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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신교대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05년 02월 설날이었다. 당시 훈련병이었던 우리들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연휴를 아무것도 없는 내무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연휴에는 간부들도 근무인원만 제외하고는 출근하지 않는다. 물론 조교들도 그냥 편하게 쉰다. 조교들이야 신병교육대대가 자대이기 때문에 자신들에 내무실에는 없는 것이 없다.
TV, 오디오, 게임기, 잡지 등 연휴를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물품으로 가득하다. 하긴 군대에 있는거 자체가 문제지만, 그래도 저런거라도 있으면 덜 심심하다. 문제는 훈련병인 우리들이다.
훈련병 내무실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25명의 훈련병 뿐이다. 그렇다고 눕거나 관물대에 기대어서 쉴 수도 없다. 그냥 각잡고 앉아서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침먹고 멍~ 점심먹고 멍~ 저녁먹고 멍~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아직 설연휴는 이틀이나 더 남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기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동방신기를 패러디한 국방신기가 결성되었고, 그녀석들의 입담을 들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이틀째가 되니 다들 패닉상태되었다.
"나 지겨워서 미칠거 같애!"
"난 배고파 ㅜㅜ"
갑자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설날이라고 당직사관이 특별히 최신가요를 틀어주었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악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한 가요 멜로디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너무 달콤하였고 감미로웠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다들 음악에 심취하고 있는데, 음악이 뚝 끊겼다. 실망한 우리들은 다시 우울모드로 돌아갈려는 찰나, 스피터에서 당직사관의 육성이 흘러나온다.
"이 지루함에 지치고 힘든 마음들 정말 이 노래와 우리들의 이 화끈한 여러가지의 웃음으로 한 번 시원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심심하시죠? (예-) 심심하시죠? (예-) 저희들 이 여러가지 하는거 보시면서 확 풀어보세요!"
하하~! 이건 아니고 다시 당직사관의 육성이 흘러나온다.
"중대장님께서 특별히 설연휴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인사하도록 조치하여 주셨다. 잠시후, 조교의 통제에 따라 전화이용을 하도록 한다!"
"와아아아~!"
내무실마다 훈련병의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전화 한 통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뻐하는 곳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동기들을 부둥켜 안고 목청껏 중대장님 만세를 외쳤다. 지금의 상태로 중대장이 대선에 나가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엄청난 환호였다.
막상 한 통의 전화를 할 수 있다고 하니,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물론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하는 게 마땅한 도리지만, 마음 한 곳에서는 자꾸 여자친구 생각이 꿈틀꿈틀 커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여자친구의 생일이었다. 입대 전에 미리 꽃배달서비스를 해놓고 몰래 입대하였는데 잘 받았는지 너무 궁금하기도 하였다.
"자식이 키워 봤자 다 소용없다!"
역시 옛말이 괜히 있는 아니었다. 문득 구석에 앉아 있는 51번 훈련병이 부러웠다. 저녀석은 고민할 필요도 없을테니 말이다. 왜 부러운지 모르시는 분은 고무신편을 읽어 보시면 된다.
"가츠야~! 부모님께 전화할거지?"
"글쎄~ 너는?"
"나도 고민된다! ㅜㅜ"
옆자리에 앉아 있는에 60번 훈련병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보다. 하긴 누구라도 다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나 고민을 하였을까?
어느덧 우리 내무실 차례가 되었다. 조교는 모두 나오라고 하였다. 복도에 설치되어있는 2대의 공중전화를 이용하는데, 2대의 전화기 사이에 조교가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결정을 해야된다. 어머니? 여자친구? 어머니? 여자친구? 엄마? 여친? 아아악~! 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좀처럼 결정할 수 없었다.
"오 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바로 앞에 있는 훈련병이 전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딱히 조교는 시간을 정확히 재거나 듣는 거 같지는 않았다. 딱보니 이등병같은데, 밥이 안되서 여기 앉아 있는 거 같다. 하긴 나머지 조교들은 내무실에서 다 놀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너무 오래 통화하면 뒤에 있는 동기들에게 눈치가 보이니 다들 알아서 양심껏 3분가량만 통화하였다. 앞에서 통화하고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다 울먹이거나 흐느끼고 있었다.
"못난 놈들~! 다 큰 놈들이 질질짜고나 있고 잘한다~! 쯧쯧~!"
그나저나 아직도 결정을 못했는데 큰일이다. 그래 부모님한텐는 자대배치 받고 멋진 이등병의 모습으로 인사하자! 지금 하기에는 너무 감동깊지 않아! 라는 말도 안된는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여자친구한테 하기로 결정하였다. 앞에 녀석은 3분내내 울먹이다가 별로 말도 못하고 퇴장하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를려고 하는데 동전이나 카드가 없다. 뭥미? 나는 당황하여 조교를 바라보니, 조교는 귀찮다는듯이 보지도 않고 고개를 벽쪽으로 까닥걸린다. 벽쪽을 바라보니 온갖 다양한 콜렉트콜 광고가 붙어있었다. 콜렉트콜 회사가 이렇게 많았다니 처음 알았다. 대뜸 조교가 무심한 어투로 한마디 하였다.
"1682로 해라~!"
"아나~! 이것들 남규리 보고싶어서 전화시켜 주는 거 아니야?"
강력한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시간이 없다. 나는 잽싸게 1682를 누르고는 여자친구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였다. 설마 나도 없는 번호라고 나오는 건 아니겠지?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다.
뚜우~! 뚜우~!
신호음이 들린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기뻤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받기만 하면 되는데, 몇초간의 시간이 정말 세상에서 가장 길게만 느껴지는 순간이다. 딸깍~♪
잠시 연결되는동안 상대방에게 자신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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