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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때 뛰었던 훈련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4월의 마지막주, 가츠군이 이등병 4개월때이다. 날씨는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였고, 숲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이미 첫 훈련인 유격훈련을 무사히 마친 나는 어느정도 군생활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소내에는 나의 첫후임인 송이병과 서이병도 들어왔고, 백일휴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창 훈련시즌이었다. 진지공사를 시작으로 복귀하면 바로 대대ATT까지 잡혀있는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진지공사는 1년에 전반기, 후반기 2차례 뛰는 훈련인데, 자그마치 2주동안 뛴다. 그러나 전술훈련이 아니기 때문에 안면위장도 하지않고, 일과시간도 적용된다.
말그대로, 우리 부대 작전지역에 가서 텐트치고 2주동안 머물면서 진지를 보수하는 것이다. 문제는 작계지역이 매우 멀다는 것이다. 자세한 지명은 밝히지 못하지만, 경기도 가평까지 가야된다. 우리 부대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가는것이냐? 아니다~! 2주동안 머물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바리바리 군장에 때려박고, 오순도순 걸어서 가야된다. 우리는 무적의 알보병이니깐~! 머나먼 여정이 될 것이다.
훈련전날, 2명밖에 없는 후임들과 같이 전투화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첫 후임편에서 낙오를 한차례씩 해주었기에 지대한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였다.
'애들아~!, 전투화 손질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안그럼 비오면 전투화에 물 다들어간다~!'
'이병 송OO! 넵! 확실하게 손질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리고 내일 너희들 첫 행군 하잖아~! 절대 퍼지면 안돼~! 난 똑똑히 목격했어, 우리 황이병님 지난 유격행군때 낙오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끔찍하다... 너희들은 절대 그런일이 반복되게 하면 안돼~!'
정말~! 아무리 꼴통이라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행군중에 낙오하면 정말 답이 안나온다. 다같이 힘든와중에 소대원 한명이라도 퍼지게 되면, 행군 페이스가 늦쳐진다. 흐름이 끊기는 것이다. 그리고 낙오한 병사의 짐은 분대원들이 나눠가진다. 안그래도 힘든데, 예상치 못한 짐까지 떠맡게되면 정말 힘이 쭈욱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항시 체력단련을 중요시 하는것이고, 낙오병이 안생기게 최선을 다해 정신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우를 버리고 갈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나도 당시 체력이 좋지 않아서 항상 낙오 압박감에 시달려 있었다. 후임들까지 들어왔는데, 낙오라도 하면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어흑흐흫구ㅜ
훈련 전날, 점호를 취하고 매트리스에 몸을 뉘였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제발 밤중에 타중대에서 사고가 나기를~! 훈련이 취소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고, 밤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전병력은 대대 사열대 앞으로 모였다. 대대장님의 간략한 훈시가 있었고, 대망의 05년 춘계 진지공사가 시작되었다. 선봉중대인 우리 5중대를 필두로 대대 위병소를 벗어나서 대장정의 행군길에 올랐다.
이등병이었던 나의 군장은 온갖 물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기본 군장물품은 물론이요, 식사배식을 위한 국자와 수저통, 참치캔, 맛다시, 고추장 등 온갖 부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거 군장이 아니라 사람을 한명 업고 가는 기분이었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위병소를 나와 영외도로를 약 500미터걸었는데, 벌써 지쳐온다. ㅋㅋㅋㅋㅋㅋ
갈 길은 수십킬로나 남았고, 오르막 길은 접어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오늘 넘어야 할 난코스는 대략 2군데이다. 해발 989고지를 자랑하는 유격장 고개와 높이를 알 수 없는 도마치고개, 맨몸으로 쉬지않고 걸어가도 일반인들은 금방 낙오할 코스인데, 완전군장으로 가야된다니, 걱정부터 앞선다.
얼마나 갔을까? 선두그룹이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마의 유격장 고개~!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등병들이 울었는가? 마음은 오르고 있는데, 몸은 따라주지 못하는 무자비한 급경사 코스~! 길도 원래는 없었다. 우리 부대원들이 하도 지나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생겼다. 단순한 군인들은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오르지 않고, 오로지 정상을 향해 다이렉트로 올랐다. 오르는 중간 중간 허리까지 오는 바위를 기어 올라야 한다.
'헉헉~! 아나 겁나 빨리 올라가네~!'
'야 가츠~! 뭐해 빨리 안따라붙고~!'
