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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인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요즘 확실히 예전에 비해 약해진 체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꾸 얌전히 잘 자고 있는 나를 때리는 이불, 이불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생존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순간, 어렴풋이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부모님 전용 컬러링인 베토벤 바이러스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여보세요! 엄마 살려줘! 자꾸 이불이 때려!"
"내가 시켰다! 닥치고 빨리 내려와! 장보고 왔더니 짐이 너무 많아!"
나는 좀비처럼 침대에서 기어내려와 주섬주섬 모자를 챙겨쓰고, 내려갔다. 주차장에는 어머니의 검은 승용차가 나를 발견하더니 클락션을 울렸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뛰어 가는데, 경비실 앞에 경찰관이 서 있었다. 순간, 지난밤 한 짓들을 떠올려 보았다. 딱히 문제될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물론 기억이 안나는 것도 있지만.....
"난 당당해! 쫄지마!"
오히려 출동하신 경찰관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면서 어머니 차량쪽으로 걸어갔다. 순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는 경찰관,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회피하였다. 아나 왜이래!
짐을 챙겨들고는 어머니에게 경찰관들이 왜 출동하였는지 물어보았는데, 모르신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가서 한번 물어봐달라고 하였다.
"엄마! 가서 왜 왔는지 한번 물어봐봐!"
"궁금하면 니가 물어봐! 늙은 엄마를 시키고 그래!"
"왠지 내가 다가가서 말 걸면 다짜고짜 잡아갈 거 같애!"
"하긴 니 얼굴은 딱 봐도 강도같애!"
"............"
어머니도 궁금하셨는지, 경찰관에게 다가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시고는 돌아오셨다. 나에게 들려준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좀전에 남자아이가 앞에서 놀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차량에 부딪쳤다고 하였다. 정면에서 부딪친 게 아니고 옆부분을 부딪친 남자아이는 그대로 땅에 넘어져서 얼굴과 손에 상처를 입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가해차량은 그대로 도망가버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의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제 아무리 난폭운전자라고 하여도 아파트 입구에서는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좀처럼 과속하는 일이 없다. 서행 중에 누군가 부딪쳐서 넘어졌다면, 분명히 인지할 수 있을거라 본다. 그런데도 가해차량은 아무런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도망가버린 것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나도 가끔 드리프트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속, 난폭운전을 하곤 하지만, 어떻게 어린이를 치고 그냥 가버릴 수가 있는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에서 쓰린 마음에 담배를 피며 계속 상황을 주시하였다. 위 사진속에 까만티에 하늘색 바지를 입은 아이가 사고를 당한 아이였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놀랬을까? 경찰관의 물음에도 긴장하였는지 고개를 숙인채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서있는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의 상황에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신 듯 보였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는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아이가 사고를 당했는데, 아무런 구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면? 나같아도 당장 범인색출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백배 천배 복수를 감행할 것이다. 하아....
경찰관은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며 필요한 정보를 더 수집하고서는 사고 현장을 떠났다. 경찰차가 떠난 자리에는 아이와 아버지만 남았다. 그들은 한참을 그곳에 서있다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걱정마! 경찰관아찌가 꼭 잡아줄거야!"
그들이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현장은 다시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도심의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학교 운동장, 놀이터가 있지만, 한창 뛰어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그저 거쳐가는 코스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차량이 많이 다니는 도로에서 놀아도 된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분명히 위험한 행동이고, 따끔하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성인인 우리가 좀더 조심하고 신경써야 할 부분이 아닐까?
저 아이들이 나의 소중한 아들일 수도 있고, 이웃의 딸일 수도 있다.
포스팅할려고 실컷 쓰고보니, 나부터 반성해야겠다. 나 또한, 갑자기 뛰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빵빵거리고 투덜거리고 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범인은 독 안에 든 쥐다.
"감시카메라는 니가 백주대낮에 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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