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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102보충대 上편, 102보충대 中편, 102보충대下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보충대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눈 뜨자마자 조교들이 내무실로 들이 닥쳤다. 신속하게 연병장으로 집합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허겁지겁 매트리스와 모포를 정리하였다. 옆자리에 있던 후배와 같이 모포를 정리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 보았다.
"이 녀석 왠지~! 나를 의지하는 거 같애~!"
오전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우리들을 이쪽 저쪽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헌혈, 정신교육 등을 하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입맛이 별로 없었는데, 나도 별 수 없는 사람인가보다. 점심때가 되니 슬슬 허기가 밀려왔다.
102보충대의 밥은 정말 최악이었다. 사실 최악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불과 하루전만해도 어머니가 해주시는 진수성찬을 먹다가 먹는 짬밥이라서 그런지 정말 아무런 맛이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지~! 이제 앞으로 2년동안 먹을 밥인데 말이다. 취사장으로 들어가니 안경에 습기가 가득 찼다. 휴지로 안경을 닦고 오늘의 메뉴를 살펴보았다.
오오 이건~!
"자장면이다~!"
그래 자장면이라면 맛있을지도~! 나와 후배는 금세 싱글벙글거리며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으러 갔다. 취사병 아저씨는 갓 삶은 아니 좀 지나서 퉁퉁 불은 면을 식판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단무지와 자장을 받고는 식탁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간과하고 있었다.
"젓가락이 없잖아~!"
아나~! 숟가락을 자장면 먹어봤음? 포크 숟가락도 아니고 그냥 일반 숟가락이다. 그렇게 우리는 미끌어지는 면빨을 어떻게든 먹어볼려고 아등바등거렸다. 흑... 엄마 보고싶다! 어쨌든 생각보다 맛은 괜찮았다. 아니면 슬슬 짬밥에 적응되어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자장범벅이 된 식판을 들고, 씻으러 갔다. 차가운 영하의 겨울 날씨에 취사장을 나서자마자 식판은 얼어붙는 거 같았다. 차가운 물로 빡빡 문지르고 조교에게 검사를 맡아야 된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흔한 퐁퐁따윈 없다. 비누를 녹여서 만든 정체불명의 거품 물. 손이 터지는 거 같애! 대충 닦아야지 ㅋㅋㅋ
"다시~!"
흑... 예리한 녀석~! 하긴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식판만 보는 녀석일텐데. 그는 이미 식판검사하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힘들게 식판도 닦고, 다시 내무실로 돌아 왔다. 따뜻한 내무실 온기에 든든한 포만감까지 2초나마 행복을 느꼈다.
"담배가 피고 싶다~!"
난 시간, 목숨 걸고 가지고 들어온 담배가 나의 점퍼 안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서 주위를 살폈다. 조교는 저멀리 복도에 한명 서있고, 나머지는 식사를 하러 갔나보다. 지금이 찬스야~! 나는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가서 고리를 걸어 잠궜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화장실 천장은 다 오픈되어 있기 때문에 담배 연기가 뿌옇게 올라 가는 것을 주의하여야 했다. 라이터의 불을 켰다. 담배를 한 개비 물고 불을 붙혔다.
쓰읍~! 하아아~!
"이대로 죽어도 좋아~!"
24시간만에 나의 몸 속으로 투입된 니코틴은 급속도로 온 몸을 향해 퍼져갔다. 현기증이 났다. 무심코 내뿜은 담배연기~! 금새 화장실 안이 뿌옇게 흐려졌다. 다급한 나는 맨 손으로 연신 화장실 안을 부채질 하였다. 나는 내 손이 그렇게 빨리 부채질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선풍기 되어 버린 내 손은 연신 부채질 하였고,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은 빙빙 돌리면서 연기가 뭉쳐지지 않게 하였다. 어찌보면 정말 돌아이 같다. 그래도 난 행복하였다. 그렇게 담배타임을 가지고 유유히 내무실로 복귀하였다. 없어진 나를 기다리던 후배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연신 끙끙거렸다.
"어어? 형~! 이 배신자~!"
"왜?"
"혼자 담배피고 왔죠?"
"앜ㅋㅋㅋ 냄새나? 후우우~!"
