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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입대전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4년 7월이다. 당시 중국에서 대학교를 다녔던 22살의 방탕가츠는 화려한 중국의 밤문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젊음이 좋았고, 사랑이 좋았고, 음주가무가 좋았다. 여느때처럼 밤새 놀다 들어온 나는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늘어지게 퍼자고 있었다.
전화가 울린다. 따르릉~♪ 따르릉~♪
'웨이 니하오~!'
'아부지다~!'
'헉~! 아부지~! 별고는 없으셨는지요?'
'긴말필요없고 속히 들어오너라~!'
그렇게 나는 본국으로 긴급소환되었다. 오랫만에 들어온 한국은 신세계였다. 무더운 여름, 한국의 누나들은 하나같이 다 이뻐보였다. 한국도 좋구나~! 에헤라디야~! 나는 기뻐하며 집으로 느릿느릿 발걸음 향하였다. 오랫만에 돌아온 마이 홈~! 현관문부터 나를 가로막았다. 연신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아나~ 장남도 모르게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리다니, 결국 다시 내려가서 공중전화로 동생에게 전화를 한 다음에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소자! 무사히 귀국하였사옵니다~! 어인일로 부르셨사옵니까?'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이제 조국이 너를 부르는거 같도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군인이 되거라~!'
헉~! 드디어 올 것이 왔다. 21살때부터 슬슬 걱정하였는데, 이제는 군대갈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막연히 가야지~! 가겠지~! 라는 생각만 하였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겁나 가기 싫다~! 아직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는거만 같았다.
침대에서 누워서 나의 몸상태에 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프로파일링 해보았다. 일단 손가락, 발가락 다있다. 키도 몸무게도 정상이다. 치아도 이상없고, 수술도 한번 한 적 없다. 정녕 나는 군대를 갈 운명인건가? 정신상태는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정신적으로 밀어붙이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 거 같고, 그나마 눈이 나쁘니깐 시력으로 한번 도전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일부러 공익가기에는 왠지 부끄럽기도 하였다.
결국, 징병검사에 나의 운을 시험해보자~! 나는 별다른 준비없이 그냥 병무청사이트에서 징병검사를 신청하였다. 외국에서 귀국한 자원들은 행여 또 출국해버릴까봐, 최우선 순위로 징병날짜를 잡아주었다. 아나 좀 천천히 잡아주어도 되는데, 뭐가 그리 급해요~!
7월 22일 아침, 나는 혼자 차를 타고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으로 갔다. 사실 같이 갈 친구들도 없었다. 이미 다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당시 네비게이션도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왠지 외롭다. 친구들은 다들 같이 검사받았을텐데, 막상 혼자가니 허전하였다.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징병검사 받으러 온 인원들이 대략 200명정도 있었다. 거기서 징병검사 받는 순번을 매겨주는데, 내가 당당히 1번이다. 아나 공부를 1등 해야지;;; 그래도 먼저 받으면, 먼저 집에 가는 시스템이니 좋긴하다. 알고보니 나이순으로 매기는데 그날은 내가 최고령이었다. 22살밖에 안됬는데 말이다.
처음으로 하는 것이 적성검사였다. 뭐 맞는말만 골라서 체크하면 된다. 문득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 반대로 해볼까? 아니야 정신적인 부분은 건들지 말자. 곧 평정심을 되찾았고, 열심히 문제들을 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혈액검사와 혈압검사~!
문득 그게 생각난다. 고급스런 용어로 하자면 괄약근 힘주기~! 힘줄까? 말까? 아나 이런 더러운 수법은 쓰지말자~! 소변검사도 한다. 소변에 침 뱉을까? 나의 머릿속은 여전히 현역과 공익의 기로에서 갈등 중이었다. 그러나 결단은 없었다. 그냥 생각만 하고는 이내 포기하기를 반복하였다.
소변검사까지 마치자, 탈의실로 집어넣고는 환복하라고 하였다. 이제 본격적인 징병검사가 시작되었다. 키 181 몸무게 77 혈압 121 혈액검사 양성 양성 양성.... 이대로는 안된다. 영락없이 현역으로 가겠다~! 기본적인 검사가 끝나자 다음방으로 이동하였다. 호오 수많은 책상에 의사선생님들이 앉아있었다.
안과, 치과, 내과, 외과, 정형외과, 피부과, 신경정신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등 종합병원을 능가하는 포스였다. 문득 옆에 앉은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봉투가 들어있었다. 왠지 탐나보였다~! 시력검사를 받기위해 기계를 눈을 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의사선생님이 연신 고개를 가우뚱거린다.
'자네 안경 언제부터 착용하였나?'
'초등학교때부터 착용했습니다~!'
'눈이 많이 나쁘네?'
'오오~! 그렇죠? 심각하죠?'
'음..... 알았네.... 다음~!'
이야~! 이거 뭐야~! 공익가기 완전 쉽네. 한방에 끝난건가? 하하~! 정말 의사선생님 표정은 절대 나를 현역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다음 검사를 받기위해 이동하였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아픈곳이 없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앉아마자 인사하고 바로 일어났다.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 마지막으로 본인확인같은 것을 하고는 모니터 화면앞에 서있었다. 그럼 모니터 화면에 검사결과와 함께 음성으로 멘트가 나온다. 나는 속으로 4급 공익~! 4급 공익~!을 외쳤다. 뚜뚜뚜~!
'831207-1XXXXXX 가츠님은 3급 현역대상입니다~!'
사유는 고도굴절근시였다. 아나 머야~! 마치 군대 못갈거 같은 심각한 표정짓더니 이렇게 뒷통수를 후려치다니, 일순간 허탈해졌다. 그렇게 출입문쪽으로 걸어나가는데, 내 뒤에 있던 학생의 결과발표가 내 귓가를 울려온다.
4급 보충역대상입니다~! 털썩... 서류봉투를 왠지 뺏고 싶었는데... 뒤에서 검사받던 사람들도 연신 부러운 눈빛으로 그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옷을 갈아입고 징병검사장을 나왔다. 징병관이 나에게 말해주기를 너는 입영영장도 최우선으로 나온다. 아마 한달내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거 가자~! 왠지 재미있을거 같애~! 이것도 운명이잖아~! 후훗~!
그렇게 나는 현역입영대상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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