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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장마로 인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군요. 오늘은 일병때 겪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7월, 무더운 여름이었다. 연신 더위에 지쳐 헉헉 거리고 있었는데, 오후가 되자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일더니, 미친듯이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 군대는 날씨와 궁합이 안맞다. 항상 낮에는 비가 안오더니, 일과시간이 끝나면 비가 왔다.
하지만 군대의 특성상 미친듯이 비가와도, 눈이와도 경계근무는 항상 들어간다. 우리 중대는 대대탄약고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중대 공원에 앉아있으면, 대대탄약소 초소가 바로 코앞에 있다. 항상 벤치에 앉아서 초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저기 초소는 몇십년전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한시도 빠지지 않고 초병이 지키고 있었겠지?'
그렇다~! 군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경계작전이다. 오죽하면 맥아더 장군님이 이런 명언까지 남겨겠는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고로 무슨일이 있어도 항상 군인은 맡은 경계작전을 완수하여야 한다.
비줄기는 점점 거세지더니 곧, 천둥번개까지 동반하였다. 안그래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부대인데, 천둥소리는 5.1채널을 능가하는 서라운드를 자랑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콰쾅~! 쾅쾅~!
일순간 소대가 어두워졌다. 번개가 제대로 전신주를 강타했나보다. 사회였다면 호들갑떨면서 난리법석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군대다. 곧 TV를 보던 고참을 투덜거리며 짜증을 내며 빨리 초를 구해와서 불을 붙이란다. 그순간 중대 당직병이 우리 소대로 뛰어들어왔다.
'우하하 정전이다~! 야 3소대 지금 연대탄약고 근무자 있지?'
'네~!'
'누구야?'
'김상병이랑 김일병입니다~!'
'아나 얘들 번개맞고 죽었나봐~! 무전이 안터져~! 후번근무자들 나갈때, 걔네들 우의도 챙겨서 투입해라~!'
군인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사실 총들고 전쟁하는데 우산이 왠말인가? 사진에서처럼 판초우의라는 것을 착용한다. 하지만 사진은 초A급은 신상제품이고 군인들이 사용하는 것은 이미 갖은 훈련으로 찢기고 너덜너덜한 것이다. 그것도 어느정도의 폭우 앞에서는 입으나 마나이다. 100프로 방수가 안된다.
문득 근무자들이 너무 불쌍했다. 나는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일까? 오늘 마침 비번이다. 우하하하~! 비번~! 이런 폭우속에 근무라니, 그것도 연대탄약고다. 투입하고 복귀하는데만 40분이나 걸어야되는데 말이다. 한번 갔다오면 전투복은 다 젖어버릴테고, 총은 완전 녹슬어 버릴텐데~! 하하~! 난 운이 정말 좋아~!
'야 가츠~! 너 오늘 근무 없냐?'
'일병 가츠~! 네 비번입니다~!'
'아나 이것봐라 좋아하네~! 일병이 이빨 보이게 되어있나?'
하하 맘껏 갈궈라~! 그래도 넌 근무자, 난 비번이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다~! 하하하~! 나는 기쁨을 만끽하며 좋아라 하였다. 이윽고 후번근무자가 투입되었고, 연락이 두절된 김상병과 김일병이 소대로 복귀하였다. 정말 그들은 몰골은 나로하여금 진심으로 거수경례를 하게끔 만들었다.
'이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이야~! 살다살다 코앞에서 번개가 떨어졌어~!'
'흑흑 살아돌아와서 너무 기뻐요~!'
'진짜 뻥안치고, 초소 지붕에 번개 떨어졌다니깐~! 바로 초소 TA-312[군용무전기] 불꽃일어나더니 맛탱이갔당께~!'
'흑흑 초소는 죄다 철로 만들어 놓고.....'
'그래서 초소에서 나와가지고 비 졸딱 맞으면서 밖에 있었잖아~! 에효 내신세야~!'
오오.. 고참들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최악의 근무였다. 다들 측은한듯 얼른 씻고 쉬라고 하였다. 이윽고, 전기는 복구되었고, 곧 점호시간이 되었다. 당직사관은 신속하게 점호를 취해주었고,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며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나는 오늘 비번이기에 풀취침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놓고 푹 잠들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어디선가 내이름이 들린다. 꿈인가? 현실인가? 비몽사몽하고 있는 찰나~! 숨이 막혀온다~! 헉~! 살려줘~!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보니, 불침번인 최상병이 나를 죽일듯한 기세로 째려보고있다.
'아나 완전 빠진 색히~! 몇번을 쳐불러야지 일어나는겨~! 미친거 아냐?'
'일병 가츠~! 죄송합니다~!'
근데 왜 깨운겨? 나 오늘 비번인데~! 저거저거 잘못깨운거 같은데... 아나~! 뭐라고 말도 못하고, 우씨~! 멍하니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야~! 뭐해~! 우기순찰 준비해~!'
'우기순찰말입니까?'
'아나 우기순찰몰라? 아 첨하나? 비오면 대대 배수로랑 취약지역 순찰도는거야~! 빨랑 너거 분대원 깨워서 행정반으로 투입해~!'
그랬다~! 밤에 비가오면 당직사령의 재량으로 우기순찰작전이 시작된다. 주로 분대별로 투입되는데, 대략 1시간 30분정도 순찰을 도는 것이다. 한데 우리 분대 김상병과 심일병은 지금 근무를 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후번 근무자도 우리 분대인 이상병과 김일병이었다. 또한 2개월 고참인 황일병은 후번 불침번이었다.
분대원은 8명이었는데 그중에 근무자는 5명, 결국 가용한 인원이 나랑, 윤이병, 그리고 전역을 3일 남긴 말년병장 박병장뿐이었다.
과연 우리는 무사히 우기순찰를 마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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