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오늘은 병장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11월, 지긋지긋한 군생활도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대할때 730일부터 카운팅하였는데, 이제 50일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맘때가 되면, 하루하루가 그렇게 더딜 수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가 마치 일년같다.
특히 당직근무라도 있는 날이면 다음날 오전까지 꼬박 밤을 지새워야 하기에 더욱 힘들다. 일과시간을 마치고 당직근무를 서기 위해 행정반으로 투입하였다. 들어가자마자 각소대로 인원,총기현황을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당직근무의 생명은 정확한 인원, 총기현황이다. 이것만 제대로 최신화 되어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야~! 포반 미친거 아냐? 인원,총기파악 해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행정반 바로 옆에 있는 본부포반이 보고를 하지 않는다. 화가 난 나는 포반 문을 발로 걷어차며 들어갔는데, 그 곳은 본부포반 인원들과 1소대 인원들도 가득차 있었다. 다들 TV를 보면서 연신 환호하고 있었다. 머야~! 효리누나라도 나온거냐?
"뭔데? 비켜봐~!"
아니~! 이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아닌가? 비디오게임의 전설~! 요즘에는 닌텐도가 대세지만 불과 몇년전만하더라도 세계 게임기 시장의 부동의 1위는 플스였다.
"우와~! 이거 누구꺼야?"
"1소대장님이 오늘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럼 진작 형한테 보고해야지~!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나에게 있어 플스란? 지난 대학시절, 나는 플스와 동고동락하였다. 플스 패드를 손에 쥐고 잠든 날이 몇날 몇일인가? 특히, 선배나 동기들과 내기를 하면서 배고픈 유학시절, 유흥비와 밥값을 아낄 수 있었다. 플스는 나에게 있어 백지수표나 다름없었다. 배고프면 선배 붙잡고 밥내기를 하였고, 술이 고프면 술내기를 하였다.
입대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다 처분하였는데, 오늘 내무실에서 플스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당직근무고 뭐고 다 잊고, 플스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지만, 남자들만 있을때는 뭐니뭐니해도 축구게임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위닝일레븐이다. 위닝 실력에 따라 지갑의 두께가 결정된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환상적인 그래픽과 화려한 기술에 매료되어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서병장과 이병장이 하고 있는데 실력이 고만고만하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양민학살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츠병장님, 지통실에서 전화왔습니다~!"
"아 왜!!!! 왜!!!!"
행정반으로 돌아가서 전화를 받으니, 중대 인원, 총기현황을 빨리 보고하라고 재촉한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플스가 눈 앞에 있는데~! 나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인원, 총기현황을 정리하여 보고하였다. 때마침, 간부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행정반으로 들어오셨다.
완전군장편에서 소개했었는데, 당시, 소대장이셨던 김중위님은 이제 부중대장이다. 내가 당직근무를 서고 있으니 연신 장난치시면서 고생하라며 놀리셨다. 이때, 본부포반에서 들리는 환호소리~! 부중대장은 뭔가 싶어서 들어가셨고, 이내 축구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리를 꿰차고 앉으셨다.
부중대장은 우리 연대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셨다. 그를 보고 있자니, 마치 호날두가 연병장에서 뛰고 있는 거 같았다. 머릿속은 게임기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행정반에서 중대장님이 퇴근하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이리 퇴근을 안하시는 거지?
"가츠 수고해~! 퇴근한다~!"
나는 행정반 문앞에서 두 손을 크게 흔들며 중대장을 배웅하였다. 마음같아선 진달래꽃이라 아름따다 뿌려주고 싶었다. 잽싸게 본부포반으로 들어갔다. 이미 부중대장과 서병장의 매치가 시작되었다. 이기는 사람이 계속하고, 지는 사람이 교체되는 일명 데스매치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미 부중대장은 3명을 내리 격파하였다. 그러고보니 부중대장은 같은 기종의 게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중대장은 호날두를 조종하며 연신 서병장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부중대장도 손쉬운 상대 같았다. 쉽겠는데? 나는 옆에서 바람을 잡기 시작하였다.
