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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부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추석연휴를 틈타 빈집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리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방송이었다. 요즘에는 아파트 입구를 비롯해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집집마다 최첨단 전자도어키가 설치되어 있기에. 예전에 비하면 안전한 편이다.
안내방송을 듣다보니 고3이었던 8년전 추석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 고등학교는 추석 당일, 하루만 쉬고 수능을 칠 때까지 매일같이 학교를 등교하여야만 하였다. 방학도 없고, 주말도 없는 우울한 수험생이었다. 그러다보니 연휴에도 가족들은 모두 큰집으로 갔지만, 나만 집에 남아있어야 했다.
"아들! 집 잘보고 있어! 밥 잘 챙겨 먹고!"
"걱정마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드디어 혼자 집에 있게 되었다. 얼마만에 맛보는 해방감인가? 나는 1박 2일간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계획을 잡기 시작하였다. 미리 빌려놓은 수십권의 만화책과 비디오테이프, 컴퓨터에는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임도 딱 준비되어 있다. 바야흐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컴퓨터 게임부터 시작하였다. 방이 떠나가랴 사운드도 빵빵하게 틀어놓고 게임속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평소에는 눈치보여서 하지도 못했고, 새벽에 몰래 하여야만 하였다. 얼마나 했을까? 이미 해는 지고, 배고픔이 밀려왔다.
"치킨이나 한마리 뜯어볼까?"
치킨을 뜯으며 빌려놓은 비디오테이프를 틀었다. 2편을 빌렸는거 같은데, 기억나는건 미녀삼총사뿐이다. 영화와 치킨이라? 무언가 허전하지 않은가? 나는 냉장고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맥주가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맥주캔을 따고 거품을 입에 머금고는 다시 영화를 시청하였다.
쇼파에 늘어져서 한 손에는 치킨, 또 다른 손에는 맥주, TV화면에는 미녀들이 나와서 싸우고 있다. 그순간만큼은 수험생이 아니었다. 그저 행복한 사람이었다. 비디오가 끝나자 시간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대로 잘 순 없지!"
나는 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빌려 놓은 만화책을 꺼내고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스르르 들었다. 수험생에게 주어진 딱 하루뿐인 휴일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학교를 안가도 된다. 나는 정말 달콤하게 밀린 잠을 자고 있었다.
"띵동! 띵동! 띵동!"
얼마나 잤을까?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러나 집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석날 아침에 누가 찾아온단 말인가?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너무 귀찮았다. 분명히 물건 팔러 온 잡상인일거라 생각하고는 다시 잠을 청하였고, 이내 초인종 소리는 그쳤다.
평소 같으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이다. 한번 깨버린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안 자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애써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시도하며 뒤척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렸다.
"끼이잉! 끼이잉!"
현관문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튕겨져 일어났고, 잽싸게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누군가 현관문 손잡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거 같았다. 말로만 듣던 빈집털이인가?
거실로 가서 인터폰의 모니터를 켰다. 화면에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보였다. 마음같아서는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문을 발로 찬 다음, 빈집털이범을 제압하고 싶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그게 아니었다. 이미 심장박동소리는 5.1채널 서라운드보다 크게 들렸다. 빈집털이범이 만지작 거리고 있는 손잡이는 금새라도 열릴거 같았다.
잠시후, 빈집털이범과 목숨을 건 사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는 집 잘보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는데 말이다. 다른 집은 강아지 혼자서도 잘 보는데, 이거 자칫하다간 강아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겠다.
"쯧쯧! 한심한 녀석!"
문득 어릴때 본 나홀로 집에가 생각났다. 귀여운 케빈은 혼자서 도둑 2명을 때려 잡았다. 하지만 영화속의 도둑은 멍청하다. 지금 문 앞에 있는 빈집털이범은 그만큼 멍청해보이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인터폰의 스피커를 눌렀다.
"누...누구세요?"
"헛!"
빈집털이범은 갑자기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 엄청 놀란듯이 뒤로 물러서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오호 강한 자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큰소리로 외쳤다.
"야! 거기서!"
사실은 서면 곤란하다. 그냥 더 열심히 도망가라는 추임새였다. 다행히 빈집털이범은 서지 않았고 발자국 소리는 멀어져 갔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밥값은 한다며 기뻐하셨고, 일찍 갈테니 너무 걱정말라고 하셨다.
며칠후, 우리집 현관문은 최첨단 전자도어키로 바꿨다.
글을 작성하다 창 밖의 보름달을 보니 너무 예뻐서 한 컷 찍으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여러분도 보름달을 보시면 마음 속에 담아둔 소원을 빌어보세요. 여느해보다 유난히 짧은 추석연휴, 아쉽지만 그만큼 더욱 즐겁게 보내시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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