"하앍~! 형의 입술을 훔치고 싶어~!"
"오우 쉣~! 줄게줄게 가서 피고와~! 징그러운 녀석~!"
그렇게 후배는 마치 전역증이라도 받은거 마냥, 해맑게 웃으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그 녀석이 뛰어가고 얼마뒤, 식사를 마친 조교들이 대거 복도로 들어서더니 오후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왠지 불안한다. 저녀석 손은 내 손 만큼이나 빠를까?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 울려퍼지는 조교의 외침~!
"화장실에 있는 인원 전원 다 나옵니다아~!"
푸하하~! 걸렸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조교들은 화장실에 있는 인원들의 손을 확인하며 담배 핀 후배를 색출하였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후배, 나는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라이터를 화장실에 숨겨 놓았기를..... 제발....."
얼마후, 내무실로 복귀한 후배, 내 옆으로 오더니 털썩 주저 앉았다. 그 녀석이 옆에 앉자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빡세게 구른 모양이다. 차마 라이터를 챙겼냐고 물을 수 없었다. 형은 너보다 라이터가 더 소중한데 말이야...
그렇게 보충대에서의 시간도 흐르고 흘러, 어느덧 퇴소 전날이 되었다. 이날은 드디어 내가 앞으로 생활하는 자대와 훈련소가 발표되는 날이다. 오후부터 내무실 동기들은 저마다 줏어들은 지식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야야 그나마 강원도 남쪽에 위치한 36사단이 최고야~!"
"1군사령부도 괜찮다고 하던데~!"
"무조건 11사 27사만 피하면 된다던데, 거긴 진짜 죽도록 훈련만 한데~!"
"아냐 요즘에는 11사단도 기계화로 전환되어서 그나마 편하데~! 대세는 27사임~! ㅋㅋ"
얼핏 들어보니, 죄다 빡센 부대인 거 같다. 그나마 36사단이 파라다이스라고 하였다. 예전 젓가락부대로 유명한 11사단은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전환되어서 차량기동을 한다고 하였다. 기타 최전방사단은 GOP부대이기때문에 보급도 양호하고 훈련도 거의 없다. 결국, 27사단만 안가면 되는거군~!
후배 녀석은 며칠전부터, 테니스병을 입에 달고 살았다. 체대를 다니던 그 녀석은 각종 테니스 대회에 입상한 경력이 있었다. 군대에서도 테니스병을 하면서 달콤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형~! 나 왠지 테니스병 되면 완전 널널할 거 같애~!"
"흑... 부럽다~! 나는 딱히 특기가 없는데..."
"형은 중국어 잘하잖아~!"
"중국어라... 사단장 따님 중국어 과외나 할까?"
"과연 형한테 맡길까? ㅋㅋㅋ"
"하긴 나같아도 불안해서 안 맡기겠다 ㅋㅋㅋ"
조교가 들어오더니 내무실 TV를 켰다. 저게 작동이 되는거구나~! TV에 전원이 들어오자 다들 바깥소식이 궁금하여 화면을 집중하였지만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곧 추첨 현장이 연결되더니 실시간으로 우리의 자대배치 결과를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다들 양손 모아 기도하면서 자신의 운을 하늘에 맡겼다.
병사 한명 한명의 자대배치 결과가 나오자 내무실은 환호와 아쉬움, 좌절, 위로로 가득찼다. 같이 방송을 지켜보던 조교도 편한 부대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고, 힘든 부대가 나오면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조교의 머리를 보면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하였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제발 편한 부대로 가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악랄가츠 27사단~!"
순간, 내 귀을 의심하여 다시 화면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내 이름 옆에는 27사단이란 선명한 글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조교를 바라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지으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머야~! 머리라도 흔들란 말이야~! 어흐흑흑ㅜㅜ
옆에 있던 후배는 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바로 앞 번호에서 27사단이 나왔으니, 연달아 나오지 않을거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TV화면에서는 후배의 자대배치 결과가 발표되고 있었다.
"후배 703 특공연대~!"
잘못 들은 걸까? 특공대라니? 앜ㅋㅋㅋㅋ 나는 화면을 확인하였고, 후배의 이름 옆에는 분명히 특공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우울했던 기분이 급 즐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나 혼자 죽을순 없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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