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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년병장 시절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12월, 말년 병장 가츠군은 정말 하루하루가 일년같았다. 이제 전역까지 D-29, 드디어 한달도 안남은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 한달이 지난 23개월의 군생활보다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주말에는 정말 죽을 맛이다. 종일 시체처럼 누워서 TV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오전, 후임들은 죄다 종교 행사를 갔고, 병장들만 남아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리모콘을 꼼지락 꼼지락 거리고 있는데, 바로 밑의 후임인 1분대장 송병장이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참고로 여기서 등장하는 송병장은 지난이야기 첫 후임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가츠병장님~!'
'왜?'
'가츠병장님~! 오늘 교대장 근무있으시지 말입니다?'
'응~! 아나 중대왕고를 주말에 근무 쳐넣었어~! 진짜 군대 말세다 말세~!'
'그거 제가 대신 나가드립니까? 안그래도 몸도 근질근질한데 말입니다~!'
'헐... 너 왜그래? 무슨 꿍꿍이야?'
'하하 이따가 KBS스포츠에서 복싱하는데~! 그거 보면 안됩니까?'
아낙ㅋㅋㅋ 그럼 그렇치~! 이색히 복싱 볼려고~! 그렇다~! 나의 2달 후임이자 맞후임인 송병장은 입대전 프로복서였다. 이녀석은 운동을 하느라 늦게 입대하였다. 그래서 나랑 동갑이었는데, 정말 전역하는 그 순간까지, 아니 지금도 통화하면 존댓말을 쓴다. 정말 예의바르고 군인다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후임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무서운 고참이었다. 난 2년동안 군생활하면서 항상 생각했다.
'내가 저 녀석 후임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늦게 입대하였지만, 송병장보다 빨리 입대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ㅋㅋㅋ 여튼 당시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낮에 복싱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TV리모콘은 나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에 쇼부를 치러 온 것이다.
복싱프로그램 편성시간이 일요일 정오무렵이었다. 그 시간에는 출발 비디오여행과 KBS 뮤직뱅크가 나오는 나름 황금시간대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예 복싱프로그램을 볼 엄두를 못내었다. 하지만 기라성같은 고참들도 죄다 전역하였고, 나름 만만한 맞고참인 나밖에 안남았으므로 이렇게 쇼부를 치러 온것이다.
사실 나야 이미 TV는 해탈한 경지였다. 그냥 내무실에서 편히 복싱을 보라고 하였다. 근무도 내가 나간다고 하였다. 내가 겁나 착해서 그런게 아니고, 대대간부들이 죄다 내 얼굴이 알기때문에 근무투입할때 행여 걸리기라도 한다면, 말년에 무슨 고생이겠는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되는데 말이다. 그대신 냉동이나 쏘라고 하였다 ㅋㅋㅋ
교대장근무를 나갔다가 돌아오니, 종교행사간소대원들도 모두 복귀하였다. TV앞에는 송병장이 신나서 복싱을 보며 연신 따라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송병장 동기인 서병장도 재밌게 보고 있었다. 서병장 역시 첫 후임편에 등장한 인물인데, 덩치는 송병장보다 더 좋다. 186cm의 훨칠한 키에 잘빠진 몸매, 부리부리한 인상은 아주 남자답게 생겼다.
또한 동기인 송병장이 프로복서다보니, 서병장도 송병장이 운동할때마다 항상 같이 나가서 복싱을 배웠다. 그래서 둘이 죽이 아주 잘맞았다. 군대에서는 동기들과 제일 친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소대에서 그 두녀석을 제외하고는 죄다 울상이었다. 황금시간대에 인기도 없는 복싱을 보고 있으니, 관심없는 녀석들은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렇게 복싱방송은 끝나갔고, TV만 보던 이녀석들은 몸이 완전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링으로 올라가서 스파링할 태세였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는 재밌는 것이 떠올랐다. 예전 고참들이 종종 하던 침낭복싱이 생각난 것이다.
'하하 가츠병장님~! 저 프로복서입니다~! 링 위가 아니면 싸우지 않습니다~!'
'아나 이색히~! 서병장한테 혹시 질까봐 그런거 아냐? 체격도 서병장이 훨씬 유리하잖아~! ㅋㅋㅋㅋㅋ'
나는 신나서 부추기기 시작하였고, 소대원들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여기저기서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가 나왔고, 이미 침상 한쪽으로 링으로 셋팅되어 있었다. 서병장도 신나서 송병장을 도발하였다.
'야~! 오늘 너한테 배운 모든 실력을 다 보여주마~! 원래 제자가 스승을 능가하는 법~! 후훗~!'
도발이 먹혔다. 송병장은 진지한 얼굴로 그의 두 주먹에 침낭을 끼우기 시작했다. 곧, 침상위에 두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양손에 침낭을 끼우고는 마냥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레프리에는 노상병이 투입되었고,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익~!
슉슉~! 휙 슉슉~! 휙휙~! 슉슉~! 퍽~!퍽~!
오~ 이녀석들 나름 멋있다. 송병장이라 프로복서라 그렇다치고, 서병장도 열심히 연습했나보다. 스탭과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고, 쨉도 수준급이었다. 이미 그녀석들의 분대원들은 연신 자기 분대장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내무실이 복싱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의 함성에 2소대 녀석들까지 가세하여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다. 서병장, 환호하는 분위기에 흥분한거 같다. 처음에는 서로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하였는데, 지금은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사실 진짜 복싱이었으면 당연히 송병장이 유리하겠지만, 공격력이 전혀 없는 침낭으로 휘두르는데 딱히 프로복서라고 대안이 있겠는가? 그냥 지칠때까지 하는거였다. 그순간, 서병장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전광석화같은 공격으로 송병장을 밀어부치기 시작하였다.
퍽퍽~! 와아아아~!
서병장이 침낭이 송병장을 덮쳤고, 송병장이 막다가 미끄러져서 침상위에 넘어졌다. 다운~! 다운~! 송병장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수치심이 교차되었다. 명색이 프로복서인데 소대원들 다보는데서 넘어졌으니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서병장은 연신 신나서 방방 뛰어다니고 있고 말이다.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잡은 송병장... 서병장을 향해 달려갔다. 정말 아까 TV에서 본 복싱게임보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게 훨씬 재밌다~! 그리고 완전 웃겼다~!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는데, 나의 눈에 송병장의 침낭끈이 보였다. 끈이 점점 풀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송병장 입대전 시합사진, 참고로 저기 맞는 사람 한달선임 김병장과 너무 닮아서 맨날 놀렸음]
야야야 중지~! 중지~! 끈 풀렸잖아~!라고 외치는 순간, 송병장의 주먹이 침낭을 헤치고 나오더니 그대로 서병장의 안면부를 강타하였다~!
퍼억~! 콰당~!
그대로 장신의 서병장은 침상위로 쓰러졌고, 내무실은 쥐죽은듯이 조용하였다. 아나~! 이거 일난거 아냐~! 역시 말년에는 조심해야되는데 결국 사고쳐버렸어~! 어흐흑흑...
쓰러진 서병장은 보란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며 우리를 향해 걱정말라며 실실 웃었다.
'치사한 놈~! 주먹으로 때리다니~! 하지만 나는 강하다~! 끄덕없어~! 하하하하'
그순간, 그의 양 코에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를 향해 잽 모션을 취하며 연신 웃고있었다. 나를 제외한 후임들은 이광경을 보며 웃지도 못하며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하하하하 야~! 너 코에서 피잖아~! 밥탱아~! 앜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제서야 코피를 확인한 서병장은 전의를 상실하고, 힘없이 세면장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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