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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07년 7월, 당시 나는 대구 동성로에서 자취하고 있었다. 6개월동안 혼자 먹고 자고 하다보니 벽과의 대화가가능해질 정도였다. 눈을 뜨면 벽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고, 어두운 저녁에 홀로 방에 들어오면 역시 벽이 무표정하게 반겨주었다.
"무뚝뚝한 녀석~!"
그렇게 외로움에 지쳐있을 무렵, 동생이 공부를 한다며 대구로 올라왔다. 드디어 혼자 밥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집 앞에 맛있어 보이는 삼겹살집이 있었는데, 그동안 혼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을 용기가 없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제는든든한 동생이 있기에 냉큼 같이 갔다.
"민아 맛있지?"
"별 새삼스레 맨날 사먹는거 아니었어?"
이녀석은 아직 혼자 사는 고통을 모른다. 그렇게 신나게 삼겹살을 먹고, 오랫만에 스타나 한판 하자며 근처 피시방으로 갔다. 나와동생과의 매치는 마치 임요환과 홍진호의 임진록을 보는 거 같다. 실력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종족과 둘만의 치열한 혈전이 그렇다는거다. 지는 날이면 다음 시합때까지 스타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총 3판을 했는데, 0:3 완패다. 이녀석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했나보다. 시무룩해진 나는 게임관련 웹진을 보고 있었다. 최신게임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게임을 발견하였다. 온라인 게임으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비행 슈팅 장르였다. 어렸을 때 오락실에서하던 1941의 추억이 떠올랐다. 게임의 이름은 비트파일럿이었다.
바로 관련 사이트로 접속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하며 재밌다고 하였다. 나도 바로 회원가입을 하고 게임을 실행시켰다. 정말 오락실에서 하는 비행기 게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민아 이거 재밌다!"
"이제 스타는 포기하신건가? 허접 앜ㅋㅋㅋㅋㅋ"
"닥쳐!"
신나게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동생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기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동생과 나는 어릴때를 회상하며 신나게 비행기 게임을 즐겼다. 어느덧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렇게 동생과의 즐거운 환영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로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었다. 막상 동생이 와도 밤에 잘 때만 잠깐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잠만 자는 사이였다.하루는 술을 한 잔하고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동생은 컴퓨터를 하다가 잠이 들었나보다. 나도 스포츠뉴스나 보고 잘려고 컴퓨터를하고 있었는데, 자꾸 스팸메일이 날라왔다.
동생의 네이트온이 켜져 있었다. 읽지 않은 편지 86통~! 스팸메일도 동생같은 녀석에게는 무의미하다. 나는 스팸설정을 해주기 위해 메일을 열었다. 온갖 대출, 성인광고가 난무하고 있는데, 유독 깔끔한 메일이 하나 보였다.
비트파일럿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호기심에 클릭을 해보니 신규가입 이벤트에 동생이 당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경품으로는 닌텐도 DS였다. 날짜를 보니 제법 지났는데, 왜 동생이 아무말도 안했을까?
나는 동생의 아이디로 비트파일럿 사이트를 접속하였다. 개인정보를 확인해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휴대폰 번호란에는 낯선 번호가입력되어 있었다. 나는 잽싸게 내 휴대폰 번호로 수정하였다. 자고 있는 동생의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서는 폰카로 촬영하였다.그리고 비트파일럿으로 신분증을 전송하였고, 경품 재세공과금을 입금하였다. 이 모든 작업이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옆에서 동생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후, 나의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악랄동생님 맞으시죠? 여기는 비트파일럿입니다!"
"아 네! 맞습니다~!"
"경품 발송을 위해 주소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나는 택배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먹을 거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택배아저씨이다. 만약 택배누나가 있다면, 가장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후훗~!
"택배입니다~!"
우와~! 드디어 내 손에 경품이 들어왔다. 나는 잽싸게 택배상자에 붙어있는 동생 이름의 운송장을 떼어버리고는 경품 처분에 박차를가하였다. 사실, 동생이나 나나 닌텐도를 하기에는 무리였다. 가지고 있으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도 않았다.현금화 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루리웹사이트로 들어가서 닌텐도 장터란에 글을 올렸다.
[대구직거래] 닌텐도 DS 미개봉 판매
당시 닌텐도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첫 통화는 약간 앳된 목소리의 남자였다. 아니 어린이였다.
"가츠입니다!"
"닌텐도판매 글 보고 전화했어요! 혹시 개조되어 있나요?"
"님하~! 미개봉품이라고요!"
역시 닌텐도를 노리는 초딩들이 많았다. 몇 통의 전화테러를 받고나서야 실질적인 구매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내 또래의 여성 같았다.
"가츠님! 저에게 파세요!"
"무조건 팔게요! 어디서 만나요?"
"저녁 8시 국채보상공원에서 만나요~♥"
광고전화를 하는 누나들보다도 훨씬 목소리가 고왔다. 나는 꽃단장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국채보상공원으로 갔다. 이미 어두워진 공원은 아름다운 야간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혹시 여자를 미끼를 세우고 무서운 횽아들이 와서 뺏아가지는 않겠지?
얼마전, 고딩들과 직거래를 하다가 두들겨 맞은 대학생 이야기 생각났다. 나라고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초조하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담배를 한 개비를 꺼내 물려는 찰나, 저편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였다. 얼핏봐도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그녀는 공원의 조명에 비쳐서 더욱 눈부셨다.
"혹시 가츠님?"
"네! 당신은 천사님?"
"까르르 천사래~!"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조심스레 닌텐도 박스를 개봉하는 그녀를 보자, 내심 닌텐도가 부러워졌다.
"내가 닌텐도였으면..."
이내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나에게 돈을 지불하였다. 마음같아서는 그냥 공짜로 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예의가 아닌거 같아서 감사하다며 받았다. 그녀는 닌텐도를 손에 꼭 쥐고는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서로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형 어디야? 머해 배고파!"
그날 저녁, 나는 동생에게 한껏 득의양양하며 맛있는 삽겹살을 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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