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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복귀행군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대대장님과 함께 나란히 발을 맞추며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앞서가시는 우리 소대장은 센스있게 대대장님 파이팅~!을 외쳤다. 이에 질세라 우리 소대원들은 원기왕성하게 파이팅을 외쳤다.
2대대 파이팅~!
5중대 파이팅~!
대대장님 파이팅~!
대대장님은 지휘봉을 흔들며 화답하셨고, 그제서야 발길을 재촉하여 우리를 따라 잡으셨다. 설마, 이걸 기다리고 계신건 아니겠지? 이럴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외치는건데~! 문득, 포상휴가증이 눈앞에서 날라간 기분이었다.
이제 반정도 올라온 거 같다. 이미 십수번은 행군한 코스지만, 단한번도 쉽게 느껴진 적이 없다. 안그래도 강원도의 고도는 타지역에 비해 높다. 점점 올라갈수록 숨쉬기가 불편해진다. 순간 내 뒤에서 걷고있던 김샘 아니 이이병의 호흡소리가 급격하게 거칠어 진다.
'허어억... 하아학학..'
몸을 틀어서 이이병을 살펴보았다. 딱봐도 극한의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서 어떻게 해줄 방법은 없다.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은 이등병 막내지만, 그도 시간이 지나면 나처럼 어깨에 녹색견장을 차고 자신의 분대원을 책임지고 다녀야 할 분대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샘~! 정신차려! 거의 다왔어~!'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직 30분은 족히 올라가야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 밖에 없다. 당장 숨넘어가는 녀석한테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할 순 없잖아~! 그래서 고참들이 가장 잘하는 거짓말이 바로 이거다! 거의 다왔어! 저 고개만 돌면 된다!
훈련기간에는 제대로 면도할 형편이 못된다. 그나마 비전술 훈련인 진지공사기간이기에 저녁마다 씻을 수 있지. 전술훈련 경우에는 일주일 꼬박, 얼굴에 물 한방울 묻히지 못한다. 양치질? 글쎄? 거의 안한다. 세면백을 군장에 왜 챙겨가는지 모르겠다. 더럽다고 욕하지 말자! 씻기 싫어서 안 씻는게 절대 아니므로, 그 누구보다도 씻고 싶은 당사자들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멀리 도마치고개 정상이 보인다. 휴우 지긋지긋한 오르막길도 끝이구나~! 드디어 강원도로 다시 진입하는 순간이다. 강원도로 진입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공기가 차가워진다. 아나~! 이런 미친 강원도! 저주 받은 땅! 어흐흑흑ㅜㅜ
이제 수킬로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마지막 마의 코스인 유격장고개가 나온다. 유격장 고개만 사뿐히 넘어가주면 바로 주둔지가 나온다. 중대로 돌아가면, 따뜻한 온수샤워와 푹신한 매트리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겠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즐거운 상상을 하다보니 내리막길도 끝났고, 유격장 고개 초입부근이었다. 말이 고개지 이건, 엄청난 산이다! 해발 천고지를 육박하는 엄청난 산이다. 게다가 등산로도 아니다. 그냥 정상을 향해 다이렉트로 올라간다. 군인들이 하도 걸어다녀서 일직선의 길이 생기긴 했는데, 이건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무식한 코스이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우리들에겐 정말~! 최대의 난코스다. 하지만 다들 이것만 넘으면 꿈에 그리던 주둔지가 나오기 때문에 악착같이 올라간다. 그러고보면 참~! 군대는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거 같다. 군장메고 서있으면 그냥 바로 뒤로 넘어갈 정도의 미친듯한 경사길, 다들 주위에 있는 나무를 닥치는대로 잡으면서 기어 올라간다.
결국, 이이병 뒤에서 가던 김일병의 욕설이 들려온다. 다시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니, 이이병은 엎드린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이병 뒤로는 소대원들이 정체되어 서있었다. 이제 나에게도 고생길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나는 조용히 전투조끼 오른쪽에 달린 무전기에 입을 갖다대었다.
'비룡장 비룡장(소대장) 등장바람! 당소 비룡둘(2분대장)이라고 알리는구나~!'
'당소 비룡장! 무슨일인가?'
'당소 비룡둘이라고 알리고 이OO용사 현시간부로 낙오! 낙오! 하였다고 알리는구나~!'
'비룡둘이 잘데리고 오기바람~!'
'양호~!'
그렇게 나는 이이병과 함께 대열을 이탈하여 소대원들을 먼저 올려보냈다. 평소 내 성격을 잘 알던 이이병은 연신 긴장한듯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였다. 나는 이이병을 바라보면 왜 낙오하는걸까? 분명히 출발행군때는 아무 탈 없이 잘 걸었는데 말이다. 출발행군때와 지금, 무엇이 다른걸까?
한번 대열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걷잡을수 없을만큼 벌어졌다. 원래 인간의 심리상, 한번 포기해버리면 아예 자포자기 해버린다. 근데 군대에서는 그러면 안된다! 어떻게든지 가야한다. 우리가 안간다고 대신 가주는 사람이 없다. 이이병을 내 앞에 세우고는 출발하라고 지시하였다.
