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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대하는 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1월 24일, 입대 전날이다. 드디어 민간인으로서의 마지막 날이다. 작년 여름 한국에 들어와서는 징병검사와 한번의 입영연기를 하고, 결국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하게 되었다. 의레 입대하는 날이 되면 여친이나 친구들의 배웅을 받을텐데, 여친님께서는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나셨다. 하하하 그런거다 인생은....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늦게 입대하였기에 다들 이미 현역 군인들이었다. 남은 친구는 ROTC였던 경호와 공익인 승재, 그리고 승우가 있었다. 그동안 가족들과 계속 떨어져 지내왔기 때문에 입대하는 날만큼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춘천으로 떠나기 전 날, 마지막으로 가진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주었다.
"난 장교~! ㅋㅋㅋ"
"난 공익~! ㅋㅋㅋ"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된다. 갑자기 승우가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 옆에 떨어 뜨렸다. 뭔가 싶어서 줏어 보았더니...
"난 예비역~! ㅋㅋㅋ"
"●█▀█▄ "
그렇게 친구들의 감동어린 치어리딩을 받고, 다음 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춘천으로 출발하였다. 춘천을 가는동안 피곤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내가 운전을 하였다. 당시 운전하는 것을 참 좋아라 하였다. 시원하게 뚫린 중앙고속도를 타고 쾌속질주하는데, 아마 내 인생에게 가장 우울했던 드라이브가 아닌가 싶었다. 정말 중앙분리대를 들이박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이대로 사고나면 입대 안해도 되겠지?"
그러나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부모님과 동생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신나게 달려 도착한 춘천 시내, 이미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행여 방을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하였는데, 다행히 손쉽게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민간인으로서의 마지막 밤은 가족들과 함께 하였다.
다음날 아침, 피곤할 법도 한데 꼭두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미니홈피에 접속하여 미처 연락을 못한 지인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미니홈피에서 배경음악 흘러 나온다. 시나위의 은퇴선언... 정말 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거 같았다.
나는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온수에 몸을 맡겼다. 이제 온수샤워는 꿈같은 일이겠지? 아니 샤워는 할 수 있을까? 하루 아침에 모든게 바뀔텐데, 적응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고보니 아직 머리도 자르지 않았다. 물기가 촉촉히 젖은 나의 머리칼은 조명에 비쳐져 연신 빛나고 있었다.
안녕~ 마이 헤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샤워를 하고 나오니, 부모님과 동생이 모두 깨어나셨다. 이제 입대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4시간 뿐이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는 숙소를 빠져 나왔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춘천 시내는 한적하였다. 자고로 춘천에 왔으면 춘천 닭갈비를 먹고 가야지~!
우리는 아침부터 닭갈비를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원래 닭갈비 골목으로 갈려고 하였으나, 그냥 지나가다가 보이는 정체불명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영업 준비로 분주하던 식당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시곤 웃으며 반겨주셨다.
"아이고 아들내미 입대하는가보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급 안색이 어두워지셨다. 분명히 맛있는 닭갈비였는데, 아버지도 동생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나와 어머니는 좀처럼 맛있게 먹지 못하였다. 식사를 하는데 지인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애써 웃으며 통화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우신지 어머니는 드시던 숟가락을 놓으셨다.
"얼른 전화 끊고 밥이나 먹어~!"
평소처럼 맛있게 먹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많이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그렇게 나는 넘어가지 않는 닭갈비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 넣었다. 식사를 마친 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직 머리도 자르지 않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102보충대로 가는 길에 마침 문을 연 미용실이 보이길래 잽싸게 들어갔다. 미용실 아주머니 또한 한 눈에 알아보셨다.
"어머 입대하시는구나~!"
이거 뭐~! 춘천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죄다 돛자리 깔아도 되겠다~! 하긴 지금 우리 가족이 풍기는 분위기만 봐도 다 알아 맞출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바리깡을 손에 쥐시고는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내 머리를 향해 돌진하였다. 차카운 바리깡은 연신 내 머리를 신나게 질주하였다. 바닥에 떨어진 수북한 머리칼을 보니 비로소 입대한다는 실감이 났다.
문득, 어머니께서 나의 모습을 보시고 슬퍼하지는 않으실까? 걱정이 되어 바라보니, 아버지와 아침마당을 보시며 즐겁게 웃고 계셨다. 역시 대인배...
영락없이 군인머리가 된 나를 보니 영 어색하였다. 표정이며 자세며 당최 다 어정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신 브라보를 외치시며 사진을 찍으셨고, 동생은 뭐가 그리 웃긴지 실실 쪼개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시곤 팔짱을 끼더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이야 우리 아들 늠름하네~! 누구 아들?"
"엄마 아들~!"
궁디팡팡~! 세례까지 맞고서, 마지막 종점을 향해 출발하였다. 뒷좌석에 앉은 나와 어머니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근데 아침에는 울쩍하였는데, 지금은 별로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나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 102보충대 간판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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