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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일병때 겪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11월, 무시무시한 겨울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이제 그동안 보관해두었던 방한용품들을 꺼낼 시기가 온 것이다. 유난히 강원도의 추위는 빨리 찾아온다. 이때가 되면 대대마다 겨울내 때울 기름을 비축하기 시작한다. 보급이 빵빵한 상급부대는 항시 뜨거운 물이 콸콸나오고, 따뜻한 내무실에서 생활하지만 전방의 전투부대는 항상 기름이 부족하다.
자칫, 평소에 기름을 과소비하면 훈련시 차량에 넣을 기름도 부족할 수 있기에 한겨울에도 우리는 찬 물로 씻었다. 2주에 한번 대대목욕탕에서 하는 온수샤워가 전부였다. 뜨거운 물은 뭐랄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무척 길기때문에 11월달에 보일러를 가동하는 것은 사치이다. 본격적인 추위는 12월말부터 3월까지이다. 그렇다고 11월이 결코 춥지 않다는게 아니다. 사실 겁나게 춥다.
예전에 제초작업편에서 언급하였지만, 같은 소대원인 손상병이 우리 중대 시설관리병이다. 고로 손상병이 보일러실도 관리한다. 손상병이 유난히 나를 좋아하였기에, 항상 작업이 있을때마다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나야 손상병과 둘이 작업하면 보조만 해주면 되기에 너무너무 편하고 좋았다. 또한, 보일러병의 특성상 항상 짱박히고 군것질을 많이 한다. 중대원들은 추운날 나가서 개고생하고 있을때, 나는 손상병과 보일러실에서 따뜻하게 라면을 먹고 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손상병이 9박 10일의 정기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일반 중대원이 휴가를 가는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설관리병인 손상병이 휴가를 나가면, 중대에서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렇다고 휴가를 안나갈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안그래도 작업하느라 계획된 휴가에서 많이 연기되었다. 그나마 지금이 널널한 시기라서 나가는 것이다.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보일러병은 항상 보일러를 지키고 있어야하기에 부대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츠야~! 나 휴가갈 동안, 보일러실은 너가 지켜라~!'
'헉~! 진짜입니까? 하나도 만질 줄 모르는데 말입니다~!'
'별거없어~! 그냥 레버만 몇개 땡기면 돼~! 알려줄께~!'
'알겠습니다~!
'아마 나 없는 사이에 두세번 가동할지도 몰라~! 그래서 미리 기름도 채워놨다~! 그렇다고 막 돌리면 안돼~! 양이 얼마 없거든~! 통제받아서 시키는대로만 해~! 알았지?'
'하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그렇게 손상병은 나에게 인수인계를 하였고, 나는 빛나는 보일러실 열쇠를 손에 얻었다. 마치 뭐랄까? 절대반지를 얻은 기분이랄까? 부대 내에서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공간 말이다~! 후훗~! 벌써부터 즐거워지는데!
손상병이 휴가간지 이틀째되는 날, 2소대 악마라고 불리는 신병장이 나에게 찾아왔다. 평소라면 나에게 찾아 올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가츠일병~♥ 나 내일 여자친구 면회와~!'
'일병 가츠~! 우와 내일 여자친구 면회오십니까? 부러워요~!'
'고로 내일 아침에 무슨일이 있어도 샤워를 해야돼~! 온수~! 콜?'
'음... 보일러 기름 없어서 함부로 돌리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헐~! 많이 컸네 우리 가츠~! 좋다 원하는게 뭐야? '
'하하 제가 감히~! 신병장님이 돌리라고 하시면 돌려야지요~! 근데 이번달 맥심이 대박이라던데 말입니다~!'
'고작 원하는게 맥심이라니~! 나만 믿어~!'
후훗~! 이게 바로 보일러병의 특권이다. 주말에 여자친구 면회외박를 다녀온 신병장은 나에게 맥심을 선사해주었다. 당시 검열이 자주 왔었기 때문에 중대내에 맥심이란 맥심은 모두 폐기처분 되었다. 하지만 나는 신상 맥심을 보란듯이 보일러실에 몰래 숨겨두었다. 게다가 라면과 과자도 숨겨두었다.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놓듯이 나도 보일러실를 나만의 보물창고로 이용하였다.
며칠후, 초저녁부터 기온이 심하게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예상밖의 강추위가 부대를 급습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그날 저녁 당직사령은 전 중대에 보일러 가동을 지시하였다. 병사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인 22시부터 24시까지 가동하라고 지시하였다. 오홋~! 드디어 나의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군~! 중대원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선사해줘야지~!
'가츠야~! 오늘 너무 춥다~!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줘~!'
'일병 가츠~! 분대장님 걱정마십시오~! 제가 따뜻한 잠자리를 선사해드리겠습니다~!'
나는 갖은 폼은 다잡고 22시가 되기도 전에 쫄래쫄래 보일러실로 이동하였다. 후훗~! 나만 들어갈 수 있는 보일러실~! 일단 낮에 짱박아둔 빵이랑 과자나 좀 먹으면서 기다려볼까~! 나는 행여 누가 볼새랴~! 조용히 보일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열려라 참깨~!
찌이잉~! 신원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가츠일병의 출입을 허가합니다~! 철컥~!
나는 보일러실로 들어가서는 빵을 한입 베어물며, 평화롭게 맥심을 펼쳤다. 와우~! 그레이트~! 얼마나 지났을까? 손목의 알람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삐~삐~ 22시가 다되었군~!
나는 보일러를 가동시키고는 다시 내무실로 돌아왔다. 이제 2시간 후에 다시 작동을 중지시키러 가야된다. 원래 불침번에게 말해놓고 깨워달라고 해야되는데, 마침 행정반에 근무사항을 확인하러 갔나보다. 아 졸린데~ 후딱오지~! 그러고보니 초번 불침번은 물병장인 홍병장이다. 이 인간 행정반에서 노가리까느라 올 생각이 없다. 나는 그렇게 홍병장을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zzZ zZz Zzz~!
얼마나 잤을까? 등이 너무 뜨겁다. 마치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는 느낌이다~! 무심결에 눈을 떠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05:16분을 가리치고 있었다.
헉~! X됐다~! 안그래도 고장 잘나는 군대보일러를 밤새도록 풀로 돌렸다. 심한경운 보일러가 터지기도 한다. 또한 제일 중요한 기름~! 아직 손병장이 올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기름을 다쓰면 속수무책이다~!. 나는 냉큼 일어나서 보일러로 달려갔다.
휘이잉 휘이잉~!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나의 얼굴을 덮쳤다. 잽싸게 레바를 당겨서 작동을 중지시켰다. 하마터면 과열로 인해 터질뻔 했다. 그럼 난 영창이 아니라 구속됐을지도 몰라~! 그리고 보일러실을 나와서 중대 유류통을 확인해보았다.
●█▀█▄ 기름이 없다~! 어흐흑흑ㅜㅜ 당장 오늘부터 돌릴 기름이 없다~!
한번 추워진 날씨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당직사령은 보일러 가동을 지시하였다. 고참들은 어젯밤 너무 따뜻하게 잘 잤다며, 나에게 수고하였다고 하였다.
'가츠야 오늘도 잘 부탁해~!'
'일병 가츠~!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나는 22시가 되자 어김없이 보일러실로 향했고 돌아가지도 않는 보일러만 멍하니 보다가 다시 내무실로 돌아왔다. 소대원들은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따뜻했던 지난밤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취침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관물대에서 내복을 꺼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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