쾌청하여 천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가츠 입수!"
"왜?"
"천지에 괴물 살잖아! 나 보고 싶어!"
"너가 괴물이거든요!"
천지를 보며 벅찬 감동을 가슴 깊이 새기고는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개강할 때가 다 되었다. 개강하면 바빠질테니깐 미리 비자도 X비자로 교체하고 신체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가방 속에 넣어둔 여권을 꺼내서는 다시한번 확인해보았다.
뭔...뭔가 잘못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여자친구의 여권을 확인하였을때, 그녀의 관광비자 유효기간은 90일짜리였다, 그래서 내꺼도 당연히 90일짜리라고 생각하였는데 30일짜리였다. 여권의 유효기간이 10월 3일까지였고, 체류기간은 30일이었는데 순간 착각을 하였던 것이다.
이미 8월 27일이었다. 7월 17일에 입국하였으니 이미 나의 비자는 8월 15일에 만료되었고, 그때부터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문득, 선배들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불법체류시 하루 벌금은 500위안(8만 5천원)이었고, 최대 5000위안까지 부과된다고 하였다.
5000위안마저도 초과해버리면 구속 혹은 불구속 수사를 받아야 된다고 하였다. 난 이미 12일차에 접어들었으니, 5000위안을 넘은 상태였다. 이미 백두산 여행 당시부터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기차시간이 맞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올려고 하였는데, 하마터면 연변공항에서 잡혀갈 뻔 하였다.
"나 어떡해? 이대로 잡혀가는 거야?"
"그동안 즐거웠어!"
"어흐흑흑ㅜㅜ"
"울지마! 뚝! 일단 외사처로 가서 도와달라고 하자!"
나는 여자친구 손을 꼬옥 잡고, 외사처(외국인유학생사무처)로 발길을 향하였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유난히 공안들이 많이 보였다. 하나같이 나만 쳐다보는 거 같았다. 평소에는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아저씨들이었는데, 이제는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갈 거만 같은 맹수같아 보였다.
"자꾸 나만 쳐다보는 거 같애!"
"오호! 너 까불면 바로 고자질 해버린다!"
"그러지마! 말 잘들을께!"
"이제 내 말 다 들을거지? 어쭈 표정봐? 여기요~ 공안아저씨!"
"왜 이리 급하세요! 하늘에 별도 따다 드릴게요!"
"그건 됐고! 오늘부터 금연, 금주다! 콜?"
"음... 그냥 자수할게!"
그렇게 티격태격거리며 외사처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사실, 가면서 내내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외사처에서도 방법이 없다고 하면,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나보다 한국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하는 호선생님이 사무를 보고 계셨다. 나는 여권을 들이밀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우리 가츠가 드디어 사고쳤구나!"
"살려주세요! 아직 장가도 못갔는데 여기서 끝날 순 없어요!"
"한국 다녀왔는데, 내 선물은 없더라?"
"왜 이러세요! 호선생님은 그런 분 아니잖아요!"
"호호호~!"
호선생님은 일단 한번 알아보겠다고 하셨고, 돌아다니지 말고 방안에서 얌전히 지내라고 하였다. 나는 외출을 삼가고, 한동안 방안에서만 지냈다. 하나 둘씩 한국에서 돌아온 동기들은 놀려가자고 나를 유혹하며 놀렸다.
그렇게 20일 가량을 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내고서야 X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호선생님의 뛰어난 업무처리로 벌금도 부과되지 않았고, 안전하게 유학생 신분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32일간의 파란만장한 불법체류자 신분의 종지부를 찍었다.
'가츠의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옛날이야기, 빈집털이 (215) | 2009.10.03 |
---|---|
가츠의 옛날이야기, 화장품 (219) | 2009.09.30 |
가츠의 옛날이야기, 뺑소니 (204) | 2009.09.15 |
가츠의 옛날이야기, 교통사고 (189) | 2009.09.12 |
가츠의 옛날이야기, 스튜어디스 (244) | 2009.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