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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주간의 모든 훈련준비를 마치고, 05년 호국훈련의 아침이 밝았다. 기상과 동시에 내무실을 급습한 통제관들 의해 준비태세가 발동되고, 정신없이 완전군장을 꾸리고 소산진지로 투입하였다. 소산진지에서 이상병과 교대로 얼굴에 위장을 하면서 전방을 감시하고 있었다.
'야 가츠~! 이거 왜이래~! 아침부터 왜케 빡센거야~! 언제부터 저들이 소총수한테 관심을 가진거지~! 어째 이번 훈련 불안불안하다~!'
사실, 전술훈련같은 경우는 대개 4박 5일의 일정으로 월요일아침에 시작되면 금요일 자정이나 토요일 새벽까지는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러나 고참들은 항상 월요일 아침 준비태세만 끝나면 훈련의 반은 끝났다고 말했다. 아직 출발행군도 안했는데 말이다. 그만큼 훈련뛰기전 주둔지에서 하는 훈련준비가 귀찮고 힘들다는 이야기다.
준비태세까지만 마치고 나면 막상 몸으로 움직이는 훈련은 금방 지나가기 때문이다. 출발 직전 취사장에서 총기 파지하고 단독군장상태로 불편하게 먹는 아침식사가 눈 한번 깜빡하고 나면 토요일 아침, 활동복입고 멍한채로 군대리아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작계지역까지 행군을 실시하였다. 09시에 출발한 행군은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어김없이 신병들은 쳐지기 시작하였다. 하긴 신병들은 2주동안 헬기탑승 훈련만 했지, 행군이 이렇게 빡센줄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결국 10월 군번인 막내 김이병이 쳐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통제관이 우리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평소같으면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치어리딩이 있을텐데, 연신 지켜보고 있으니 결국 소대장님이 희생하셨다.
'김이병 힘드냐?'
'이병 김OO~! 아닙니다~!'
'아나~!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ㅋㅋㅋ'
그렇게 19시가 다되어서야 작계지역에 도착하였다. 이미 해가져서 어두운 산속에서 한쪽에서는 저녁배식을 하고, 또 한쪽에서는 숙영지 편성에 들어갔다. 드디어 통제관으로부터 관심이 멀어져가는 순간이다. 우리의 공중강습작전은 훈련의 막바지인 목요일 저녁에 계획되어 있었다. 2박 3일동안 대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지난 上편에서 큰 훈련일수록 편하다는 이유가 여기있는 것이다.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알보병인 우리보다 훨씬 기동력 좋고, 강력한 무기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행복만 있는게 아니다. 자고있는데, 훈련중에 가장 두려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빗소리, 밤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자다가 우린 잽싸게 나가서 배수로를 정비하고 텐트 천장비닐을 다시 보수하였다. 정말 자다가 무슨 날벼락인가~! 자고일어나니 숙영지 주변은 밤새내린 비로 진흙탕이 되었다.
'어쩐지~! 어제 행군하는데 비가 안오드라? 그럴리가 없는데 말이지...'
계획이 없다고 노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진지공사를 하는 작계가 아니라면 그냥 대기하면서 놀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여기는 진지공사하는 우리의 작계이다. 결국 행보관님 손에 이끌러 우리는 목요일까지 그곳에서 때아닌 진지공사를 하게 되었다. 운도 없지, 평소같으면 2박 3일 텐트에서 푹 쉴텐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참 군대는 그냥 노는 법이 없다. 정말 어딜가도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니 말이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밤이 되면 비가왔다. 이런 미친 강원도~! 내가 진짜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구나~!
