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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신교대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2월, 가츠군은 신병교육대대에서 훈련병의 신분이었다. 2주차에 접어든 신병교육대대의 생활은 정말 쉴 틈도 없이 바빴다. 강원도의 겨울아침은 언제나 제설작업으로 시작한다. 훈련병이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더 열심히 제설작업에 임해야 된다.
"기상! 기상!"
어김없이 찾아 온 기상시간, 전날 훈련으로 인해 몸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어김없이 조교의 벌점어택이 시작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은 아름다운 눈으로 뒤덮혀있다. 우리는 제설장비를 챙기고는 영외도로로 나갔다. 제설작업을 할때는 조교들도 크게 통제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눈만 열심히 치우면 되었다.
지난주 주말,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작성하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답장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다. 옆에는 51번 훈련병이 신나게 눈을 쓸고 있었다. 51번, 키가 좀 작았지만 외모는 완소남이었다. 마음같아선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는 이미 품절남 아니 유부남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제하겠다. 대신 꼭 닮은 연예인으로 대체하겠다.
"가츠야~ 오늘쯤이면 답장이 오지 않을까?"
"과연 느려터진 군대에서 올까?"
"그리고 사격 18발 맞추면 전화이용하게 해준데!"
"하앍~ 전화하고 싶다!"
그랬다! 다음날 기록사격이 예정되어 있었다. 20발 중 12발이상을 맞추면 합격이고, 18발 이상을 맞추면 전화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였다. 훈련병이라면 누구나 전화이용을 하고 싶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는 훈련병들은 특히나 더 간절할 것이다.
"이쁘지?"
"뉴규?"
"내 여자친구야!"
"아나~ 이게 확인 못한다구 인터넷 오대얼짱 사진 퍼온거 아냐?"
당시 51번도 멋진 외모에 어울리는 아리따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나와 항상 서로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 여자친구가 더 이쁘다고 티격태격 거렸다.
제설작업을 마치고, 내일 있을 기록사격을 위해 종일 영점 사격과 사격예비술훈련을 받았다. 종일 차가운 바닥에서 뒹굴다보니 팔꿈치와 무릅이 시리고 아팠다. 그러나 지금의 고생이 내일 있을 기록사격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 줄거라 믿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다.
"무조건 합격할거야~!"
고된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의 밤이 찾아왔다. 내무실에서 점호청소를 하고 있는데 조교가 들어오더니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다. 조교의 손에 들려있는건 다름아니 편지였다. 조교는 우리들의 훈련번호를 부르며 편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편지를 받는 훈련병들은 마치 보너스가 두둑한 월급봉투를 받는 거처럼 기뻐하였다. 혹시 내 편지는 없는 게 아닐까?
"59번 가츠! 뭐가 이리 많아!"
우와~! 부모님이 보내 주신 편지와 여자친구가 보내 준 폭탄편지로 인해 한번에 20개 가량의 편지봉투를 받았다. 부러워하는 동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조교는 가지고 온 편지를 모두 나눠주고는 떠났다. 다들 편지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편지부터 조심스레 개봉하였다. 편지봉투 안에는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작성한 3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옆에 있던 60번이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전염병처럼 내무실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녀석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아나~ 난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왜 울고들 난리야!"
어머니의 낯익은 글씨체를 보자 벌써부터 마음이 아려온다. 최대한 밝게 작성할려고 한 어머니의 흔적이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였다. 동기들이 먼저 울어서일까?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콧잔등이 짠하였다. 그렇게 가족들의 편지를 다읽고, 여자친구의 편지를 보니 너무 많았다. 마침 저녁에 불침번 근무가 있으니 그때 몰래 보기로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51번 녀석만 홀로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저 녀석 편지가 오지 않았나보다. 생긴 걸로는 팬클럽까지 있을거 같은데 한 통도 오지 않다니... 외로워 보였다. 나는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51번! 내일이면 올거야!"
"당연하지~! 내일이면 박스채로 올거야!"
"심심하면 내거라도 하나 읽을래? ㅋㅋㅋ"
"꺼져!"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기록사격이 있는 날이라서 아침부터 교관과 조교들이 우리를 빡세게 굴렸다. 한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만들 수 있기에 항상 긴장하여야만 한다. 긴장도 긴장이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전화이용 뿐이었다. 무조건 18발이다!
탕 탕 타탕~!
51번 훈련병의 사격솜씨는 일품이었다. 어제 편지를 못받아였을까? 타켓에 분풀이라도 하는 거 같았다. 신들린듯한 사격을 마치고 내려왔다. 그녀석 자그마치 19발이나 맞췄다. 사격을 마치고 나오는 그 녀석의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하였다.
"하하하~ 전화는 나의 힘!"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한발 한발 혼신의 힘을 다해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연신 타켓을 빚맞추고 있었다. 이거 전화이용은 커넝 자칫하다가는 불합격할지도 모르겠다.
"59번 악랄가츠 12발!"
망했다! 겨우 턱걸이로 합격하였다. 오히려 후회스러웠다. 그냥 불합격하고 뒤에서 좀 구르다가 다시 사격할 걸 그랬나? 그럼 잘 쏠 수 있을텐데?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합격자들은 먼저 부대로 복귀시켰다. 돌아가는 군용트럭안에서 51번은 연신 자랑하고 있었다.
"거참~ 이게 사랑의 힘인가?"
"어흑~ 부럽다!"
"여친을 위해 이정도는 해야지~! 가츠는 사랑이 부족하구나~! ㅋㅋㅋ"
"꺼져!"
내무실로 돌아온 우리들은 총기손질을 하면서 나머지 인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좀처러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합격할 때까지 하나보다. 문득 합격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전화는 뭐~ 자대가서 하면 되지~!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그날 저녁, 조교가 들어오더니 우수사격자들은 행정반으로 가라고 지시하였다. 51번은 우리를 향해 자축의 어퍼컷을 한방 날리고는 행정반으로 신나게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정말 블링블링하였다. 여자친구한테 답장 작성할 때 사격이야기는 빼야겠다. 부끄럽다. 앜ㅋㅋㅋ
얼마나 오래 통화하는걸까? 1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 흑~! 나는 목소리 한번만 들어도 원이 없을텐데 말이다. 곧, 조교와 함께 51번이 내무실로 돌아왔다. 조교는 연신 51번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51번은 내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고개를 푹 숙인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어떻게 된거야?"
"저리가!"
"뭐야 말해봐!"
"나 슬프지도 않아! 겁나 쪽팔려!"
"왜 차였어?"
다들 51번을 측은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남 일 같지 않아서 표정이 더 어두웠다. 나는 재차 추궁하였고, 그녀석은 다 포기한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없는 번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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