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아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보다도 늠름한 대한의 아들로 만들어 건강한 모습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입대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멘트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남자들은 위 멘트처럼 입대전보다 훨씬 늠름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예비역들은 항상 농담처럼 말한다. 지난 군생활은 무척 힘들었고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고, 다시는 군대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본심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당시의 추억을 애틋해하고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떳떳하고 당당하다. 너는 20대 초반에 무엇을 하였는가?
"저는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을 인내하고 또 인내하여 버티면, 평생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어제 오후, 나는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인간의 욕심이라는게 어쩔 수 없나보다. 나는 정말 그들의 무용담을 듣고 싶었다. 말도 안되게 허풍스러워도 마냥 웃으며 박수치며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드디어 그들이 육지로 돌아왔다. 지난 20여일동안 깊고 깊은 물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울부짖는 어머니와 아내, 자신의 분신을 잃은 아버지, 함께 동고동락한 전우까지 아니 나도 울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만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시끄러워서 깰 법도 한데, 그들은 뭐가 그리 피곤하였는지 더욱 더 깊은 잠을 청한다.
누군가 말했다. 천안함 사고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며칠전 해군으로 근무하였던 동생이 전역하였다고, 나쁜 마음인 줄 알지만, 한편으로는 동생이 무사히 돌아와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고,
나도 말했다. 유난히 군대가기 싫어하던 내 동생,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정 가야된다면 해군으로 입대할 거라고, 나는 그냥 빨리 입대할 수 있는 육군으로 가라고 하였고, 결국 육군으로 가서 지금은 병장이 되었고, 때 마침 휴가를 나와있다. 나 또한 누구보다도 안도하였다.
어제는 꼭두새벽부터 서울에 올라가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며 웃고 떠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새벽 3시가 훌쩍 넘었다. 블로그고 뭐고 너무 피곤하여 그냥 잘려고 하였는데, 그들의 기사를 접하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 군대이야기를 연재하며 누구보다도 군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였는데, 정작 큰 사고 앞에서 애써 부인할려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였다.
사진 속의 헌병, 비록 함께 근무한 전우는 아니겠지만 입대하여 자신이 맡은 임무 중에 가장 막중한 임무일 것이다. 안치소를 지키는 임무는 그 어떤 임무보다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다. 나 또한, 4년전 내무실에서 함께 생활하던 후임을 떠나보내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바로 저 위치에서 지켜주었다.
장군이 와도 움직이지 않고 정면만 응시해야된다. 다른 임무는 없다. 오로지 내 등 뒤에 있는 전우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웃으며 일어나 나를 놀래켜 줄 거 같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시간이 흐르면 지난 많은 일들이 그랬듯이 천암함 사고 또한, 몇 줄의 기록으로만 남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마지막으로 그들의 관등성명을 확인하며 명복을 빌어 드리는 일 밖에 없는 거 같아 너무 안타깝다. 최후의 순간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의 후배들에게 맡기고 편히 쉬십시오.
◇갑판
▲하사 차균석 (제주 서귀포)
▲병장 이용상 (경기 고양)
▲병장 이재민 (경남 진주)
▲일병 김선호 (충남 천안)
◇병기
▲중사 박석원 (충남 천안)
▲하사 이상준 (부산 강서)
▲병장 이상민 (전남 순천)
◇사통
▲상사 남기훈 (충북 청주)
▲하사 조진영 (부산 부산진)
◇유도
▲중사 안경환 (경북 예천)
◇음탐
▲중사 김경수 (충남 서천)
◇보수
▲중사 박경수 (경기 수원)
▲하사 박성균 (경남 창원)
▲일병 조지훈 (서울 금천)
▲이병 장철희 (서울 노원)
◇내기
▲중사 김태석 (경기 성남)
▲중사 김종헌 (경남 양상)
▲하사 임재엽 (대전 동구)
▲하사 조정규 (경남 창원)
▲하사 장진선 (강원 동해)
▲일병 강태민 (인천 부평)
◇내연
▲중사 정종율 (전남 곡성)
▲하사 서승원 (인천 계양)
▲하사 서대호 (경남 의령)
▲병장 이상민 (충남 공주)
▲상병 김선명 (경북 성주)
▲상병 박정훈 (경기)
◇전기
▲상사 최한권 (충남 홍성)
▲중사 신선준 (울산 남구)
▲하사 심영빈 (강원 동해)
▲하사 박보람 (경기 평택)
▲하사 김동진 (부산 사하)
▲이병 정태준 (부산 사상)
◇전탐
▲원사 이창기 (경기 양평)
◇통신
▲하사 문영욱 (경북 고령)
◇전자
▲중사 문규석 (전남 구례)
◇전자전
▲상병 정범구 (경기)
◇음탐
▲하사 손수민 (울산 중구)
◇보급
▲중사 강준 (전남 고흥)
◇행정
▲중사 민평기 (충남 부여)
◇의무
▲중사 최정환 (충북 충주)
◇조리(이발)
▲하사 방일민 (서울 강남)
▲병장 이상희 (서울 금천)
▲병장 강현구 (서울 서대문)
▲일병 나현민 (서울 마포)
▲상병 안동엽 (조리, 서울 중랑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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