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주말, 나는 부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 잡고 방문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일전에 블로그에서 한번 이야기하였지만, 아버지께서는 문화재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시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특히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않는 문화재를 말이다.
"유명하지도 않은 것을 왜 비싼 돈 들여서 찍어요?"
"언제 사라질 지 모르잖아! 찍을 수 있을 때 찍어야지!"
지금은 DSLR의 보급으로 초기비용만 투자하면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필름카메라가 전부였다. 특히 어머님의 반대가 엄청났지만 아버지는 꿋꿋하게 매주 쉬는 날을 포기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찍으러 다니셨다.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숭례문 방화사건을 보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새삼 와닿았다. 사람들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언제라도 훼손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문화재, 훗날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 부여로 가는 내내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되었다.
2009/11/27 - [가츠의 옛날이야기] - 가츠의 옛날이야기, 사진
문화재를 찾아 떠나시는 아버지 차 안에는 전국지도와 여러권의 문화재 관련 서적이 늘 놓여져 있었다. 항상 조수석에 앉은 나는 무료한 나머지 아무 생각없이 그 책들을 읽어보곤 하였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문화재이야기를 가장 재밌게 풀어낸 최고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박사는 1993년 책이 출간 된 이후, 대한민국 부모님들이 주말마다 아이들 손 잡고 문화재 탐방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문화재 전반에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냄으로써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찮은 돌덩이 하나, 나무 한 조각, 쇠덩어리 하나라도 그의 책에서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 재탄생되었다. 단순한 자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 것들이 서로 얽혀 있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그 또한 살아 숨쉬는 하나의 문화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부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어린 시절 책으로만 접하였던 유홍준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전 문화재청장이기도 한 그는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서울에서 급히 내려오셨다.
"백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삼천궁녀!"
사실 평소 백제라고 하면 그저 신라에 의해 통일 된 나라라는 패국의 이미지가 강하였다.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에 비해 역사적으로도 크게 조명받지 못하였다. 매일밤 TV에서 나오는 사극만 보아도 백제가 얼마나 소외받고 있는 지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막 700년 역사의 백제문화는 삼국시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발달되었고,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문화가 한반도에 전파된 곳도 백제이고, 일본으로 전수해 준 곳도 백제이다. 미술, 조각, 건축 등 백제의 문화는 동아시아 문명교류의 찬란한 빛이 되었던 문화왕국이자, 해상왕국이었다.
올해로 57회째를 맞는 백제문화제가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세계대백제전으로 탈바꿈되었다. 대백제의 왕도로서 백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충청남도 부여군과 공주시가 축제의 장이 된다. 충청남도과 대배제전조직위는 개막을 앞두고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조직위의 초청을 받고 미리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미술사 강의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유홍준 박사는 한 눈에 보아도 천상 학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누가 보아도 공부 잘하게 생긴 얼굴이다. 반면 검게 그을린 피부에서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탐방하고 연구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하였다.
"강의할 책도! 소개해 줄 책도 없어!"
현재 그의 공식직업은 대학교수이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지인들에게 한국미술에 관해 설명을 해줄 때마다 국내에는 마땅한 서적이 없었기에 부끄럽고 아쉬웠다고 한다. 결국 그가 직접 정리하여 출간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강의 주제 또한 백제의 미술이었다.
"학생들에게도 안 가르쳐 준 건데!"
그렇게 장장 2시간여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고대 문화는 각각 저마다의 독특한 성격과 양상을 띄며 발전하였다. 이 중에서도 백제의 문화는 고구려, 신라와는 다르게 섬세함과 온아함이 돋보이는 문화로 평가되었다.
앞선 해상교역을 통해 중국 남조의 선진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일본 등 주변의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하며 문화적 발전을 꾀하였다. 백제 초기의 문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웅진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구려의 정치적, 군사적 문제로 인해 교류가 끊겼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백제가 괜히 해상강국이 아니었다. 이미 바다와 강을 이용함에 있어 삼국 중 가장 발달되어 있었다. 이미 국사 시간에도 배워겠지만, 백제는 한강유역의 평탄하고 비옥한 자연환경을 토대로 그 문화를 발달시켜왔다. 한강 뿐만 아니라 금강, 영산강 등 넓은 농경지와 바다라는 풍족한 자연환경 덕분에 부족함이 없는 국가였다. 그 풍요로움을 이용하여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에 중국의 선진 문물을 진취적으로 수용하였고, 잘 융화하여 찬란한 백제적인 미술품으로 재창조하였다. 나아가서는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파하여 일본 문화 형성의 기조를 이루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곤니찌와!"
강의 마치고 방문한 국립부여박물관에는 일본에서 단체로 관광 온 관람객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백제가 자신들의 문화의 뿌리라고 생각하기에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멀리 바다 건너 온 것이었다. 관람하는 태도 또한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어 내심 놀랐다.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다!"
그가 보여주는 자료에는 중국,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 증명해주는 문화재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세세하게 다 들려주고 싶지만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 그의 강의는 여기까지만 소개하겠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대백제전은 9월 18일부터 10월 17일까지 30일간 펼쳐진다.
풍요로운 가을의 길목에서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를 더듬어보자!
반응형
'가츠가 만난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취재이야기, 유병하 공주박물관장 (132) | 2010.09.02 |
---|---|
가츠의 취재이야기, 어린이 문화해설사 (124) | 2010.09.01 |
가츠의 취재이야기, 안희정 도지사 (99) | 2010.08.25 |
가츠의 취재이야기,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117) | 2010.08.20 |
가츠의 취재이야기, 김병지 골키퍼 (167) | 2010.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