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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병장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10월이다. 내무실에 남은 고참이라고는 3명 뿐이다. 이마저도 이미 이등병 때부터 확실하게 매수해왔기 때문에 든든한 나의 아군이었다. 이때부터 TV리모컨과 오디오의 음악선택권이 전적으로 나에게 위임되었다. 당시 우리부대는 스카이라이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몇달전, 스카이라이프를 설치하기 위해 온 기사님은 마치 이효리가 방문한 거 마냥 우리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우리는 연신 우주에 있는 위성에게 감사를 하였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우리에게는 야구를 좋아하는 최병장이 있었다. 이때문에 황금같은 주말 오후, 남정네들만 나오는 야구를 보면서 눈물만 흘러야 했다.
"아나~ 인기가요하는 시간인데! 이번주 누구 나오냐?"
"우유빛깔 백지영님께서 나오는데 말입니다~! 이제 다시 사랑 안해~♪"
"아우! 이제 다시 야구 안해!"
그렇게 나는 타 소대를 기웃거리며, TV를 봐야만 했다. 그러나 최병장은 전역하였고, 이제 누구도 나를 터치할 수 없었다. 주말에는 TV 앞에 누워서 시체가 되어 버렸다. 내가 TV리모콘을 잡은 뒤로는 후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나의 채널 선택권은 언제나 베스트오브 베스트였다.
재밌는 프로가 시작되면 잽싸게 채널을 맞춘다. 가끔 기대했던 프로가 실망스러우면 초스피드 채널 스캔을 통해, 동시간대 최고의 프로를 찾아 낸다. 나의 선견지명으로 우리 소대 내무실은 웃음꽃이 멈추지 않았다.
당시 개국한 tvN은 군인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너무 자극적이라며 질타 받고 있었지만 군대에서만은 예외였다. 특히 늘씬한 미녀들만 나오는 티비엔젤스라는 프로는 가히 압권이었다.
빛나는 누나들이 심장박동기를 장착한 남자를 유혹하여 쓰리벌떡을 시키는 게임이 있는데, 이 게임이 시작되면 부대는 조용해진다. 일체의 유동병력 없이 TV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다. 그리고 쏟아지는 환호들~!
"나한테 장착했으면 심장박동기가 터졌을거야~!"
별다른 문화생활을 즐길 수 없던 우리는 TV에 의지한 채,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본부중대에서 생활하는 아저씨가 나에게 최신 정보를 입수해주었다. 당시 우리 중대에 설치된 스카이라이프는 최소한의 채널만 나오는 기본형이었다. 고로 최신영화나 성인영화 등 많은 채널을 볼 수 없었다. 내용만 볼 수 없지, 제목, 줄거리는 다 볼 수 있었기에 정말 고문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그림의 떡이었다.
"가츠아저씨~ 우리는 성인영화 본다~! ㅋㅋㅋ"
"헐~ 지금 당장 보는 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지옥을 맛볼 것이다~!"
"자네~ 지금 그것이 부탁하는 자세인가?"
"PX로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피같은 월급으로 짬뽕면과 냉동을 사주고서야 그는 나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휴대폰을 이용하여 결제하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뭥미? 군인에게 휴대폰이 있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해결책은 간단한다. 휴대폰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인증번호만 알아내서 입력하면 되는 것이다.
잽싸게 내무실로 돌아온 나는 기쁜 소식을 소대원들에게 알려주었다. 들뜬 소대원들은 그동안 군침만 흘리고 있던 성인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였다. 나는 그간의 축적된 경험으로 최고의 작품들을 선별하기 시작하였다. 최종 후보작 3작품이 나왔다.
번지점프 중에 하다, 방과후 옥장판, 터보네이터
작품성을 봤을 때는 번지점프가 그래도 괜찮아 보였지만, 방과후는 왠지 신선해 보였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터보네이터가 가장 끌렸다. 소대원들도 만족해 하는 거 같았다. 자 그럼 이제 결제를 해야만 한다. 누구에게 부탁을 할까? 지인들에게 부탁을 할려고 하였는데, 생각해보니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짐승같은 놈!"
하앍~ 명색이 나라을 지키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인데, 실로 부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부대안에서 해결을 해야된다. 그렇다면 부대안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간부다!
"오늘 당직사관 누구야?"
"2소대장님입니다~!"
음~ 착한 2소대장은 허락해주실지도 몰라~! 나는 잽싸게 행정반으로 뛰어갔다. 행정반에는 2소대장이 책을 보고 있었다. 역시 인텔리한 2소대장~! 가까이 다가가보니 책은 맥심이었다. 그럼 그렇지! 2소대장은 입대전 레크레이션 강사도 할 정도로 유쾌하고 병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시는 좋은 사람이었다. 강압적이지 않았기에 항상 병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소대장님~!"
"오오 가츠 무슨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주말이고 해서 소대원들끼리 영화 한 편을 볼려고 하는데 최신영화는 휴대폰으로 결제해야 된답니다. 소대장님께서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오오~ 최신영화도 볼 수 있구나? 뭐 보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볼려고 합니다! 대세는 우행시지 말입니다~!"
"과연 니들이 그걸 보면 행복해질까?"
"하하하........"
그렇게 포스터 문구처럼 정말 천사같은 2소대장을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휴대폰을 받은 나는 잽싸게 내무실로 뛰어갔고, 계획대로 터보네이터를 결제하였다. 후훗~ 휴대폰으로 인증번호가 날라왔다. 스카이라이프 리모컨으로 인증번호를 입력하자,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나오더니 영화가 시작되었다.
당시 내무실의 분위기를 회상해보자면, 2002년 월드컵 당시 안정환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 헤딩골을 성공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더 심했을 수도 있다. 침상 한 쪽에서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노상병의 모습이 보였고, 반대쪽에는 엎드려서 흐느끼고 있는 황병장이 보였다.
일병들은 연신 내무실 정리를 하며 기쁨을 청소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이등병들은 각잡은 채로 자뭇 진지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눈이 초승달이었다.
"저녀석 눈이 웃고 있어~! ㄷㄷㄷ"
그러나 지금 환한 대낮에 볼 수는 없었다. 언제 간부들이 들이 닥칠 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구입한 영화는 24시간동안 얼마든지 볼 수 있기에 날라온 인증문자를 지우고, 다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결제하였다. 그리고 터보네이터는 야심한 밤에 몰래 보는 것이다. 후훗 비로소 완전범죄가 성립되었다.
TV화면에는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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