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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04년 2월, 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은 기간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 미친듯이 놀고 있었다. 곧 개강을 하며 다시 중국으로 가야 하기에, 하루하루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광란의 밤을 보내고, 새벽녁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유일하게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아버지마저도 당시 문경에서 근무 중이셨다. 고로 완전 내 세상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께서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아들! 방학 며칠 남았다고, 맨날 술이야! 얼굴 좀 보고 살자!"
"흑..그치만 개강하면 이제 친구들 못 보잖아!"
"친구가 밥 먹여주니?"
"음... 술은 먹여주는데?"
"아이구 이 화상아! 나가 죽어!"
"앗싸! 나가라고 했어! 후다닥!"
어머니의 마음도 몰라 주고 나는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갔다. 다음날, 어김없이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갈증이 나서 눈을 떠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는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는 운동을 하러 가셨고, 고등학생인 동생은 학원을 갔나 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졌고, 나는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약속을 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배고파! 언제와?"
"아들! 엄마 집 앞 사거리인데 교통사고 났어! 빨리 좀 와봐!"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어머니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 떨리고 있었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뛰쳐 나갔다. 문득 작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한 여고생이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통화를 한 안타까운 사연이 자꾸 떠올랐다.
"안돼! 아직 효도는 시작도 안했는데! 어흐흑흑ㅜ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계단을 통해 집 밖으로 나와 대로변 사거리로 뛰어 갔다. 사거리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차량들도 정체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영업용 택시와 어머니 차가 충돌한 상태로 서 있었다. 어머니부터 찾았다. 어머니는 차량 옆에 어쩔 수 몰라하며 서 있었고, 옆에는 택시 기사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사고 현장을 살펴 보고 있었다. 택시 승객으로 보이는 취객 2명도 옆에서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다.
"엄마! 괜찮아? 다친데 없어?"
"응... 괜찮은 거 같애!"
"아줌마 이거 어떻게 할거예요?"
사고현장을 둘러보던 택시기사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나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고, 어머니에게 보험사에 연락하였냐고 물어 보았다. 어머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다가가서 사고 경위를 물어 보았다. 직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어머니 차량이 갑자기 나타나서 충돌하였다고 하였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우회전을 하기 위해 진입하는데 택시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하였다.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어머니와 택시기사는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트럭때문에 서로 보지 못하였고, 사고가 난 것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어머니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머니 차량이 나오던 곳은 소방도로였다. 자세한 규정은 확실히 모르지만, 얼핏 예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된다고 하였다.
"아저씨! 경찰 부를 필요 없겠죠?"
"저야 안 부르는게 좋지만, 손님들 상태를 함 봐야지!"
택시기사가 손님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폰카를 이용하여 사고현장을 찍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고, 아버지 또한, 다친 사람이 없으면 좋게 처리하라고 하였다. 나는 택시기사와 손님들에게 다가가서 상태를 물어 보았다.
"괜찮으세요? 이거 몇 개?"
"괜찮아! 좋아 좋아! 3차 가야 가는데! 고고씽!"
다행히 다들 이상없어 보였다. 곧, 보험사 직원이 도착하였다. 나는 보험사 직원에게 사고경위를 설명하였고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아직도 많이 놀란 어머니는 바들바들 떨고 계셨고, 나는 외투를 벗어 어머니에게 입혀 주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으시더니 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 다 컸네! 너무 든든하네! 아빠보다 낫다!"
"하하! 누구 아들인데! 이정도야 기본이지!"
사고가 나자 상대방 차량에서 건장한 남자 3명이 내리자 어머니는 겁이 덜컥 나셨고, 나에게 바로 전화를 한 것이다. 신속하게 달려나와 이것저것 알아서 해결해주니 너무 든든하다고 나에게 칭찬 해주었다. 나 또한, 오랫만에 밥값을 한 거 같아서 뿌듯하였다.
연신 상대방과 대화를 하던 보험사 직원은 우리에게 돌아와서는 이제 자기에게 맡기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나는 잘 처리해달라고 거듭 부탁하고는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정말 아픈데 없냐고 재차 확인하였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계신 어머니 털끝 하나 다치지 않으셨다. 그렇게 사고는 큰 문제없이 일단락 되었다.
다음날,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택시 앞좌석에 타고 있던 손님, 오늘 아침에 병원에 입원했어요. 어제는 취기 때문에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니 턱이랑 목, 어깨가 안 좋으시다고 하시네요. 전치 4주나 나왔다네요. ㄷㄷㄷ"
하아... 역시 술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지난 주, 달려라꼴찌님께서 저에게 건네 주신 릴레이 주제가 "아들이 있어 든든하고 좋은 순간" 이었습니다. 주제를 받고, 한참을 고민하였습니다. 과연 부모님께서 나를 든든하게 생각하신 적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대뜸 당시의 교통사고를 말씀해주셨고, 이에 부끄럽지만 작성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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