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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102보충대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정오가 되자,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한달 전 입대영장을 받고, 손수 D-Day에 입력해놓았던 축입대가 반짝반짝 거린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의 전원을 종료하고는 어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여기 내 사진 겁나 많아~! 보고 싶을때 봐~!"
어머니는 나의 휴대폰을 한번 보시더니 쿨하게 핸드백 속으로 던져 넣었다. 아버지의 차량이 102보충대 바로 앞까지 도착하였다. 역시나 정문 앞에서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자창은 이미 만석이었고, 앞 도로까지 양 옆으로 길게 주차되어 있었다.
평소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시는 아버지 성격이라면, 이렇게 붐비는 곳에는 얼씬도 하시지 않을텐데, 아들 군대 간다고 짜증 한번 안내시고, 주차할 곳을 찾아 연신 두리번 거리신다.
주차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102보충대로 다시 걸어가고 있었다. 주위에는 나와 같이 부모님, 친지들과 같이 온 청년, 친구들에게 둘려쌓인 청년, 여자친구 손을 꼭 잡고 있는 청년 그리고 외로운 시라소니처럼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청년 등 많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적도 없고, 살아온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천차만별인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오늘부터 민간인이 아니라는 거. 지금까지는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면, 당장 내일부터는 자신이 아닌 조국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거다.
내가 먹고 싶을때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하고, 나라에서 정해진 시간에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 뿐만 아니라, 속옷부터 시작해서 신발, 모자, 치약, 칫솔까지 모두 나라에서 주는 것을 사용하여야 한다. 지금은 개성있고 다양한 우리들이 내일부터는 통일된 복장과 행동방식으로 생활하여야 되는 것이다.
"아들 뭐 필요한 거 없어?"
"에이~! 가면 다 줄텐데~!"
"그래도 깔창 같은 거 사갈래? 반창고는?"
"에이~! 어차피 전투화 신으면 물집 다 잡히고 까진데~! 괜찮아~!"
어머니는 뭐가 아쉬운지 계속 상인들이 파는 군용품을 보시며 나에게 물어보셨다. 그러나 튼튼한 손목시계 하나만 있으면 되기에 나는 필요없다고 하였다. 동생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왔다. 위 사진은 오마이뉴스의 양동정기자님께서 아드님을 입대시키면서 찍은 사진이다. 내가 입대할 때만 하여도, 엄격한 사진통제 때문에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하였지만, 요즘에는 찍을 수 있나보다. 이에 허락을 구하고 공수해온 사진이다.
추운 겨울, 우리 가족은 부대 정문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 있는데, 정문 앞으로 교관과 조교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출입문이 개방되더니 입영 병사와 가족들을 안내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모습은 모터쇼의 레이싱걸들 만큼이나 친절하고 멋있었다.
"입영 장정들과 가족들은 입장해주십시오~!"
교관과 조교들은 간결하고 절도있는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였다.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교관의 목소리에 따라 조용히 입영행사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정문을 통과하였다. 102보충대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어~!"
의외로 부대안의 전경은 평화로웠다. 드넓은 연병장과 규격화되어있는 건물들, 잘 정리정돈되어있는 나무와 화단, 내가 생각하던 군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비록 3박 4일동안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부내내 길을 따라 얼마나 올라갔을까? 앞쪽에 스탠드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가운데 행사장에는 군악대 장병들이 우리들의 위해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경쾌한 연주도 나에게는 슬프디 슬픈 멜로디처럼 들려왔다.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계단 밑에 부모님이 앉아 있었고, 나와 동생은 바로 뒷편에 앉았다.
"민아 형 덕분에 미리 체험도 하고 좋겠네~! ㅋㅋ"
"하하 이런거 별로 체험하고 싶지 않아~! ㅋㅋ"
평소 괴롭히기만 하던 형이 떠난다고 좋아라 하던 동생도 막상 헤어짐의 시간이 임박해오자 긴장하였나보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 지금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보겠니~! 만끽해라~! ㅋㅋㅋ
사람들이 다 모이자, 군악대의 연주가 중단되었고, 중앙 단상에 교관과 조교들이 올라왔다. 중앙에는 간부들이 있었고, 그 양 옆으로 길게 조교들이 도열하였다. 삐까번쩍 빛나는 조교모, 화려한 휘장과 복장으로 하여금, 연신 눈부셨다. 그들의 등장으로 장내는 일순 적막감이 흘렀고, 곧 간부 한분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반갑습니다. 소령 아무개입니다. 추운 날씨에 먼 곳까지 와주신 가족 친지분들과 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입대장정들은 이곳에서 3박 4일간 머물며, 기초 보급품과 훈련소를 배정받게 될 것 입니다. 솰랴솰랴~!"
102보충대에서는 하는 일이 딱히 없다. 그냥 머물면서, 군복과 전투모, 세면백등 간단한 보급품을 지급받고, 기수에 따라 필요한 특기병들을 차출한다. 간부는 간략한 소개와 앞으로 입영 장정들이 생활하게 되는 것들을 알려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쥐 죽은듯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 간부가 올라오더니 육군에 관련된 정보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평소때 같으면, 빨리 좀 끝나라~! 라고 생각 하겠지만, 지금만큼은 영원히 말하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앞에 있는 간부도 모든 멘트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그 순간, 옆에 있던 군악대가 장엄하고도 엄숙한 연주를 시작하였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이등병의 편지~♪
순간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하였고, 단상에 올라온 간부가 마이크를 쥐고 말하였다.
"입영장정들은 모두 내려와서 체육관으로 이동해주십시오~!"
간부의 멘트가 끝나자, 도열해있던 조교들이 양 옆으로 갈라지더니 체육관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하나둘씩 내려오는 장정들, 아마 그들은 혼자 온 사람들인가보다. 작별인사를 할 상대가 없으니 바로바로 내려와서 체육관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내려 갈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보지도 못하시고 펑펑 눈물을 쏟아내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우시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봤다. 4형제중에 혼자 여자인 어머니는 어릴때부터 오빠들과 남동생 사이에서 선머슴처럼 강하게 자라오셨다. 24살의 어린 나이에 나를 낳으시고, 누구보다도 엄하게 키우신 우리 어머니, 나에게는 항상 강한 존재였다.
20살 어린 시절, 나 혼자 중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였을때도, 활짝 웃으시며 배웅해주시던 그 분이 지금 펑펑 우시며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도 당황하셨고, 나도 당황하였고, 동생도 당황하였다.
"야야~ 니 엄마 운다 빨리 드가라~!"
아버지는 나와 마지막 악수를 하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내 귓가에는 군악대의 빌어먹을 이등병의 편지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합쳐져서 울려퍼지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돌아서서 어머니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어깨를 만졌다.
"울지마 쪽팔리게! 잘 갔다올께 민아 엄마 챙겨!"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계단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한쪽에서는 친구들의 헹가래가 벌어지고 있었고, 떠나가는 남자친구를 보며 연신 발을 동동굴리며 울고 있는 소녀도 보였다. 아마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본 거 같았다. 어느덧 그들의 울음소리와 파이팅소리는 군악대가 연주하는 이등병의 편지를 압도하였다.
이시간, 나는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슬픈 곳이 되어버린 현장에 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랑때문이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이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현실, 그 것이 이 곳을 가장 슬픈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체육관으로 향하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우리들은 울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군인이기 때문에...
저 멀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교관의 전투모가 유난히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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