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때는 바야흐로 95년,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당시 4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베프 2명이 있었다. 우리는 어디든지 항상 뭉쳐 다녔고, 모든 것을 함께 하였다. 그때부터 공유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니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니 것이다.
"진용아~! 나 닭꼬치 먹고 싶어~!"
"나 용돈 없는데~!"
"거지들~! 내가 사줄게~!"
"우와~! 성현이 최고~! 만세~!"
방과 후에도 우리는 항상 붙어 다니면서, 서로의 집에서 밤 늦도록 놀기 일쑤였다. 정말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하루는 쉬는 시간이었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허겁지겁 교실로 들어오더니 외쳤다.
"가츠야 지금 진용이 복도에서 싸우고 있어~!"
나랑 성현이는 잽싸게 복도로 나가보니 다른 반 녀석이랑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우리는 사태를 주시하며 지켜 보고 있었다. 얼핏보니 박빙의 승부였다.
"도와줄까?"
"강하게 커야지 냅둬~!"
그 순간, 진용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만 봐도 무엇을 원하지는 알 수 있었다. 진용이의 눈빛은 진심으로 살려 달라는 눈빛이었다. 우리는 번개같이 몸을 날려 진용이를 구해 주었다.
"아나 약골~! 삼총사의 수치다~! 제명시키자~!"
"그러게 버려 버려~!"
"흑흑 이따가 떡볶이 사줄게~!"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였다. 우리 삼총사 등 뒤로 암운의 그림자가 그리워 지고 있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학교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여자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동에 살고 있었다.
"가츠 안녕~! 이번주 교회 꼭 나와~!"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우리 곁을 지나갔다. 떡볶이보다 달콤한 그녀의 향기가 코 끝을 자극하였다. 그녀가 지나가자 마자 친구들이 나의 멱살을 잡고는 추궁하기 시작하였다.
"가츠~!! 재랑 같은 교회 다니는거야?"
"어쩐지 저녀석 주말마다 교회 꼬박꼬박 나가더라~!"
"이거 왜 이래~! 우린 이미 깊은 사이라구~! 매일 밤 전화통화도 하거든~!"
그녀는 우리학교 고적대 단장이기도 하였다. 고적대 연습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제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였다.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하루종일 그녀를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우리 학교 남학생들의 우상이였다. 물론 나의 우상이기도 하였고, 우리 삼총사의 우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4학년 때부터 그녀와 같은 교회를 다닌 나는 훨씬 유리한 고지에 있다. 또한 매일밤,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물밑작업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이미 늦었어~! 후훗~!"
그렇게 나는 핑크빛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찾아왔다. 교회가는 날만큼은 우리 삼총사도 잠시 떨어져 있다. 성현이는 불교였고, 진용이는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가는 날보다도 일찍 일어난 나는 아침부터 한껏 치장을 하였다.
일요일, 주일학교 어린이 예배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동물의 왕국이 끝나고 하는 시청률 100%을 자랑하는 무적의 TV프로그램, 디즈니만화동산때문에 항상 지각을 하였다. 어김없이 지각한 나는 교회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갔다.
"후훗 그녀와 단둘이 보낼 수 있어~!"
교회에 도착하여 그녀가 앉아 있는 위치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찾기도 쉽다. 그녀는 빛나는 미모로 자체발광모드이기 때문이다. 곧 앞줄에서 눈부신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기뻐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낯익은 얼굴~! 진용이었다.
"가츠~! 자리없어 뒤로 가~! 저렇게 신앙심이 부족해서야 원~!"
"그러니깐 가츠는 맨날 지각해~! 실망이야~!"
"●█▀█▄"
저 녀석이 왜 여기 있는거지~! 나는 순간 불안하였다. 지금까지 나 혼자 독점하였는데, 마치 맛있던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뺏긴 기분이었다. 앞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2년동안 행복했던 주말이 그그날만큼은 즐겁지 않았다.
"진용이가 밉다~!"
이러다가는 진용이에게 그녀를 뺏기겠다. 그렇게 한주내내 걱정을 하며 보냈고, 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눈물을 머금고 디즈니만화동산까지 포기하였다. 그녀에게 잘보여야 된다는 일념하나로 일찌감치 집을 출발하였다.
일찍 오니 교회 입구에서 목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물론 목사님도 좋지만 전 그녀가 더 좋다. 나는 잽싸게 예배실로 들어갔고, 그녀를 찾기 시작하였다. 역시 부지런한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레? 이미 그녀의 양 옆자리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누구지? 뒤통수가 낯익어~! 아나 좌 진용 우 성현이었다. 성현이는 나를 보더니 머슥하게 웃으며 인사하였다~!
"가츠 안녕~!"
"야야야아 넌 불교잖아~!"
"신앙심에 장소는 중요하지 않아~! 마음이 중요한거야~!"
"●█▀█▄"
그렇게 우리 삼총사는 모두 그녀의 노예가 되었다.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거 같았다. 먼저 고백을 해서 선수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근사한 프로포즈를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다음날, 학교수업을 마치고 우리들은 문구점을 들렀다. 친구들은 슬램덩크 카드를 뽑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나는 그녀에게 선물할 것을 찾기 시작하였다. 잠시후,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선물을 찾았다.
"바로 이거야~! 오르골~!"
가격표를 보니 18000원이나 하였다. 아침에 모은 돈을 다 가지고 왔지만, 수중에는 15000원밖에 없었다. 3천원이 모자른다. 나의 눈에는 카드뽑기를 하고 있는 녀석들이 보였다.
"야 니들 오늘 용돈 받았지?"
"응~!"
"빌려줘~!"
"싫어~!"
"제발~! 친구로서 하는 마지막 부탁이야~!"
그렇게 나는 그녀석들에게 3천원을 빌렸다. 후훗~! 너희들 스스로 무덤을 판거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다시 문구점으로 투입하였다. 피아노 오르골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녀에게 고백할 편지를 작성하였다. 아마 내생애 최초의 러브레터가 아닐까 싶다.
오르골에 정성스레 작성한 편지까지 끼우고는 그녀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막상 줄려고 하니 너무 떨렸다. 교회가기 전날이 토요일로 D-Day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교회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거다~! 완벽해~!
날짜까지 정하자 시간이 너무 안 간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하루하루가 일년 같았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팽이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진용이가 달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이녀석 울고 있다.
"야 또 맞고 왔냐?"
"맨날 맞고 다녀~! 쪽팔려~!"
"그게 아니야~! 남자친구 생겼대~!"
"뭔소리야? 누구?"
"누구겠어~! 흑흑~!"
그랬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겨버린 것이다. 아나~! 이녀석들만 너무 신경쓰는라 다른 곳을 살피지 못 하였다. 그렇게 우리들의 치열했던 짝사랑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ㅅㅂ 사이다나 한 잔 하러가자~!"
반응형
'가츠의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옛날이야기, 닌텐도DS (184) | 2009.08.23 |
---|---|
가츠의 옛날이야기, 백일장 (187) | 2009.08.22 |
가츠의 옛날이야기, 당구 (171) | 2009.08.09 |
가츠의 옛날이야기, 거미 (224) | 2009.08.08 |
가츠의 옛날이야기, 오토바이 (149) | 2009.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