"에이~! 이거 뭐 K-리그 보는 것도 아니고 왜 이리 박진감이 없습니까?"
부중대장은 내 말이 신경쓰였는지 연신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더욱 신나서 부중대장을 부추기기 시작하였다.
"오오~! 이거지 말입니다~! 이제 좀 재밌네~! 오오오 프리킥 찬스~!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
구경하던 녀석들까지 신나서 응원하기 시작하였고, 부중대장님은 정말 진지하게 조이스틱을 조종하더니 프리킥을 시도하였다.
슈윳~! 고오오올~!
"와우~! 부중대장님 킹왕짱~! 역시 축구를 잘하는 사람은 게임도 잘해~! 박지성도 겁나 좋아잖아~!"
환호하는 중대원들을 보라보며 부중대장은 연신 뿌듯해 하셨다. 좋아 떡밥은 이미 물었다. 이제 낚으러 가보자~! 나는 울고있는 서병장의 조이스틱을 낚아채며 부중대장을 바라보았다.
"한수 부탁드립니다~!"
"아하하 가츠~! 이거 할 줄 알어?"
"헐~! 저 잘합니다~! 그냥 하면 허전하니 아이스크림 콜?"
"으하하 또또 까분다~! 한국으로 해주마~! ㅋㅋㅋ"
이런... 한국이라니... 나를 얕잡아도 너무 얕잡아 보신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을려고 했는데, 부중대장님의 한국 발언에 나는 발끈하였다. 곧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드리죠~! 후훗~!
전반전은 탐색전을 가지며, 나의 실력을 감추었다. 부중대장은 연신 편안한 자세로 여유를 부리며 시합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아이스크림따윈 잊었다. 대신 강원도 깊은 산 속, 어디서나 전화 한 통이면 그 곳이 지뢰밭이라도 쏜살같이 배달해주는 군인들의 절친~! 네네치킨으로 타켓팅하였다.
후반전, 나는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였고, 결정적 실수를 유발하여 결국 골을 먹었다. 기뻐하는 부중대장~! 나를 보며 연신 놀리고 있다.
"하하 가츠이거 완전 허접이구만~!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와~!"
"아흑~! 너무 억울합니다~! 그 실수만 아니었어도 제가 이길 수 있었는데~!"
"실수도 임마 실력이지~! 핑계는~!"
"이대로 억울합니다~! 그럼 아이스크림받고 치킨~! 인생 한방이지 말입니다~!"
"또또~! 오바한다~! 돈은 있나? 이번엔 일본으로 할까? ㅋㅋㅋ"
흑.. 일본이라니.. 치킨만 먹을려고 했는데 피자까지 먹을까? 크크~! 불쌍하다 치킨만 먹자~! 나는 아이스크림과 치킨을 걸고 재경기를 펼쳤다.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봉인해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화려한 개인기와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로 부중대장을 농락하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부중대장은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의 세포는 오랫만에 잡은 조이스틱 감촉에 기뻐서 하나하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게임기와 나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화면 속의 축구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슛~! 골~! 슛~! 골~! 슛~! 골~!
"우하하 치킨이 보이는구나~! 네네~!"
연신 강력한 슈팅을 날렸고, 점수판은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부중대장을 바라보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뭇 심각하게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심했나? 담부터 안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ㅋㅋㅋ
얼마후, 시합 종료를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렸고, 4:0의 스코어로 게임이 끝났다.
"말도안돼~! 야 가츠 한판 더 해~!"
"뒤에 애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줄서세요~! 중국으로 해드릴걸 그랬나? 앜ㅋㅋㅋㅋㅋ "
반응형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훈육분대장 下편 (279) | 2009.08.07 |
---|---|
가츠의 군대이야기, 훈육분대장 上편 (299) | 2009.08.06 |
가츠의 군대이야기, 기록사격 (392) | 2009.08.04 |
가츠의 군대이야기, 치맛바람 (200) | 2009.08.01 |
가츠의 군대이야기, 냉복숭아 (281) | 2009.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