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며칠전부터 왼쪽 사랑니가 무척이나 아팠다.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치통이라고 하였다. 아침부터 엄습해오는 고통에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하였다. 나는 어릴때부터 치과에 가는 것이 정말 싫었다. 군대를 다녀온 지금도 치과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2시간여를 고민하였으나 통증이 완화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동네 치과를 향하였다. 예쁜 간호사가 나를 반겨주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초조하기만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치아를 이러저리 살펴보시고는 말씀하였다.
"대학병원으로 가게나! 사랑니를 뽑아야만 한다네!"
"대...대학병원이요? 사랑니를 뽑아야 되요?"
비정상적으로 나온 사랑니가 어금니를 밀어내고 있었고, 사랑니 주변에는 염증이 심하였다. 더이상 방치하면 고통만 배가되므로 하루속히 발치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온 나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대학병원은 미지의 세계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치 죽을 병이라도 걸린 거 마냥, 심각하게 쇼파에 앉아서는 앞날을 걱정하였다. 이런 내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마냥 재미있단듯이 웃고 계셨다.
"엄마! 어떻게 이 상황에 웃을 수 있어?"
"야이 쫄보야! 그만 징징대고 빨리 대학병원이나 알아봐! 군대도 갔다 온 놈이 쯧쯧!"
기왕 대학병원에 가는 거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는거다. 장교수님이라면 나를 완벽하게 치료해주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미 그는 의사를 그만두고 세계적인 지휘자로 활동하시다가 그만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에 걸리고 말았다. 당장 본인도 급한 처지였다. 결국 나는 가까운 경북대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12월까지 수술이 꽉 차있습니다!"
12월까지 버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부산대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 5일부터 치과 진료처는 경남 양산으로 이전되어 새단장하였다고 하였다. 우리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위치를 확인하고 나갈려는 찰나, 네이트온에 악랄패밀리의 자칭 비, 잇츠 레인 종수가 접속하였다.
"종수야! 나 너무 아퍼!"
"왜? 무슨 일이야?"
"사랑니때문에 죽을 거 같애!"
"그거 진짜 아프데이! 난 다 뽑았지롱!"
"진짜? 완전 부럽다! 언제 다 뽑았어?"
"군대에서!"
"........"
군대에서 사랑니를 뽑다니!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진심으로 종수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차에 올라 타고는 양산으로 향하였다. 계속되는 통증은 질주 본능으로 이어졌다. 쏜살같이 달려 도착한 부산대학교치과병원, 개원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무척이나 깔끔하였다.
접수처에서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였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접수처에는 직원이 한 명 밖에 없었다. 배가 고픈 것일까? 냉랭한 말투로 나를 반겨주었다.
"접수증 주세요!"
"접수증이요? 그게 머예요?"
"저기 옆에서 작성해야되요! 다음 분!"
뭥미! 그런걸 처음 온 내가 어떻게 알어? 접수처 직원은 냉정하게 나를 돌려보내고는 다음 대기자를 불렀다. 순간 울컥하였지만, 배가 많이 고파서 그런가보다 하고는 얌전히 물러나서 접수증을 작성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번호표를 뽑고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곧, 식사를 마친 다른 직원이 돌아왔고, 내 차례가 되었다.
"처음 오셨어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넵! 사랑니 뽑으러 왔어요!"
"3층에 있는 구강악안면외과로 가세요!"
구강악안면외과라? 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이름이었다. 나는 접수증을 들고는 3층으로 올라갔다. 구강안면외과로 가니 레지던트로 보이는 수련의가 나의 접수증을 확인하고는 다시 접수처로 내려가서 사진값을 결제하고는 방사선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오라고 하였다. 역시 대학병원은 복잡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다리는 환자들이 얼마 없어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접수처, 번호표를 뽑고 또 대기하였다. 그리고는 사진값을 결제하고는 방사선과로 향하였다.
순서를 기다리며 빈 촬영실에 있는 장비를 한 컷 찍었다. 곧, 방사선과 선생님은 나를 부르더니 안경을 벗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치아와 머리를 고정시키고는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는 촬영을 시작하였다. 파노라마 사진기는 연신 나의 머리를 회전하면서 고주파음을 내기 시작하였다. 살짝 눈을 떠보니 렌즈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녀석 나의 두뇌를 스캔하고 있어!"
촬영을 마치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레지던트에게 사진을 찍고 왔다고 하니, 진료실로 가자고 하였다. 바쁜 진료실의 풍경은 평소 병원드라마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바삐 뛰어다니는 인턴, 그 위로 레지던트와 임상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같은 분들이 보였다.
군대와 분위기 별반 다를게 없었다. 교수님들은 말년병장처럼 여유로워 보였고, 강사들은 매의 눈으로 레지던트와 인턴을 살펴보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고, 인턴은 아직 모든게 낯설어 보였다.
"이거 양쪽 다 뽑으실건가요?"
"그럼 밥먹을 때 힘들지 않아요?"
"그...그렇죠?"
"굶겨죽일 작정이셈!"
"인간은 강해요! 어떻게든 먹을 거임!"
레지던트로 보이는 선생님은 나의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교수님께 보고하였다. 교수님은 바로 수술날짜를 잡으라고 하시고는 유유히 떠났다. 레지던트는 나에게 수술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는 나의 상태에 대해서 사진을 보면서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환자분은 어금니가 많이 누워있네요. 일단 잇몸을 째고 사랑니를 조각내야 된답니다!"
"조각을 내요?"
"게다가 신경선도 맞물려 있어서 자칫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어요!"
"부...부작용이요?"
"감각을 못 느낀다거나? 턱이 돌아가거나? 하하 농담이예요!"
"그러지 말아요! 진심 무섭다구요!"
"일단 수술동의서 한 장 작성해야되요! 어이 일로와봐!"
인턴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성이 수술동의서를 가지고는 나에게 왔다. 친절하게 한줄 한줄 읽어주면서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말투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레지던트는 안보는 척 하면서 매의 눈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갈굴거리를 찾고 있는 거 같았다.
친절한 그들의 설명이 끝나고, 수술날짜를 조율하기 시작하였다. 레지던트는 인턴에게 수술일지를 건네주고는 수술날짜를 정해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옆에서 또 안보는척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근히 잘 어울리는 콤비였다.
그렇게 수술날짜까지 무사히 예약하고는 다시 1층 접수처로 내려가서 대기표를 뽑았다. 예약진찰료까지 결제하고서야 모든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처음 가본 대학병원이었지만, 그리 복잡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수술하러 가는 날에는 결코 즐겁지 않겠지만 말이다.
다가오는 수술날이 무척이나 떨린다.
추천 쾅
반응형
'가츠의 옛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옛날이야기, 성적표 (213) | 2009.10.20 |
---|---|
가츠의 옛날이야기, 치한 (238) | 2009.10.16 |
가츠의 옛날이야기, 생존보고 (219) | 2009.10.07 |
가츠의 옛날이야기, 용돈 (154) | 2009.10.04 |
가츠의 옛날이야기, 빈집털이 (215) | 2009.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