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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102보충대 上편, 102보충대 中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한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
걸어가는 등 뒤로 군악대의 연주소리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불과 10초전만 하여도 어머니의 눈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거 같았는데, 눈 앞에 보이는 교관과 조교를 보니, 어느새 슬픔은 잊혀졌다.
"이제 살아남아야 한다~!"
입대전, 선배들에게 들은 무수한 이야기, 부모님과 헤어지고 건물 모퉁이를 돌자말자, 싱글싱글 웃고있던 조교들이 무차별 욕설과 구타를 가한다고 하였다. 설마 요즘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래도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불과 입대하기 몇 주전, 논산훈련소 인분사건으로 인해 온나라가 떠들썩 하지 않았는가?
"나도 먹을지도 몰라~!"
눈 앞에 체육관이 보인다. 창문은 까만 커텐으로 온통 막혀있고, 출입문은 하나만 열려있었다. 마치 지옥으로 안내하는 던전 입구 같아 보였다.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할 거 같았다.
이미 체육관 안에는 먼저 도착한 장정들이 겁에 질린 채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 있던 교관과 조교들이 모두 들어왔고, 출입문이 닫혔다. 일순 큰 체육관안에는 교관의 발자국 소리만 저벅저벅 들린다. 그리고는 단상위로 올라가서 우리를 향해 말하였다.
"주목~!"
일순간, 조교들이 득달같이 외치기 시작한다.
"주목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아~! 복명복창 안합니까아?"
"앉아~! 일어나~! 앉아~!"
냉혈한 교관은 특유의 저음으로 우리를 압도하였고, 우리는 깜짝 놀라서 연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였다. 곧 천여명의 장정들은 한 몸이 된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반갑다~! 지금부터 인도인접을 실시하겠다~! 각 조교들의 말을 잘 듣고 움직일 수 있도록~!"
조교들은 우리들을 지역별로 나누기 시작하였다. 신기하게 경상도에서 온 인원들이 많았다. 한명 한명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며 앞으로 나갔고, 조교의 안내를 받아 3박 4일간 머물게 될 내무실 별로 줄을 맞추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얌전히 앉아 있는 장정들, 이별의 아쉬움은 온데간데 없고, 초롱초롱한 눈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의 이름이 들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행여 조교가 두번,세번이라도 부르면 어김없이 열외하여 교관 앞으로 직행하였다.
"사오정은 죽음이다~!"
근데, 지켜보고 있으니 좀 웃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데, 순간 자신의 이름이 들리면 당황하더니 바로 대답을 하지 않다가 결국 끌러간다. 그렇다고 옛날 군대처럼 빡세게 굴리는 거는 아닌데, 역시 분위기는 무섭다. 지켜보는 우리들은 상황이 너무 웃긴데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악랄가츠~!"
머지? 방금 내 이름 부른건가? 긴가민가 하였다. 조교가 다시 부를려고 입을 뗄려는 찰나~! 다급한 나머지 허겁지겁 일어나면서 대답하였다.
"네네~!"
"네네~?"
조교는 어이 없단듯이 째려본다. 아나~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조교에게로 뛰어갔다. 그렁그렁한 눈빛, 살짝 내려간 입꼬리, 바들바들 몸을 떨어주는 센스. 조교도 불쌍해 보였는지, 그냥 넘어갔다. 역시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인정이 있어~!
"불쌍해 보이면 이득이다~!"
그렇게 인도인접이 끝나고, 다시 교관이 우리들 앞으로 나오더니 말하였다.
"자 이제 내무실로 입장하기 전에 반입금지 품목 가지고 온 사람들, 마지막 기회다! 앞으로 가지고 나온다! 지금 안 나오고 검사해서 걸리면 진짜 죽는거야~ 진심으로~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죽일거야~!"
교관의 말이 끝나자, 조교들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궁예의 관심법 모드로 돌입하였다. 마음속으로 우리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너 가지고 있지? 지금 조사한다? 조교들의 강렬한 눈빛을 받은 녀석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더니 교관에게로 다가간다.
