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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94년 겨울,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 때이다. 한창 놀기만 좋아했던 가츠군은 지난 짝사랑편에도 등장하였던 친구들과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방과후 집으로 돌아갈려고 하는데 성현이가 안 보인다.
"진용쓰~ 성현이는 어디 갔어?"
"글쎄?"
우리는 교문 앞에서 사라진 성현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동장 저편에서 무언가 반짝반짝 빛나는 물체가 보인다. 점점 우리에게로 다가오는데 자세히 보니 성현이었다. 근데 엄청난 속도로 다가 오고 있었다.
성현이는 새로 산 빛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우리 곁으로 다가오더니 멋있게 브레이크를 잡으며 우리에게 모래먼지를 날려 주었다.
"콜록콜록~! 죽을래?"
"어때? 죽이지?"
"나도 타보자!"
"안돼! 너희들은 뛰어올 수 있도록!"
"그래 잘가~ 저녀석 버려버려!"
그렇게 우리는 성현이를 버리고 걸어 갔다. 다급해진 녀석은 옆에 있던 진용이를 유혹하더니 타게 해주었다. 아나~! 내가 그깟 자전거 따위에 넘어갈 거 같애~! 필요없다구~!
"가츠야 너도 타볼래?"
"응!"
아나~ 당시 나에게 자전거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이었다. 그렇게 성현이의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놀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신 방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어머니가 퇴근하시고 돌아 오신다. 동생이랑 싸우지도 않고, 잘 놀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셨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서 어머니를 반겼다. 그리고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과 상처하나 없이 말끔하게 놀고 있는 동생을 보여 주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의심스런 눈초리를 나를 바라 보신다.
"무슨 꿍꿍이야?"
"엄마~ 성현이 자전거 샀는데~ 이제 아침에 지각안하더라고!"
"어쩌라고?"
"저두 사주세요!"
"너 저번에 사줬는데 잃어버렸잖아!"
"그...그건 누가 훔쳐간거잖아!"
"가서 공부나 해!"
흑... 역시 쉽게 사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언지하에 안 사주신다고 하니 마음이 상했다. 두고봐! 단식투쟁을 해서라도 살테다!
그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맛있는 참치찌개와 동그랑땡을 준비하고 계셨다. 방 안에서 단식투쟁을 결심하고 있었는데, 맛있는 냄새가 나를 자꾸 유혹하였다. 독해져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돼!
"아들 밥 먹자!"
"네~♥"
단식은 아니다. 지금 나는 한창 클 때잖아! 많이 먹어야지 쑥쑥 자라지. 그렇게 배불리 저녁까지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살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봐도 뽀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날, 등교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성현이가 자전거를 타고 신나고 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곁을 쏜살같이 지나쳐서 가버렸다. 머지 이기분은? 평민이 된거 같애. 마치 저녀석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재벌 2세 같았다.
"다들 내일까지 시 한편 작성해도록!"
"우우우우우우!"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시를 한편씩 작성해오라고 하였다. 교내 백일장에 출품하는 거라고 하셨다. 평소같으면 개나 줘버려~! 라는 모드로 일관하였겠지만, 왠지 나에게 기회가 온 거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시에 관련된 서적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시가 소설보다 글이 많아~! 아나 읽다가 낙오하겠다. 얼마나 뒤적거렸을까? 12살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피는 작품을 발견하였다.
"바로 이거야~!"
나는 책상에 앉아서 원고지에 미친듯이 시를 적기 시작하였다. 이미 고인이 되신 정한모 시인의 작품을 나만의 느낌으로 재구성하였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거 최연소 시인으로 등단하는 거는 아니겠지? 아니면 최연소 저작권법 위반자일지도...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작성한 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얼마후 아침조회시간, 운동장에는 전교생이 모두 서 있었다. 교무선생님의 사회로 국민의례가 거행되었다. 이윽고 이어지는 지루한 순서들, 우리들은 벌써 지쳐가고 있었다. 아직 교장선생님의 연설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슬슬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울리는 교무선생님의 목소리~♪
"백일장 부문을 시상하겠습니다.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최우수 5학년 3반 악랄가츠!"
순간 운동장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고, 옆에 있던 성현이와 진용이는 나보다 더 놀란 거 같았다. 나를 마치 귀신 보듯이 바라 보고 있었다.
"이정도쯤이야~!"
나는 당당하게 걸어나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전교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단상을 내려왔다. 녀석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받은 상장을 현관문 앞에 고이 놔두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퇴근하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다음날, 나는 빛나는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등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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