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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저녁이었다.
"아들~! 엄마 수박 사왔는데, 무거워~! 내려와~!"
어머니께서 매일 저녁, 학교 체육관에서 2시간씩 배드민턴을 치신다. 운동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예전부터 탁구, 수영을 마스터 하시고는 작년부터 배드민턴에 심취하셨다. 정말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꼬박꼬박 운동하시는 어머니를 볼때마다 열정이 대단하시다고 느꼈다.
"이게 뭐가 무겁다고~! 엄마 팔뚝에 비하면 이건 뭐 사과네! ㅋㅋ"
"밥만 축내는 주제에, 이럴 때나 써먹지 언제 써먹냐? ㅎㅎ"
나는 어머니랑 티격태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곧 아버지도 오셨다. 오랫만에 거실에 모여 앉아서 수박을 먹으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이윽고 10시가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선덕여왕을 보기 위해 TV채널을 MBC로 돌리셨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오늘 결혼 못하는 남자 마지막회 한다며 KBS2를 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묵묵무답인 아버지는 리모콘을 손에 꼭 쥐고는 놓지 않으셨다. 나는 중립을 지키며 수박 먹기에 열중하였다.
"리모콘 내놔요~!"
그러나 아버지는 리모콘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시며 완강히 버티셨다. 우리 집에 TV는 거실과 서재에 각각 한 대씩 있다. 하지만 서재에 있는 TV는 오래된 TV라서 화질이 안좋다. 연신 리모콘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시는 부모님, 이내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어머니는 포기하신 듯 서재로 들어가셨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시고는 편안하게 드라마를 시청하셨다.
그때, 옆에서 연신 수박만 먹고 있는 나의 허벅지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아아아아아악~!"
거...거...거미다!
그것도 아주 크고 징그러운 녀석이었다. 나는 귀신이나 유령같은 건 별로 무서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영화나 스릴러를 아주 좋아한다. 벌레도 뭐~ 바퀴벌레같은 건 잘 잡는 편이다.
하지만, 뱀이나 거미, 지네처럼 딱 봤을 때 징그럽고 혐오감이 느껴지는 건 정말 질색이다. 나의 허벅지에 떨어진 거미를 발견한 나는 괴성을 지르며 쳐냈다. 아니 손으로 치지도 못했다. 몸을 흔들었다. 반동에 의해 날라간 거미는 아버지 옆에 툭 떨어졌다.
"오오우~! 아부지 잡아주세요~! 제발~!"
거미를 발견하신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시더니, 쇼파 위로 올라가시는게 아닌가? 뭥미~! 부전자전인건가? 그렇게 낯선 거미 한마리가 우리집 거실을 차지하였다.
"군대도 갔다온 놈이 거미 하나 못 잡고~ 어여 잡어~!"
"아부지~! 이건 제 영역밖이예요! 오오... 온다~!"
갑자기 이녀석이 나에게로 돌진하였다. 나는 뒷걸음질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나의 모습을 보며 한심하단듯이 지켜보는 아버지, 그러나 쇼파 위에서 절대 내려오시지는 않았다.
얼마나 거미와 쫒고 쫒기는 사투를 벌였을까? 갑자기 움직임 없어진 거미, 이에 나는 손에 휴지를 들고는 거미 뒷 쪽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이녀석 포스가 엄청나다. 무섭긴 한데, 멋있는 거 같애!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촬영을 시도하였다.
찰칵~!
갑자기 움직이는 거미, 다시 뒷걸음 치는 나....
도저히 못잡겠어~! 이거 덩치가 커서 잡을때 느낌도 최악일 거 같았다. 휴지를 덮었는데, 누르지를 못하겠다. 힘을 주면 터질거 같은데, 마치 내 몸이 터질 거 같다. 꿈틀거리는 휴지, 이건 정말 공포다!
서재에서 TV를 보던 어머니가 소란스런 소리에 무슨일인가 싶어서 나오셨다. 그리고 거미를 발견하시고는 가소롭단 듯이 몸을 날리셨다.
빠직~!
마치 배드민턴을 치시듯 거미를 향해 강스매쉬를 날리셨다. 그리고 납작해져버린 휴지를 손을 집으시더니, 유유히 다가오시더니 리모콘을 낚아채시곤 채널을 돌리셨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엄포스였다.
"아이고~! 다 큰 남자들이 거미 하나 못잡고 잘한다 잘해~! 쯧쯧~!"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묵묵히 결혼 못하는 남자를 시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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