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
세종로에 위치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작년 8월, 고종 중건 당시인 1896년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기존의 콘트리트 구조에서 목조로 복원되면서 숭례문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되살아났다.
하지만 복원한 지 4개월만에 현판에 균열이 생겨 현재 교체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만큼은 천년이 흘러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복원해주기를 바란다.
"확실하게 지켜보겠습니다!"
광화문에 도착하니 마침 수문장 교대의식이 한창이었다. 조선시대 예종 1년부터 확립된 수문장 교대의식은 당시 4대문과 궁궐문을 지키는 책임자인 수문장이 절차에 따라 병력을 이끌고 임무를 교대하는 의식이다.
지금은 문화재 보호재단에 고용된 인원들이 그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작년 경복궁 복원을 앞둔 시점, 육군 수호신 부대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부대로 절도 있고 패기 넘치는 수문장 교대의식을 위해 제식교육과 행사 진행 노하우를 교육받으러 온 인원들이 떠올라 더욱 반가웠다.
"오늘의 주인공! 경복궁 문화해설사로 깜짝 변신한 그녀!"
잠시 후 더욱 반가운 손님이 광화문에 도착하였다. 사실 오늘 경복궁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국가브랜드 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이다.
이배용 위원장하면 가장 먼저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하였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사학 박사로 한국 역사와 문화, 전통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늘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박사마저도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뜨거운 열정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평소 경복궁보다는 에버랜드, 롯데월드같은 테마파크를 훨씬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사와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녀가 한없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 날도 바쁜 스케쥴을 뒤로 하고 경복궁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직접 방문하신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떠나볼까요?"
조선왕조을 이끌어간 정치의 중심인 경복궁은 동서남북으로 4개의 대문들을 두고 남쪽으로 국보 제 223호인 근정전과 사정전,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그리고 후원인 향원정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었던 동궁, 서쪽으로는 궐내각사와 경회루가 각각 배치된 형태로 수십 개의 전각들이 조화롭게 건축되어 있다.
현재는 125동의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며 향후 20년간 진행되는 2차 복원사업에서 고종 당시의 76% 수준인 375동까지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원래의 경복궁은 광화문과 주변 전각들을 모두 합치며 500여동에 이른다.
"아는 것 만큼 보이고 아는 것 만큼 느낀다!"
본격적인 탐방을 떠나기 앞서 이배용 국가브랜드 위원장은 보물찾기처럼 하나 하나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냥 모르고 지나갈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역사와 의미를 알고 본다면 작은 돌 하나라도 새롭게 보일 것이며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조화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크게는 하늘과 땅의 조화부터 임금과 신하, 백성과의 조화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조화까지 경복궁은 단순한 궁궐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인 곳이다.
"우리 자신을 지켜야 되는 의무!"
지금은 웅장하고 위엄있는 경복궁으로 복원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고자 설치하였던 조선총독부는 십여 년에 걸친 건축 과정에서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들을 파괴하고 훼손시켰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하여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한 곳도 경복궁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건청궁 옥호루였다. 이처럼 나라를 잃게되면 우리의 문화와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경복궁이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밝고 아름다운 경복궁의 모습을 찾아 떠나자!"
이배용 위원장은 경복궁 전체를 쉬지 않고 걸어다니며 일일히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급기야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경복궁이 폐장하였고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나가는 관람객이 되었다. 특히 근정전 마당에 있는 품계석, 상월대 답도에 새겨진 봉황문 같은 평소 놓치기 쉬운 부분을 짚어주시며 의미와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였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경복궁에 담겨져 있는 선조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일일이 꼼꼼하게 소개하고 싶지만 워낙 규모가 큰 경복궁이기에 이번 글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을 위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왕비의 비밀 화원!"
경복궁을 찾은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특히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 뒷공간에 조성되어 있는 아미산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중궁전의 깊은 후원이기도 한 아미산은 당시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기에 신비감이 더욱 배가 된다.
경사면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4단으로 쌓아 올렸고 그 위에 매화, 모란, 앵두, 철쭉 등의 꽃나무와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을 조화롭게 심어 아름다운 원림을 이루고 있다.
"장수를 기원하는 자경전 십장생 굴뚝!"
왕실 최고의 여자 어른인 대비의 침전인 자경전 뒤편에도 십장생과 박쥐문, 당초문을 새긴 굴뚝을 세워 볼거리를 조성하였다. 특히 나이 많은 여주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한 폭의 졍교한 벽화로 되어 있는 십장생 굴뚝은 장수를 상징하는 솔, 거북, 사슴, 불로초 등 오래 사는 십장생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는 경회루!"
왕의 침전인 강녕전 서쪽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 안에는 외국사신의 접대나 연회장소로 사용된 경회루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경회루는 그동안 소실된 경복궁의 많은 전각들과는 달리 중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경회루의 그림자가 연못 위에 비치는 영상이 환상적이다.
"왕가의 산책!"
경복궁 전체가 훌륭한 산책코스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곳곳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심어져있으며 전각들의 장식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다.
특히 향원정으로 가는 길은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 형태를 띄고 있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불리우는데 이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만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코스로 건천궁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지금은 보호 차원에서 아무도 건널 수 없는 다리이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어렴풋이 가냘픈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였다.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는 한 여인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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