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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츠가 이등병일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떄는 바야흐로 05년 6월, 가츠가 일병 진급을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소대에는 4명의 후임이 있었고, 그중 한명이 같은 분대였다. 오늘의 주인공이기도한 윤이병이다. 이미 지난 이야기에 몇번 등장했기 때문에 낯이 익을것이다. 훗날에는 윤이병이 소대내에서 가장 무서운(?) 아니 기피하는 고참으로 거듭나지만, 당시에는 우리 말년 소대장님께서 특히나 걱정하던 막내이등병이었다.. 항상 표정이 어둡고, 말이 없고, 뭔가 주눅들어 있었다.
정말 우리 소대 고참들은 진심으로 걱정하였고, 전역을 한달 앞둔 소대장님께서도 항상 예의주시하였다. 진짜 유주얼서스펙트의 반전의 능가하는 그의 연기에 나는 훗날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위의 사진처럼 체구는 작은편인데 뽀얀 피부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녀석이 악마였다니 말이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었다.
당시 우리 중대는 교육훈련주간이었다. 금요일 저녁, 부대 앞산에서 6중대와 함께 쌍방으로 야간공격, 방어훈련이 계획되어 있었다. 부대 앞산이라고는 하지만, 강원도 산답게 가장 높은 곳은 896고지나 되었다. 그리고 2년동안 군생활하면서 아직 탐험하지 못한 미지의 구역도 있다.
훈련간이나, 교육간에 가장 많이는 듣는 말은 바로 이말이다.
'각 분대별로 인원, 장비파악해라~!'
소대장의 명령을 받은 분대장은 분대원에게 확인하라고 지시한다.
'3번 소총수 가츠, 장비 이상없습니다~!'
그리고 뒤로 줄줄이 분대장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그럼 분대장은 소대장에게 보고하고, 소대장은 중대장에게 보고한다. 이를 정말 시도때도없이 한다. 하루에 수십번도 넘게 한다. 그냥 틈만 나면 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만큼 인원과 장비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지 이상이 생기면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전에 보고한 위치랑 지금 문제가 있는 위치 사이로 지역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당시 윤이병은 8번 기총부사수였다. 이녀석 차례인데 아무말도 없이 당황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박병장은 다시 재차 물었다.
'야 윤이병 보고안해?'
'8번 기총부사수, 어.. 어... 이상하다... 수통이 없습니다... 흑흑..'
결국, 이녀석이 한 건했구나~! 군대에서 가장 금기시되는게 보급품을 잃어버리는 행동이다. 어찌보면 군인도 보급품의 한 종류이다. 그래서 탈영하면 열심히 다시 찾아서 데려오는 것이다. 고로 윤이병이 잃어버린 수통도 열심히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나 이등병들이 자주 잃어버린다. 그만큼 정신이 없는 것일수도 있지만, 당시 후임들의 보급품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사진에서보면 수통을 수통피에 넣어서 똑딱이 단추로 잠그는데 후임들의 수통피는 열이면 아홉, 똑딱이 단추 하나가 고장난 상태였다. 심하면 양쪽다 고장난 것도 있었다. 고로 야간에 산속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자주 손으로 확인하면서 신경을 써줘야되는데 윤이병은 결국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교육훈련이 모두 마치고 주둔지로 복귀하기만 하면 되는데, 어두컴컴한 산 속에서 다시 찾을 생각을 하니 막막해졌다. 분대장은 소대장님에게 보고하였고, 소대장은 노발대발 하였지만, 잃어버린 녀석이 윤이병이라서 차마 화내지 못하고 참고 있었다. 이때는 관심병사도 괜찮은 거 같다. 나였다면 아마 그냥 개갈굼먹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지금은 어둡고 늦었으니 일단 철수하고, 1분대는 주말에 종교행사갔다오고 다시 찾을수있도록~!'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찾을려면 지금 찾지~! 하긴 절대 못 찾겠지만 말이다. 그럼 포기해야지 쉬는 주말에 나와서 찾으라니, 한마디로 쉬는날 하루종일 산 속에 있으란 이야기잖아, ㅜㅜ 그깟 수통하나때문에 또 8명이 주말을 반납하고 생고생해야되는 건가?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사실, 수통따윈 중대 비밀창고를 까보면 수십개가 쳐박혀있다. 비밀창고에는 정말 사람 시체빼고는 다 있을 것이다. 물론, 매번 그런식으로 하면 병사들의 마인드가 잃어버려도 된다는 식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당시 윤이병의 정신세계를 좀더 타이트하게 해주자는 소대장님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시범케이스라고 보면 되겠다. 잃어버리면 이렇게 된다.
결국 침울한 분위기로 소대에 복귀한 우리 분대원들은, 윤이병을 붙잡고 빨리 잃어버린 곳을 기억해내보라고 추궁하였다.
'야 마지막으로 확인한 곳이 어디야?'
'이병 윤OO~!, 그게 312고지에서 562고지로 가는 중에 잃어버린 거 같습니다~!'
'아이구 두야~! 그 깊은 산속에서 우찌 그걸 찾노~! 이걸 갈아마셔 버릴수도 없고, 아나~! 인기가요봐야되는데~! 쥬얼리누나들 슈퍼스타 부르는데~! 털기춤 봐야되는데 아흑흑흑'
그랬다~! 별다른 작업이 없는 주말에는 TV앞에 앉아서 이쁜 누나들 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비롯한 온갖 짝짓기프로가 대세였고, 평일에 못 본 드라마 보는 재미도 솔솔하였다. 많은 분들이 군인들은 할머니만 봐도 흥분한다고 하는데, 사실 아닐수도 있다. 그들이 보는 거라곤 TV속에서 나오는 최고의 미녀들 뿐이다. 자연스레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생각치 않고, 고퀄리티의 여성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진다.
군인들은 전역할때가 되면, 개념없이 그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여자친구를 버리곤 한다. 왜일까?
좋게 말하면, 군대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이상형이 아닌거 같고, 좀더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나가서 더 능력있는, 이쁜 여자를 만날수 있을거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런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TV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일수도 있겠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또 있을 것이다. 난 일병때 차였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어흐흑흑흐규ㅜㅜ
다시 본론으로 가서, TV를 못본다고 투덜거린 우리 박병장은 아이러니하게 토요일 당직을 서게되어서 일요일에는 근무취침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심스럽다. 물론 토요일 당직이 안좋기는 한데, 그래도 일요일날 산속을 누비며 수통찾는거 만큼 안 좋을까?
결국 본의아니게 우리의 박병장은 수통찾기 멤버에서 제외가 되었고, 군종병인 김상병도 열외되었다. 결국 이상병과 심일병, 가츠, 윤이병뿐이었다. 고로 분대장 대신 우리를 데리고 갈 사람이 필요했다. 타분대장들은 자기 분대원들을 관리해야되므로 안되었고, 결국 당시 영내대기중인 초임하사 황하사랑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는 나랑 전입시기가 비슷한 타 통신부대 병사출신의 부사관이었다.
그렇게 황하사를 포함한 5명의 수통찾기 원정대는 주말 오후 황금같은 휴식시간을 뒤로하고 부대 앞산으로 잃어버린 수통을 찾기 위해서 떠났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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