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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상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2월, 새로운 중대장님이 오신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이다. 예전의 초특급 울트라 카리스마 중대장이 떠나고 이효리 닮은 여친을 둔 특공대 출신의 신임 중대장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중대장2편을 참고하면 된다.
당시 취임사에서 중대장은 특공대 출신답게 오로지 체력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여, 중대원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맞는 말이다! 소총중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체력이다. 완전 군장을 메고 끝까지 걸을 수 있는 체력~!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 대대는 혹한기대항군훈련부대로 선정되어 훈련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중대장 입장에서도 부임되자마자 처음 뛰는 훈련이다보니 실로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나 왜~! 하필 우리부대가 대항군부대로 선정되었어~!'
'그러게 말입니다. 안그래도 추워죽겠구만~! 결국 우리는 혹한기훈련 2번 뛰는거지 말입니다~!'
'정녕 하늘이 우리를 버린거냐!'
고참과 나는 중대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군대에서 수요일은 정신교육의 날이라고 하여, 오전에는 전 중대원이 내무실에 모여서 정신교육을 받는다. 국방TV도 시청하고, 중대장 정신교육도 실시된다. 그리고 오후는 전투체육을 실시한다.
전투체육은 부대마다 다르지만, 주로 흔히들 알고있는 군대스리가를 하거나 자유롭게 연병장을 뛰어다니며 논다. 물론 고참들은 짱박혀서 시간을 때우지만 말이다.
오전 정신교육시간, 전 중대원들은 2소대 내무실에 모여 국방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자 중대장이 내무실로 들어왔다. 중대장의 입담은 가히 개그맨 빰칠 수준이었다. 또한 화려한 개인기, 연애이야기로 우리 중대원들을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이것으로 정신교육은 마치고, 전투체육시간에는 깔끔하게 구보나 한번 뛰자~!'
우리 부대는 한겨울에도 꼬박꼬박 아침점호를 취한 후, 알통구보를 실시한다. 영하 20도의 날씨에서도 어김없이 뛰었다. 그러나 수요일날은 구보를 하지 않았다. 오후에 전투체육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사들은 알통구보가 없는 수요일과 주말을 제일 좋아하였다.
'장난해? 구보가 왠말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수요일에는 제발 좀 쉬지 말입니다~!'
'특공대 출신이라 체력도 겁나 좋을거 아냐? 미친듯이 뛰는거 아냐?'
중대원들은 투덜거리며, 점심을 먹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곧 집합시간이 되었고, 중대원들은 사열대 앞에 도열해 있었다. 다른 중대는 활동복으로 환복하고는 연병장에서 신나게 볼을 차고 있었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중대장이 나왔다.
'자~! 다들 모였나? 가뿐하게 한바퀴 돌고오자~!'
그렇게 중대장을 선두로 옆에는 통신병이 중대기를 들고 출발하였다. 곧 이어 1소대, 2소대, 본부포반, 3소대 순으로 오와 열을 맞추고는 뛰기 시작하였다. 선두에서 뛰는 중대장은 목청이 터지라 구호를 외치며 우리 중대를 인솔하였다.
위병소를 벗어나자마자, 평소 아침구보를 뛰는 코스로 가지않고,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아니나다를까? 평소 아침구보때보다 2배는 빠른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헉~! 왜이리 빨라? 미친거 아냐! ㄷㄷㄷ'
이거 뭐~! 500미터도 안 뛰었는데 벌써 숨이 차오른다. 평소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니, 호흡관리도 안되고 금방 지치기 시작하였다. 곧 시작되는 군가퍼레이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옆에서 뛰는 일,이등병들은 목청터져라 군가까지 꽥꽥~! 질러대니 더 힘들어 보였다.
1Km, 2Km, 3Km는 족히 뛴거 같다. 이정도 뛰면 당연히 유턴해서 왔던 길로 돌아가야된다. 지금 당장 턴해도 3Km는 더 뛰어야 되는데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뛸려는 걸까? 이것이 바로 특공인의 구보이구나~! 가히 폭풍구보이다~!
곧 여기저기서 낙오하는 이등병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소대마다 고참들의 욕설이 난무하였고, 이등병들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화창한 수요일 오후, 우리 중대는 아비규환의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 여기가 바로 생지옥이다.
'살려줘!'
문득, 중대장이 무서워졌다. 앞으로 중대장과 함께 매주 수요일마다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 무서워졌다. 얼마나 더 뛰었을까? 앞쪽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드디어 중대장이 오던 길로 유턴을 한 것이다. 앞으로 뛰어온 만큼 돌아가야하지만, 그래도 일단 턴을 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근데, 지금 족히 5km는 뛰어온 거 같은데,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난 이제 더이상 뛸 자신이 없었다. 상병달고 낙오하는건가? 무슨 개망신이냐?
우리소대는 3소대이기 때문에 가장 후미에서 뛰었다. 맞은편에 중대장과 통신병이 유턴을 하여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 시야에 포착된 중대장의 모습~!
앜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저렇게 고통스러운 표정이 또 있을까? 중대장은 연신 땀을 뻘뻘 흘리고,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낙오하여 질질 끌고가는 김이병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헐~ 가츠야 중대장 얼굴 봤냐?'
'겁나 위험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앰블 불러야 되는거 아닙니까?'
'아무리봐도 백만년만에 구보하는거 같은데?'
그랬다! 무적체력을 자부하던 중대장은 보직이동하느라 몇개월간 구보를 안했다. 게다가 특공대에서도 중대장이었기 때문에 딱히 구보를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실로 오랫만에 뛰는 구보에서 예전을 생각하며 그만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었다.
힘차게 외치던 중대장의 구호소리는 어느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초반에 평소보다 2배로 빠르게 뛰던 속도는 온데간데 없고,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뛰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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