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의 변신은 무죄!"
나의 오피스텔은 신도림역과 영등포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현관문만 나서면 대한민국 쇼핑 1번지라 불리우는 삐까뻔쩍한 타임스퀘어와 신도림 테크노마트가 나를 반겨준다. 불과 1년 전만 하여도 경주 촌놈이었는데 말이다. 실로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가끔은 조용한 경주가 그립기도 하다.
"그럼 재래시장 구경갈래요?"
"오홋! 콜!"
그렇게 평일 오전, 무작정 여친님과 함께 동인천행 급행을 탑승하였다. 동인천역 4번 출구를 나오면 예쁘게 새단장한 문화관광형 재래시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 동구 송현동 90번지에 위치한 송현시장이 바로 오늘의 데이트 코스이다.
"50년 만에 리모델링한 송현시장!"
1960년에 처음 문을 연 송현시장은 본래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된 골목형 시장이었다. 그러다보니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장사하는 상인뿐만 아니라 장을 보러 온 손님까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중소기업진흥청의 문화관관형 시범 재래시장으로 선정된 송현시장은 총 사업비 80억원이 투자되어 지금의 멋드러진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시장 골목 전체를 뒤덮는 채광형 지붕과 통일화된 간판, 각종 편의시설 등이 완비된 송현시장은 이제 과거의 지저분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대형마트 부럽지 않은 도심형 시장으로 변신하였다.
"우와! 나 맥콜 완전 좋아하는데!"
"나는 뻥튀기!"
시장 입구에서부터 맛있는 군것질거리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할머니나 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에 가면 어찌나 먹고 싶은게 많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엉덩이로 이동할 정도로 바닥에 주저앉아 땡깡을 부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들은 내가 잠이 들었을 때 몰래 장을 보곤 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말이다.
"아들아! 너는 날생선도 집어먹을려고 했어!"
"..........."
어물전을 앞을 지나자 문득 할머니가 끓어주신 경상도 특유의 맵고 짠 된장찌개와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자반고등어가 떠올랐다. 숟가락만 떡하니 내밀면 할머니는 손수 가시를 발라 올려주셨다. 그렇게 직장일로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애지중지 나를 키워주셨는데 최근에는 음식이 너무 짜다고 투정만 부리는 못난 손자가 되어버렸다.
대형마트에 가면 온종일 할인행사를 알리는 마이크 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재래시장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따끔 가게에서 TV소리가 새어나올 뿐이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깍아달라는 흥정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주부 9단과의 승부는 언제나 치열하다!"
"저...저는요?"
"그나마 간간이 너같은 아이가 있어 장사할 맛이 나는구나!"
".........."
"재래시장에 가면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이웃사촌이 대다수다. 상인들을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정겨운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근황을 묻는다.
이처럼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 재래시장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하지만 송현시장의 변신은 지금부터이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낯선 간판이 등장하였다.
"재래시장에 무슨 택배회사가 있지?"
이제 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을 무겁게 들고 갈 필요가 없다.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 배송센터를 통해 집까지 안전하게 배달받을 수 있다. 또한 콜센터를 통해 굳이 시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주문할 수 있다고 하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최고의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재래시장에서 만나는 커피 전문점!"
뿐만 아니라 배송센터 바로 옆에는 솔마루 사랑방이라 불리우는 커피전문점이 자리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북카페이다. 들어갈려는 찰나 여친님께서는 맞은편에 위치한 떡집을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갔다.
"우와! 다 먹고 싶어!"
"떡순아! 2개만 구입할 수 있도록!"
"힝! 너무해!"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송편과 꿀떡을 부리나케 구입하고서야 여친님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등을 들려 솔마루 사랑방으로 입장하였다.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과 비교하여도 전혀 꿀리지 않는 인테리어!"
사실 들어가기 전만 하여도 재래시장 안에 위치한 커피전문점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예뻐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가격은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절반 수준이었다.
"일반 PC부터 무선 인터넷은 기본!"
솔직히 무선인터넷만큼은 안될 거라 생각하였는데 이마저도 나의 오산이었다. 매장 안에는 인터넷이 가능한 3대의 데스크탑이 비치되어 있었고 무선인터넷 역시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따뜻한 커피 뿐만 아니라 사랑도 판매하는 솔마루 사랑방!"
게다가 솔마루 사랑방에서는 동구 주민들이 직접 만든 예쁜 소품들을 위탁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발생하는 수익금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한다고 하니 정말 정이 가득한 사랑방임에 틀림없었다.
"떡순아! 맛있니?"
"응응!"
사실 오기 전만 하여도 재래시장에서 무슨 제대로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는데 기우에 불과하였다.
떡과 아메리카노의 조합은 달콤한 케익 만큼이나 훌륭하였으며 분위기 역시 웬만한 카페보다 훨씬 좋았다. 이처럼 맛있는 먹거리와 예쁜 소품, 재밌는 책이 가득한 송현 시장 솔마루 사랑방은 데이트 장소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는 야외 공간!"
비단 커플 뿐만 아니라 장을 보러 오는 주부, 아이들을 위한 아동용 의자와 수유실도 갖춰져 있다. 또한 야외 공간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우물에서 직접 펌프 체험을 할 수 있는 우물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 주고 있다.
최근 송현시장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들이 대형할인마트와의 전면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재래시장이 주는 지난 날의 추억과 특유의 인심이 최고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 모두 재래시장으로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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