그렇게 2박 3일을 비와 싸우고 아니 비한테 두들겨맞고, 때아닌 진지공사를 하면서 보냈다. 목요일 오후가 되자 통제관들과 우리를 태우고갈 빛나는 육공(트럭)이 산 아래 도로에 나타났다. 드디어 우리의 최종 임무인 공중강습이 시작되었다. 우린 한껏 물먹어서 무거워진 군장을 메고 육공에 탑승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당초 우리 중대병력을 태운 5대의 육공은 어느덧 연대 전병력의 대열에 합류하였고, 연대장님 레토나를 필두로한 수십대의 육공과, K-4차량, 지원나온 전차와 지원중대의 각종 차량까지 웅장한 대열을 이루기 갖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춘천시내로 진입하였다. 춘천에서는 맨날 보는게 군인이고, 군차량들이니 새삼 놀랍지 않겠지만,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군병력을 보면 매우 놀랄 것이다.
춘천 시내에 위치한 경비행기 활주로에서 우리는 하차하였고, 다시 흩어져서 어둠이 깔리기를 기다리며 중대장님의 정신교육이 시작되었다. 막상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같이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제군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되었다. 지난 2주간 오늘을 위해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해서 우리 5중대의 위상을 보여주도록 하자꾸나, 특히 헬기 승하차간에 군단장님, 사단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참관하기로 되어있으니, 절대 실수없이 임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대충하는 녀석들은 내가 목숨걸고 기필코 응징할 것이다~!'
그리고 보급병은 사단장님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하사하신 빵이라며 우유와 함께 샤니 패스트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사단장님이 주신 빵이다. 빵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제 이 빵을 먹고 실수라도 한다면, 정말 죽은 목숨이다. 다들 표정이 하나같이 두려움반, 설레임반이었다.
'가츠야 맛있냐?'
'일병 가츠! 네 맛있습니다. 근데 이거 먹는 순간,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착용한 기분입니다.'
'야 나는 작년에 이어 2개째다~! 오죽하긋냐? ㅋㅋㅋ'
16시 출발시간이 다되었다. 다시 흩어져 있던 우리 연대원들은 활주로 뒷편 숲속으로 집결하였고, 그곳에는 이미 연대장님과 연대 간부 전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전기에는 쉴새없이 작전명령 하달되어 내려온다. 우리는 2대대이기 때문에 1대대가 전원 탑승한후에 출발하므로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남아있다. 그 순간, 저 멀리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두두두둑두두둑두둑~!
춘천시내 상공을 가로질러 저멀리 우리를 태우고 갈 수십여대의 블랙호크가 모습을 보였다. 연대장님께서 우리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쳤다.
'연대장은 너희를 믿는다~! 아무도 다치지말고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수 있도록~! 그럼 주둔지에서 웃는 얼굴로 다시 보자꾸나~! 77연대 파이팅~! 용호연대 파이팅~!'
고무된 우리들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고, 각자의 위치에서 탑승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첫번째 헬기를 선두로 동시에 8대의 헬기가 활주로로 내려왔다. 그 순간 군생활에서 잊지 못할 최고의 명장면이 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미 외모로보나, 체격으로보나, 동네 할아버지 같은 우리 연대장님께서 단독군장 차림으로 숲속에서 뛰쳐나오셨다. 그리고 연대장님 주위로 통신병과 연대간부들, 수색중대원들이 대열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대장님의 손짓과 동시에 전방 헬기를 향해 쏜살같이 뛰쳐나간다.
마치 연대장님의 손짓은 맨유의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우리를 향해 치켜든 승리의 세레모니와도 같았다. 그리고 첫번째 헬기를 향해 그의 거침없는 질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뒤따라는 통신병과 연대 간부들, 수색중대원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비장하였고 심각하였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노인네가 저리 빨리 뛰어가는겨~! 이거 자칫하다간 놓치겠다! 놓치면 죽는다~!'
심장이 뜨거워졌다. 연대장님께서 저렇게까지 뛰어가시다니, 아무리 군단장, 사단장님께서 보고 계신다하더라도, 명색이 연대장인데 말이다. 얼마전, 100m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볼트가 호날두의 뛰는 모습을 본 뒤, 그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사인볼트가 우리 연대장님을 봤다면,
우사인볼트는 분명히 그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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