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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이등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3월, 자대에 전입 온 지 3주가량 지났을 무렵이다. 이제 겨우 중대원들을 얼굴과 이름을 외울 수 있었고, 어떻게 돌아가는 지 감이 왔다. 막내로서 해야 할 일과 하면 안되는 일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고참들도 있었지만, 말 없이 지켜보고 결과로 판단하는 고참들도 있었다.
주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였다. 돌아오자마자 행정반에서 총기함 열쇠를 가지고는 소대 총기함을 열었다. 나의 총과 고참의 총을 안전하게 거치시키고는 총기현황판을 최신화 시키고 있었다. 순간, 조상병의 손이 나의 어깨를 감싸더니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일전에 천사와 악마편에 등장한 바로 그녀석이다.
"근무 복귀하면 바로 수통에 있는 물부터 비우라고 했지! 왜 안 비워!"
"죄송합니다! 총기함에 총 넣고 바로 비우겠습니다!"
"총 넣고 비울려고 하셨는데 제가 괜한 말은 한거군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바쁘신 이등병님을 귀찮게 하다니 제가 죽일 놈이죠!"
"아닙니다아! 죄송하니다아!"
"아따 소리 왜 지르고 난리야! 누가보면 너 괴롭히는 줄 알겠네! 일부러 나 영창보낼려고? 이거 독한 놈인데?"
"어흐흑흑ㅜㅜ"
도무지 대책이 없다. 물론, 귀여운 막내에게 친근함을 표시하는 고참의 따뜻한(?) 마음이겠지만, 한번만 더 친한 척하였다가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최대한 그녀석의 시야에서 벗어나야만 하였다. 그러나 이등병은 화장실도 보고하고 다니는 판국에 도피처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조상병보다 강한 고참 옆에서 부비부비 모드로 있는 게 가장 안전하였다.
나는 잽싸게 내무실을 둘러 보았다. 침상 구석에서 시체놀이를 하고 있는 분대장이 보였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나의 첫 분대장. 함께 한 시간은 얼마 안되지만 참 좋은 고참이었다. 게다가 나를 많이 귀여워 해주었다. 조상병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잽싸게 누워있는 분대장 옆으로 다가가서 각을 잡고 앉아 있었다.
"우리 가츠! 근무서고 왔어?"
"네 그렇습니다!"
"아이구 고생많았지! 이리와! 누워누워! 요즘 누가 각잡고 앉아 있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허! 괜찮아! 밥 먹으러 갈때까지 눈 좀 붙혀!"
그렇게 나는 분대장 옆에 두 다리를 쭈욱 펴고 누웠다. 그러나 그자세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세이다. 분명히 누워있지만, 마음속은 불편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역시 분대장은 천사였다. 불편한 마음도 이내 사라졌고, 피곤한 육체에는 달콤한 잠의 유혹이 밀려왔다.
항상 뛰어다니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이등병 시절, 눈만 감으면 잠든다. 자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따뜻한 내무실의 온기는 얼어붙은 내 마음을 살며시 녹여 주었다.
꿈 속에서 그리운 집이 나왔다. 주방에서 어머니는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였다.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연신 끓고 있었고, 매콤한 엄마표 삼겹살 고추장볶음이 식탁에서 나를 유혹하였다. 얼른 다가가서 한 점 집어 먹을려는 찰나!
"이거 미친 거 아냐?"
순간, 누군가 나의 다리를 비틀고 있었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배수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고참들이었다. 옆을 바라보니 분대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참들은 순식간에 나의 팔과 다리를 제압하더니 능지처참 모드로 돌입하였다.
"살...살려주세요!"
"고참들은 나가서 삽질하고 있는데, 내무실에서 쳐자고 있다니! 너의 이마에 개념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주마!"
그렇게 고참들과 뒹굴면서 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냐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가짐의 문제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편한 곳이라고 힘들다. 그냥 그들과 동화되어 즐긴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다. 피할려고 할 수록 더 힘들 뿐이다.
저녁점호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침번 근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2번초였다. 초번은 문제의 조상병이었다. 행여 깊게 잠들어서 바로 일어나지 못한다면, 조상병의 갈굼을 내리 받는 생각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기를 수십분, 결국 뜬 눈으로 1시간을 보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찍 일어나서 근무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차라리 5분이라도 빨리 교대해주고 사랑받는 게 나았다. 일어나서 전투복으로 환복하니, 조상병은 흐뭇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잽싸게 복장을 갖추고는 조상병에게 다가왔다.
"우리 가츠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났네! 에구 이쁜 것!"
"하하 감사합니다!"
"인원, 총기 이상 없고, 내무실 바닥에 물 많이 뿌리고 외곽 근무자 시간되면 잘 깨우고 근무자 정위치 이상!"
조상병은 잽싸게 나에게 인수인계하고 라면을 들고 행정반으로 뛰어 갔다. 나는 자고 있는 인원과 총기함의 총기를 확인하고는 바닥에 물을 뿌렸다. 곤히 잠들어 있는 소대원을 보며, 부모님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지금 밖에서는 예능프로를 보며 야식을 먹고 있을텐데,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저런 사념에 빠져있는데 조상병이 라면을 먹고 돌아오더니 이내 침낭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하는 듯 하였다. 행여 말이라도 걸까봐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정자세로 서 있다.
"드르릉 드드릉~♪"
조용한 내무실에는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내 침낭을 덮고 자던 조상병은 짜증스런 말투로 나를 부르더니 코 고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보니, 말년 병장인 김병장이었다. 불침번의 많은 임무 중에 하나가 소대원들의 쾌적한 수면환경 조성이었다. 심하게 코 고는 인원이 있으면, 베개나 머리를 만져 코를 골지 않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나는 조심스레 김병장에게로 다가가서 조심스레 베개를 만졌다. 행여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눈 앞에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랑하는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말이다. 그렇게 베개를 만지자 더이상 코를 골지 않았다. 다시 제자리 돌아갈려는 찰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는 힘차게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조상병이 짜증내기 전에 다시 잽싸게 다가가서는 그의 베개를 만졌다. 만지면 딱 5초간 효과가 있었다. 결국, 그의 베개 앞에서 자리를 잡고는 5초 간격으로 베개를 만지작 거렸다.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처음의 떨림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귀찮기만 하였다. 마치 심술 난 그녀의 볼을 꼬집듯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베개의 들썩임은 커져만 갔다.
허리를 구부린 채 있어서 자세도 굉장히 불편하였다. 마음같아서는 김병장의 코를 막아버리고만 싶었다. 한껏 인상을 찡그린 채 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데, 곤히 자고 있던 김병장이 눈을 번쩍 뜨는게 아닌가?
"너 뭐하냐?"
나는 귀신이라도 본 거 마냥,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김병장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 보고는 다시 눈을 감고는 잠을 청하였다. 이 모든게 조상병 때문이다. 그냥 참고 자면 될 것을 무슨 내무실이 호텔인 줄 알어!
다음날 아침, 취사장에서 식사를 하고 올라왔는데 이상병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지난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나누었다.
"나는 네가 지난 밤 한 일을 알고 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늘같은 고참에게 그럴 수 있지?"
"죄송합니다!
"어제 새긴 개념이라는 두글자가 미처 아물지도 않았건만! 쯧쯧!"
이상병과의 정신교육이 한창인데, 내 등 뒤로 김병장과 다정하게 놀고있는 조상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니가 밉다 죽을 만큼 니가 밉다 싫다 미치도록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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