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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 시절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떄는 05년 5월 무렵, 가츠는 이제 막 백일휴가를 다녀온 솜털같은 이등병이었다. 예비역들은 아시겠지만, 이등병 때는 정말 개인시간, 개인만의 공간따윈 없다.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30여명의 소대원들과 함께 점호를 취하고, 구보를 뛰고, 청소를 하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화장실에 북적북적, 빨리 나오라는 고참들의 성화, 그리고 이어지는 일과시간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보면 어느덧 저녁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청소하고 밀린 빨래 및 작업을 하다보면 저녁 점호시간이다.
정말, 이등병에게 사생활이란 사치이고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가장 행복할 때가 저녁점호를 취하고 자신의 침낭속으로 들어가서 머리까지 뒤집어서 쓰고 잠들기 전, 몇 분간의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 보고싶은 가족과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 따뜻한 침낭안에서 몰려오는 피로감에 어울려져서 길지도 않은 자신만의 시간을 안타깝게 잠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날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였다면, 그 침낭에서 잠들기전의 행복한 시간마저도 두려움, 공포, 자책감으로 걱정하면서 허비하여야 한다. 행여 불침번이 다가와서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내일부터 나의 군생활은 어떻게 되는걸까? 온갖 걱정으로 뒤척이며 말이다. 얼마나 슬픈일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수통원정대편의 주인공인 윤이병이다. 이러고보면 이 놈도 참 폐급인데 훗날 보란듯이 재기하였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후훗~ 요즘 댓글창에서 활동하던데 몸사리도록 하여라, 형이 곧 찾아간다~!
군인에게 있어 저녁점호의 중요성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분들도 영화과 드라마, 예능프로등에서 자주 소개되어서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루의 마감하면서 그날의 일과에 대한 평가, 다음날 있을 작업 및 훈련에 대한 통지, 인원 및 장비의 이상유무 확인 등 전방위적인 점검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저녁점호를 담당하는 당직사관의 따라 그 강도의 차이는 극명하게 갈린다.
평소, 널널하고 편한 포반장이 당직사관이었을 경우에는 다들 환호한다. 평소 그의 행적을 유추해볼때, 간단하고 편하게 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단 전투측정 1등, 사단 철조망설치 최단시간 보유, 연대 RCT 최우수 군단장표창 수여 등 누가봐도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2소대장님이 당직사관이라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3소대가 되었고, 당시 2소대장님이 말년이라서 같이 한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정도로 그는 빡세고 무서운 소대장이었다. 그런 그가 당직사관으로 있는 날은 말년병장들도 조신하게 내무실에서 총을 닦거나 후임들을 관리한다.
'애들아 오늘 2소대장님 당직이니깐, 목숨걸고 청소해라~! 총닦고 방독면도 정비할수 있도록~!'
이정도면 얼마나 저녁점호시간이 긴장되겠는가? 청소를 할때도 정말 구석구석 열심히 하였고, 분대장들은 정위치에서 혹시나 모를 빈틈을 체크하며 만만의 준비를 취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녁점호~! 당직병의 보고와 함께 시작되었다.
'5중대 점호취하겠습니다~!'
'그래그래 3소대부터 가자~!'
헉... 우리소대부터 한단다. 오늘의 선임분대장인 우리 분대장 박병장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고, 다시한번 열외자를 파악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가 본부소대를 가로질러 우리 소대로 걸어오고 있다. 아낰 사단장이 걸어와도 이렇게 떨릴까? 그가 함께 생활하는 2소대원들이 새삼스레 존경스럽고 불쌍해보였다. 문득 폭풍구보편에서 3소대로 가고싶다고 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3소대 보고~!'
'보고'
'이기자~! 제 3소대 저녁점호 인원보고 총원 29 열외 8 현재원 21 우에서 좌로 번호오오오~!'
'하나! 둘! 셋! 넷!~~~ 열아홉! 스물! 번호끝으으~!'
'열외내용 휴가4 파견2 근무2을 제외한 현재원 21명 저녁점호 준비 끝~!'
'음 쉬어~! 그래 요즘 부대가 고생이 많다~! 특히,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 있도록, 특히 식중독철이니깐 아무거나 막 집어먹지 말고, 근무갔다오면 수통에 물도 바로바로 비울수 있도록, 음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전원 수통 든다 실시~!'
'실시~!'
'수통 뚜껑 열고 반대로 뒤집는다 실시~!'
우리는 2소대장님의 명령에 따라 개인의 수통을 손에들고 내무실 바닥에 뒤집었다. 원래 근무투입할때 수통에 물을 담아서 투입하였다가 오면 바로 버린다. 행여 안버리고 며칠내내 놔두었다가 미친척하고 먹기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탈이 나기 때문이다. 고로 항상 고참들로 복귀하면 수통에 물부터 버리라고 교육받았다. 모두 자신만만하게 내무실 바닥에 수통을 들이부었다. 청소시간, 완벽한 청소로 반짝반짝 빛나는 내무실바닥은 정말 먼지한 올없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콸콸콸~! 꿀럭~! 콸콸콸~!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윤기나는 내무실바닥은 쉴새없이 나오는 윤이병 수통의 물로 금방 물바다가 되었고, 한동안 우리들은 하염없이 나오는 수통의 물줄기를 보며 가슴을 졸여야했다. 윤이병은 자신의 수통을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물은 보란듯이 꿀럭꿀럭~ 거리며 계속 나왔다.
'허허 야 너 분대장 누구야?'
'병장 박OO~! 죄송합니다~! 미처 확인을 못했습니다!'
'허허~ 쯧쯧~! 선임분대장이 이거 개판이구만~! 담부턴 확인 잘하고~! 점호끝~!'
그렇게 당직사관은 내무실 중앙에 우두커니 서있는 박병장을 기가 찬다듯이 보고는 우리 소대를 벗어나 본부포반으로 가셨고, 우리는 쥐죽듯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말년병장들은 에혀~ 말세다~ 말세~ 라며 담배를 피러 나갔고, 나머지 소대원들은 그자세로 그대로 멈춰라~! 로 대기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우리 다 죽는 걸까? 문득 오늘 밤은 정말 길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야~! 불침번 물 닦고, 나머지는 자리 깔고 자라~!'
헐~ 우리 박병장님은 그냥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넘어갔고, 우리는 잽싸게 매트리스를 깔고 각자의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갔다. 우와 박병장님은 천사야~ 천사~! 사실 사진이 좀 이상한데..ㅋㅋㅋ 설마 보겠어~!;;; 덩치는 정말 깍두기 형님 저리가라할 정도이고 무섭지만. 하지만 속은 정말 여리고 하늘과 같은 고참이었다. 후훗 혹시 볼까봐~ 하는 말은 아니다. 정말 좋은 고참이었다. 지금도 종종 연락하면 술먹자며 오라고 난리다.
여튼 우리들은 침낭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였고, 같은 분대원이었던 윤이병은 내 옆자리에 누워있었다. 얼굴까지 덮고 있어서 자세히 확인은 안되어있지만, 아마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당장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내일부터 일병, 상병들의 무지막지한 갈굼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의 침낭이 한없이 작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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