"쯧쯧~! 바보들~!"
이미 선배들에게 들은 정보로는 절대 검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게다가 어차피 3박 4일만 머물고 떠나기 때문에, 조교들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걸려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물론 훈련소라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고로 나는 10개비의 담배을 가지고 있었다. 3박 4일간의 식후땡을 책임지는 소중한 담배 말이다.
자수한 녀석들은 교관에게 한 소리 듣더니 다시 대열에 합류하였고, 조교들은 당장이라도 뒤져볼듯한 기세로 연신 돌아 다니고 있었다. 분명히 검사 안한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왠지 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머지? 이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말이다. 하앍 너무 떨린다.
"진짜 마지막 기회다! 올해부터 내무실 입장할 때 전원 검사 받는 거 알지? 이따가 걸리면 진짜 죽는다~!"
헐~! 뭐야~! 올해부터 내무실 입장할 때 검사하다니? 그러고보니 선배들은 죄다 4, 5년전에 입대한 사람들인데, 그새 바뀐건가? 정말 진퇴양난의 순간이다. 나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개기다가 걸리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어느덧 심장박동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내 귓가를 울리고 있다. 쿵쾅쿵쾅~!
몇몇 녀석들이 뻘쭘하게 일어나더니 자수하였다. 그래 지금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나는 점퍼 안주머니 깊숙이 숨겨 둔 담배를 꺼내서 일어 날려는 순간~!
"전원 기상~! 앞에 있는 조교를 따라 이동한다~!"
'아나~! 망했다~!'
점퍼 안주머니에 쥐고 있던, 담배를 살며시 놓았다. 자수할 기회를 놓쳤다. 옆에 서있는 조교가 나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무실로 향하는 길이 좀전에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건물로 들어간 우리들은 조교들의 안내에 따라 윗 층으로 올라갔다. 길다란 복도따라 걷더니 곧 우리 내무실 앞에 도착하였다. 우리를 안내하던 조교는 내무실 문 앞에 서서는 차례대로 입장시키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할 수 있다.
"뭐야? 검사 안 하잖아~!"
역시 군대는 허풍이야~! 이내 마음속의 불안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고, 평온해졌다. 좀 전에 자수한 녀석들은 똥씹은 표정으로 허탈해 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는 담배갑을 쓰다듬었다. 이것만 있으면 돼! 너와 함께라면 외롭지 않아~!
내무실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십명의 장정들이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서로 알아보는 장정들이 있었다. 당시 우리 내무실은 지역별로 배정받았기에 거의 내가 살던 도시 인원들이었다.
나도 혹시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싶어서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23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한 나로서는 딱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몇몇 녀석들은 반가운지 연신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내 양 옆에 있는 장정들도 아는 사람이 없나 보다. 말은 걸고 싶은데, 뻘줌하다. 아마 저녀석도 마찬가지겠지? 연신 눈을 맞추면서 말걸 타이밍을 잡았다.
"저기..."
"저기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요?"
하하~ 역시 너도 말하고 싶었구나~!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존대말로 서로의 인적사항을 물어 보았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친구지만, 3박 4일간 그 친구 덕분에 심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보다 한살 어렸는데, 바로 옆 학교를 다녔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 보였다.
"형이라고 부를게요~!"
"에이 뭐가 형이야 동기인데~!"
"그래도 고향 형이잖아요~!"
"편한대로 해~!"
그날밤 난생 처음 점호라는 것을 취하고, 취침 시간이 되었다. 강원도의 겨울, 연신 보일러를 가동중인 내무실마저도 춥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옷을 입은 채로 매트리스를 깔고, 모포를 얼굴까지 덮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눅눅한 모포의 냄새가 나의 후각을 자극하였다.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벌써부터 내 방의 푹신한 침대가 그립다.
"집에 가고싶다~!"
부모님도 보고 싶고, 동생도 보고 싶고, 여자친구도 보고 싶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벌써 나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며 군대에서의 첫날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제 전역까지 D-729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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