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퀘벡 시티!"
1535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가 퀘벡 주를 처음 발견하였다. 그는 이 지역을 뉴 프랑스라 명하였다. 그 후 프랑스의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이 퀘벡 시티에 정착하여 도시를 세웠다. 참고로 퀘벡 시티의 유래는 강이 좁아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후 퀘벡 시티는 지리적 환경과 맞불려 1세기가 넘도록 프랑스의 지배 하에 교역항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에 포탄이 박혀 있다니!"
지금도 퀘벡 시티에 가면 당시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 또한 세계전쟁사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아브라함 평원 전투이다. 아브라함 평원 전투는 캐나다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치열했던 전투이다.
당시 캐나다의 지배권을 두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10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1759년 9월 13일 아브라함 평원에서 영군군이 승리하였고 기세를 몰아 몬트리올까지 점령하였다. 결국 1763년 프랑스는 파리조약에서 캐나다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유럽의 열강들이 둘로 갈라져 싸운 7년 전쟁과도 시기가 맞물린다.
"용기는 그들에게 동일한 죽음을! 역사는 동일한 명예를!
당시 아브라함 평원 전투는 양국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의 대결로도 유명하다. 영국군 총사령관은 제임스 울프 장군이었고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드 몽칼름 백작이었다. 하지만 두 전쟁영웅은 바로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총사령관까지 모두 전사하여야만 했던 치열한 전장, 당시 이곳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리자와 패배자를 구분하지 않고 양국을 대표하는 두 전쟁 영웅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비만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전쟁의 흔적이라고는 세월을 짐작할 수 없을만큼 오래된 포 몇 문만이 덩그라니 놓여져 있었으며 시민들은 하이킹을 즐기거나 조깅을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잊지 않는다!"
하지만 퀘벡 시티는 도시의 기원이 되었던 프랑스 문화를 버릴 수 없었다. 그 후 끊임없이 퀘벡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에 캐나다정부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등 다양한 융화정책을 취하고 있으나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프랑스를 사랑하고 프랑스를 기억하고 있다.
"난공불락을 자랑하는 시타델!"
아브라함 전장 공원과 연결되어 있는 별 모양의 요새의 이름은 시타델이다. 1750년 프랑스군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나 정작 완공은 1831년 영국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시타델의 주 용도는 미국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운용되었으며 구조적인 설계 덕분에 강이나 육지 어느 방향에서 공격하여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난공불락의 요새는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공격도 받지 않고 있다. 그말인즉슨 얼마나 효율적인 요새인지 실전에서는 아직 검증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이 곳은 관광 명소이자 군사지역입니다!"
시타델 내부는 개인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으며 공식 가이드의 동행 하에서만 입장할 수 있다. 그 이유인즉슨 캐나다 육군 제 22연대의 주둔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군사보호시설로 일반인 출입 및 촬영 등이 통제되는 곳이다. 하지만 시타델 내부에 위치한 제 22연대 군사 박물관과 과거 요새로 활용된 성벽 등 가이드와 함께라면 내부 투어를 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군대!"
내부 투어 가격은 일인당 $10이지만 어린이는 무료이다. 군사지역답게 완벽한 제초작업을 자랑하며 곳곳에 과거 사용하였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타델은 캐나다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부대라고 하였다. 퀘벡 시티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를 생각해본다면 실로 파격적인 처우이다. 우리나라만 하여도 군인들은 사투리를 사용하지 말고 표준어를 구사하도록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전쟁을 기리며!"
시타델 내에서도 어김없이 한국전쟁을 추모하는 기념비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캐나다를 횡단하며 만난 한국전쟁 기념비만 하여도 어느덧 다섯 손가락이 훌쩍 넘어갈 정도이다. 그만큼 정부와 후손들은 그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추모하며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상과도 같았다. 특별한 날이나 행사가 있을 때만 언론에 소개되고 덩달아 추모하게 되는 우리네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와는 분명 차원이 달랐다.
"Je me souviens"
퀘벡 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프랑스어로 나는 기억한다라는 뜻이다. 항상 자신들의 뿌리가 프랑스임을 잊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문구이다.
이처럼 퀘벡 시티는 아픈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있으며 지금도 정부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는 그런 모습조차 멋있게만 보인다. 지금은 프랑스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캐나다 여권을 소지한 그들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노력이 말이다.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퀘벡 시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퀘벡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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