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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역을 코앞에 두고 겪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7년 1월, 가츠병장에게는 정말 꿈이 현실이 된 시점이다. 고참들은 2007년 1월 24일에 전역하는 나를 두고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며 놀렸다.
'가츠야~! 2007년이 올꺼같냐?'
드디어 왔다~! 난 정말 2006년 12월 31일에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도 무사히 새해가 밝았고, 대망의 2007년이 도래한 것이다. 당시 육군본부의 새로운 휴가지침으로 인해, 말년휴가를 무조건 전역 한달전에 사용하여야 했다. 그전까지만해도 다들 전역날짜에 맞춰서 말년휴가를 나갔는데 말이다. 말년휴가를 복귀하고, 며칠 쉬면서 대기하다가 전역하는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바뀐 규정때문에 나는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12월 31일에 9박 10일의 말년휴가를 나갔다. 열흘후 다시 복귀하였지만, 전역까지는 정확하게 2주가 남았다. 당시 나에게 2주는 2년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소대에서 제일 친한 동기인 박병장은 이미 일주일에 전역하고 민간인 신분이 되어 있었다.
소대장님이 나를 너무 좋아하신 탓일까? 분대장또한 윤병장에게 인계하지 못하게 하셨다. 정말 전역 이틀전에 인계하였다. 고로 말년휴가를 복귀하고도 당직근무 및 교대장에 투입되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복귀 다음날, 분대원들과 식사를 하러가기 위해 취사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나의 시야에 6중대 병장 아저씨가 포착되었다.
한쪽 다리 전체를 통깁스한 병장아저씨가 연병장을 유유히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문득 너무 부러웠다. 내일 당장이라도 외진나가서 다리 깁스 해달라고 할까? 2주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내무실에서 푹쉰다고 누가 머라고 하겠어? 좌측에 보이는 축구골대가 자기를 차달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눈 한번 질끈 감고 힘차게 차면 되는데....
'이야 저 아저씨~! 완전 부럽다~! 윤병장 니 동기 아니냐?'
'하하~! 점마 저거 왜 다친줄 아십니까?'
'오오~! 뭔데? 비결좀 알려줘~!'
'저녀석, 야간에 연대탄약고 교대장근무를 나갔는데 말입니다. 원래 야간에는 영외도로로 해서 투입되지 않습니까? 근데 저녀석 영외도로로 가면 멀기도 하고, 귀찮타고 주간근무처럼 그냥 대대탄약소 뒷산으로 투입하다가 멧돼지 만나서 날라갔지 말입니다~! 살아남은게 천운입니다~!'
'헐~!.. 멧돼지?!'
그랬다~! 강원도 깊은 산 속에 둘러쌓인 우리부대, 항상 간부나 고참들은 멧돼지를 조심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2년동안 군생활하면서 한번도 산 속에서 멧돼지와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멧돼지의 위험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는데, 저기 깁스하고 절뚝거리는 6중대 아저씨를 보니 어느정도 현실로 와닿았다.
'가츠병장님, 오늘 당직이시지 말입니다?'
'으응...'
'말년에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랬는데, 돌진하는 멧돼지를 조심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푸하하~!'
빠직~! ㅡ.ㅡª
'윤병장만 박수치며 군가한다~! 군가 멸공의 횃불~!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넷~♪'
'아나~! 가츠 병장님~! 병장 짬밥에 무슨 군가입니까~!'
'닥치고 군가한다~! 목소리는 원기왕성하게~!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
그날 새벽, 피곤에 지쳐있을 무렵 어김없이 후번 야간근무자들이 행정반으로 들어왔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또 연대탄약고로 가야만 했다. 이미 3번이나 교대시켰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지통실에서 실탄을 지급받은 뒤에 대대탄약고로 후딱 갔다올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뒷산으로 올라가면서 문득 낮에 보았던 6중대 아저씨가 생각났다. 아차~! 멧돼지 만나면 우짜노? 안그래도 겨울이라서 먹을거 없어서 자주 출몰할텐데~! 아나 괜히 이리로 왔나? 그러나 이미 후회하기는 늦었다. 잽싸게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야 천상병~! 만약에 멧돼지 나오면 잽싸게 실탄 장전하고 갈겨버려~!'
'헐~! 그러다가 영창가는 거 아닙니까?'
'야야~! 멧돼지 잡으면 임마~! 포상이야 포상~! 떡하니 잡아가지고 대대장님께 바치는거지~!'
'오오~! 하긴 즉각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하였으니, 게다가 멧돼지 파티까지~! 파티~!'
'바로 그거지~!'
그렇게 나는 이동하면서, 이등병때 교육받은 멧돼지 대처법을 후임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당시 소대장님께서는 산 속에서 멧돼지와 대면하였을때, 대처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만약에 멧돼지가 나오면, 절대 등을 보이며 도망가면 안돼~!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쫄거나 소리쳐도 안돼, 오히려 더 흥분시킨다 말이야~! 조용히 멧돼지 눈을 응시해~!'
'눈싸움을 하는겁니까?'
'그렇치~! 일종의 기싸움이지~! 근데 만약에 돌진해오잖아~! 그럴땐 우산같은걸로 활짝 펼치면 순간 바위인줄 착각하고 딱 멈춘단 말이야~!'
'근데 저희는 우산이 없지 말입니다~! ㅜㅜ'
'그렇치~! 우린 우산이 없잖아~! 그럴땐, 잽싸게 옆으로 이동하면 돼~! 멧돼지는 자존심이 겁나 강해서 돌진만 한단말이야~! 커브따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오호 완전 돌직구인데 말입니다~!'
'그렇치~! 아니면 나무위로 올라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김이병이 한마디 거들었다.
'음 그럼 죽은척하기도 괜찮겠는데 말입니다?'
'음...이 XX 아름다운 색히~! 이게 동화냐? 멧돼지가 곰이냐? 어?! 개념탑재하라고 했지~!'
'이병 김OO~! 죄송합니다~! 어흐흑흑ㅜㅜ'
'야 천상병~! 이따가 근무투입하면 저놈 초소에서 죽은척하기 시켜~!'
'하하~! 알겠습니다~! 죽은척하다가 진짜 얼어죽지 말입니다~! ㅋㅋㅋ'
그순간, 반대쪽 숲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야~~! 튀어~~!'
우리는 교육받은 내용따윈 안중에도 없이, 전속력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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