'야~! 다와서 낙오하면 억울하지도 않냐? 여기는 너 데리고갈 앰블도 없어~! 걸어 임마!'
'이병 이OO!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흑흑!'
'왜 못걷는거야? 어~! 이게 쳐빠져가지고 죽고싶어? 어?'
연신 이이병을 떠밀면서 갈궜다. 잔인하다고? 매정하다고? 어쩔 수 없다. 그 상황에서는 달콤한 멘트따윈 전혀 도움이 안된다. 뚜벅뚜벅~ 어렵사리 발걸음 떼기 시작하는 이이병을 바라보면 나는 담배를 물었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깊은 산 속을 나와 이이병은 하염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정상에 당도하였다. 이미 중대원들은 휴식을 취하고 하산하였고, 우리는 쉬지도 못하고 다시 급경사길을 조심스레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저멀리 주둔지 영외도로에서는 대대원들의 함성과 군가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임마~! 다왔어~! 니 스스로 해낸거야!'
그렇게 이이병과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부대 위병소를 통과하였다. 이미 다른 중대는 환복하고 청소하느라 막사주변이 시끌벅적하였다. 유독, 우리 중대 막사만 불이 꺼진 채 조용하였다. 연병장을 가로질러 중대 막사쪽으로 다가가니 한무리의 병사들이 보였다.
우리 중대원들은 중대사열대 앞에 완전군장을 메고 가지런히 도열해 있었다. 그렇다! 이게 바로 이이병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와야만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한날 한시에 같이 싸우고 죽어야 되는 사자중대 전우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대열에 합류하자, 중대사열대 위에 서있는 중대장님이 말문을 여셨다.
'자~! 고생들 많았다~! 들어가서 씻고 바로 취침할 수 있도록~! 5중대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그렇게 우리 신나게 파이팅을 외치고 내무실로 뛰어들어갔다. 오랫만에 보는 내무실 침상이 너무 반짝반짝거린다. 곧 행정반에서 인원, 장비, 환자파악을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하였다. 나는 수첩을 꺼내서 장비와 환자파악을 하였다. 김일병은 깜짝 놀라 외쳤다.
'가츠병장님~! 이녀석 발 좀 보십시오~!'
이이병의 발은 실로 처참하였다. 이제서야 이녀석이 좀처럼 못 걷던 이유를 알겠다. 나같으면 아예 들어누웠을지도 모르겠다.
'야이 똘아이 같은 놈아! 언제부터 이랬어? 진작 말했어야지~!'
하긴,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웃긴다. 내가 이등병이었다면 과연 말했을까? 물론 별 것아닌 걸로도 죽겠다고 엄살피우는 녀석들도 있지만, 진정한 남자라면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냥 참고 걷는거지! 순간 이녀석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조사를 마치고, 이등병부터 온수샤워를 실시하였고, 부식으로 나온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곧,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워서 달콤한 잠을 청하였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자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불침번 근무를 서야하고, 또 누군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외곽근무를 나가야된다.
다음날 아침, 천원짜리 물집환자인 이이병은 쉬라는 나의 지시에도 괜찮다며 연신 소대원들과 훈련정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당직병이 소대로 들어오더니 대뜸 이이병의 부모님께서 면회를 오셨단다. 뭥미? 면회온다는 보고는 못받았는데 말이다.
'이이병~! 부모님 면회오셨다는데?'
'이병 이OO!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엔 안 사실이지만, 근처에 가족모임이 있어서 오셨다가 무작정 들어오신거란다. 평소같으면, 별 문제없겠지만 지금 이이병의 상태는 최악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2주간의 훈련으로 몰골 또한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보시면 아마 가슴이 찢어지실 것이다.
그래도 오셨으니 만나야지~! 나는 당직사관에게 보고하여, 면회를 외출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당직사관은 다시 당직사령에게 보고하여 사창리로 외출 나갈 수 있게금 하였다. 외출증을 받아가지고 이이병 손에 쥐어주고는 위병소로 떠나보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내 가슴이 더 아프다! 그렇게 부모님 만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내무실로 들어갈려는 찰나, 이이병이 나를 부른다.
'가츠병장님~!'
'아나 왜불러~! 임마! 저리가!'
나는 이이병의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었다. 못 들은척하고 들어갈려고 하는게 계속 목이 터져라 부른다. 결국,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이병에게로 다가갔다. 이이병은 부모님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다. 부모님께서는 연신 나에게 이이병을 잘 부탁한다며 인사하셨다.
'아이고 가츠병장님~! 우리 못난 아들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이렇게 늠름한 가츠병장을 보니 이제서야 안심이 되네요~! 별거 아니지만 가져가서 맛있게 먹어요~!'
부모님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떡과 치킨, 피자, 음료수를 내주셨다. 나는 분대원들을 불러 음식들을 중대로 올려보냈고, 외출 나가는 이이병을 배웅하였다. 그들이 떠난 위병소 앞에서 나는 담배를 물었다.
작년 겨울, 위병소에서 나를 보자마자 우시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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