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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상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2월, 오늘의 주인공은 지난 관심병사편에 등장한 나의 심복, 포스트 악랄가츠라고 불리던 이이병이다. 이이병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나를 보는 거 같아 꺼림칙했다. 이등병때부터 약삭빠르고 아부에 능했다. 위장군기 또한 일품이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기에 항상 이이병을 붙자고, 장난도 많이치고 괴롭히기도 하고 나름 친하게 지냈다. 사실, 나는 후임들과는 잘 놀지않았다. 주로 고참들이랑 놀았다. 고참들이랑 노는게 훨씬 재밌었다. 그런와중에 이이병은 그나마 나랑 노는 몇안되는 후임 중에 하나였다. 이이병이 자배배치 받던 그날부터, 내가 전역하는 날까지 1년이상을 같은 분대에서 동고동락하였다.
드디어 내일이면 이이병이 백일휴가를 나가는 날이다. 이녀석도 나처럼 훈련때문에 백일이 훨씬 지난 시점에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보통 신병이 휴가를 떠나면 맞고참이 전투화를 닦아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물론, 당시 상병이었던 나는 분대내 후임이 윤일병을 비롯해서 여럿 있었지만, 이이병의 전투화는 내가 닦아주었다. 사실, 닦아주고 싶은 마음에서라기 보다는 윤일병과 이일병이 근무를 나가는 바람에 닦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닦아준 것이지만 어쨋든 내가 닦았다.
지난 가을에 군대에 입대하여 추운 겨울을 부대에서 온갖 작업과 훈련으로 보낸 이이병, 드디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떠난다. 얼마나 설레고 떨리겠는가? 휴가 전날밤, 좀처럼 잠이 안 올 것이다.
'이이병 자나?'
'아닙니다~!'
'후딱자라~! 그라다가 밤새겠다~!'
'넵! 감사합니다~!'
'가서 이쁜 누나들 많이 만나고 와야돼! 연락처도 꼭 받아가지고 와야돼!'
'저만 믿으십시오~! 올때 맥심도 사가지고 오겠습니다~!'
역시 이녀석은 이등병답지 않아~! 나도 백일휴가 나갈때까지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맥심이라니~! 개념있는 녀석이야~! 후훗~! 내가 제대로 키웠군~! 그렇게 흐뭇해면서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고, 이이병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일휴가를 떠났다. 합법적으로 위병소를 걸어나는 이이병의 등을 보니, 내가 다 흐뭇하였다.
이이병의 집은 서울이기때문에 사창리 서울터미널에서 꿈에 그리고 그리던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그리고 동서울 터미널로 출발한다. 대략 1시간 50분가량 걸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광덕고개를 지나가는데, 고개를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잠이 든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부대로 복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느덧 금요일이 되었다. 이이병이 휴가나가서 머하고 놀았는지, 얼마나 맛있는 것들을 먹었는지, 어떤 미모의 여성들과 부비부비하였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 바로 이이병의 휴가복귀날이라는 것이다!
4박 5일의 백일휴가는 정말 4.5초같다. 눈한번 깜빡하면 휴가 첫 날, 벗어놓은 전투화를 신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오후가 되자, 분대장은 나보고 행정반에 가서 이이병에게서 연락이 왔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원래 백일휴가자들은 매일같이 행정반에 신변을 보고해야한다. 특히, 휴가복귀날에서는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꼬박꼬박 위치를 보고해야한다.
우리 부대의 휴가복귀시간은 오후 8시다. 고로 2시간의 거리에 있는 서울에서는 보통 4시나 늦어도 5시쯤에는 버스에 탑승하여야 했다. 4시쯤 행정반에 가보니, 아직도 연락이 안왔다고 하였다. 이거 불안한데~! 설마 믿었던 이이병이 미복귀하지는 않겠지? 아... 그동안 너무 장난쳤나? 아니야~! 난 떳떳해~! 어흫흑흑ㅜㅜ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슬슬 불안해진다. 소대장님한테 보고해야되나? 그 순간, 행정반 전화기가 울린다.
따르릉~♪
계원이 받더니, 나보고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이이병인가보다. 아나 놀래라~! 이색히 오기만 해봐라~! 아주 갈아마셔주마~! 계원은 이이병은 오후 4시 30분 사창리행 버스를 탄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대충 시간맞춰서 오겠군. 소대로 돌아갈려는 찰나, 금일 야간 당직사관과 당직병이 행정반으로 투입되었다.
'아나~! 휴가복귀자 있는 날이 제일 빡세~!'
그렇다~! 휴가미복귀가 종종 일어나기때문에 항상 휴가자들이 복귀하는 날은 긴장의 연속이다. 상,병장들은 별 걱정없는데, 백일휴가자들은 항상 초유의 관심사다. 소대로 돌아가서 분대장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당직병이 소대로 들어왔다.
'야 3소대 이이병~! 왜 연락이 없어? 지금 7시가 다되어가는데 어떻게 된거야?
벌써 시간은 오후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4시 30분 버스를 탑승하였다면, 벌써 사창리에 도착하여 부대로 연락이 왔어야했다. 심각함을 느낀 분대장은 누워서 TV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행정반으로 뛰어갔다. 곧 당직사관이 소대로 들어와서는 우리 분대원들에게 이이병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절대 사고칠 놈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소대원들은 다들 걱정하면서 시계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곧, 당직병과 분대장이 내무실로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당직사관님~! 방금 이이병한테 연락왔습니다. 이 똘아이가 글쎄~ 버스를 잘못타서 산양리로 갔답니다~!'
아나~! 이런 코메디가 다있나? 안그래도 강원도 전방인 우리 부대인데, 산양리는 사창리보다도 훨씬 더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색히 휴가복귀하랬더니 월북할려고 하네~! 정말 미치겠다~! ㅋㅋㅋ
알고보니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가는 버스랑 산양리가는 버스가 같은 플랫폼에서 10분차이로 출발한다. 휴가복귀에 압박감을 느낀 이이병은 그만 정신줄을 놔버리고, 10분 빠른 산양리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리고 휴가기간에 무리한 음주가무로 버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떠보니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산양리에 떡하니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놀랐을까? 부대로 전화하면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미 복귀시간은 1시간도 남지 않았다. 당직사관님이 직접 통화를 하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통화를 하였다.
'이이병~! 걱정하지마~! 천천히 와도 되니깐,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 휴대폰으로 계속 연락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 그래~! 조심히 와~!'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 분대장에게 바로 헤드락을 걸었다. 헤드락에 걸린 분대장은 고통스러우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있다. 하긴 말년에 분대원이 미복귀해서 영창가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40분후, 복귀시간 10분을 남기고, 이이병은 무사히 위병소로 도착하였다. 행정반으로 들어온 이이병, 마치 툭~ 건들려도 울 것만 같았다. 이미 충분히 겁에 질러있었기에, 당직사관은 별말없이 내무실로 돌려보냈고, 분대장도 소대원들에게 일체 아무말도 하지말라고 지시하였다.
그날밤 점호를 취하고 옆자리에 누운 이이병에게 물었다.
'임마~! 늦게온건 좋은데~! 내 맥심은 사왔냐?'
'흑...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진짜 어디가서 우리 분대라고 하지마~! 쪽팔려~!'
'흑흑... 근데 가츠상병님 재미난거 하나 알려드릴까요?'
'뭔데?'
'산양리에서 내려서 사창리로 택시타고 올때, 저 혼자 타고 온게 아닙니다~!'
'응?'
'저같은 놈이 2명 더 있더라고요~! 같이 타고 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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