얼마나 올랐을까? 좀처럼 쉬는 시간도 없다. 이대로 정상까지 가나보다. 그래도 지난 유격훈련과 체력단련의 효과인가? 아직 허벅지 마비증상은 오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이 찌릿찌릿하였다. 발뒷굼치부터 머리끝까지 전해오는 근육의 통증은 정말 쾌감이 느껴질정도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저기 보이는 고개가 마지막일까? 젖먹던 힘을 다해 올라가면 다시 새로운 고개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정말 좌절 그 자체였다.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였다. 마지막 한걸음 딛고 정상에 오르는 순간, 나의 허벅지는 찐한 경력이 오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말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찰나, 중대장님의 10분간 휴식~! 무전이 울렸다.
'휴우 살았다~!'
앞서가던 분대장님은 나를 바라보더니, 수고했다면서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어주었고, 그제서야 군장을 벗어던지고는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어제 후임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낙오하지 말라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마터면 내가 먼저 낙오할 뻔 했잖아 ㄷㄷㄷ
정신을 차려 후임들이 동태를 살펴보니, 그들도 제정신이 아닌거 같았다. 이미 유체이탈이 시작된거 같았다. 후훗~! 수통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다시 힘을 추스렸다.
'가츠야 물 많이 마시지마~! 금방 퍼진다~! 수통에 물 반만 담으라고 했잖아~!'
흑.. 당시에는 아직 민간인의 티를 벗지 못하여서 그런지, 조그만 땀이 나도 갈증이 났다. 항상 수통에 물을 충만하게 담고는 연신 벌컥벌컥 마셔되었다. 하지만 물을 많이 마시면, 금방 지치고 퍼지게 된다. 훗날에는 체질이 변해서 왠만하면 물 한모금 먹지 않고, 하루종일 걸을 수 있었지만, 이등병인 나에게는 무리였다. 갈증... 갈증과의 전쟁이었다.
유격장고개를 내려오니, 이번엔 도마치고개라는 큰 산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오늘 행군에서 더이상 오르막길은 없다고 하였다. 그래 저거만 넘으면 된다. 난 넘을 수 있어~! 자기최면을 걸고 다시 도마치고개를 향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오르기 시작했을까? 2분대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2주전 유격복귀행군에서 2개월 고참인 황이병이 낙오한 곳이다. 아니나다를까? 같은 코스, 같은 지점에서 또 쳐지기 시작하였다.
'야 임마~! 이거 진짜 미친거 아냐~! 눈 안떠? 안걸어?'
'이병 황OO, 아닙니다~!'
그러나 고참의 애정어린(?) 관심에도 불구하고, 쳐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2분대장과 부소대장님은 황이병을 따로 데리고 뒤에서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고참의 낙오로 인해 나는 더욱 긴장하였고, 죽기살기로 한발한발 걸어올랐다. 여기서 퍼지면 2주동안 난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지금만 참으면 2주가 편할수 있어~!
'경기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드디어 경기도로 넘어왔다. 도마치고개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들 힘든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먹는 식사라서 그런지 정말 꿀맛같았다. 잽싸게 배식준비를 하고 있는데, 부소대장님 일행이 도착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2분대쪽을 살펴보니 분위기가 살벌하였다.
원래 식사때마다 식수가 보급되어서 수통에 물을 받을 수 있는데, 나는 깜빡하고 수통을 맡기지 않은채로 짬을 버리려 갔다. 그래서 수통에 물을 채우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갈증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대략 25킬로, 태양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뜨거웠다.
보통 군인들은 완전군장상태로 시간당 4-5킬로를 주파한다. 이제 5시간만 더 걸어가면 작계지역에 도착한다. 가는 도중 2-3차례의 휴식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물을 마시고 싶었으나, 이등병의 용기로는 감히 고참에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눈치없는 분대장은 나에게 마이쮸를 건네준다.
'가츠야~! 힘들지? 이거 먹어~!'
'이병 가츠! 감사합니다~!'
아나~! 목말라 죽겠는데~! 물을 달라고요~! 이런거 말고, 이건 먹으면 더 갈증나잖아~! 먹기 싫다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정말~! ㅜㅜ
그렇게 마이쮸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면서 무작정 걸어갔다. 오후 3시 4시 5시, 시간을 흘러흘러, 해는 어느덧 산중턱에 걸리고,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점점 탈수증상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물 한모금만~! 물... 물이 필요해...얼마나 헤롱헤롱 거리며 걸어갔을까? 눈앞에 목적지가 보였다.
오전 8시에 출발한 행군은 오후 6시가 다되어서야 대장정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영지를 구축하여야했다. 이번 훈련은 전술훈련이 아니기 때문에 위장이 용이한 A형텐트가 아닌, 한개 분대원들이 모두 들어가서 잘 수 있는 D형 텐트로 구축하였다.
텐트도 완성하였고, 이제 저녁식사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나의 갈증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고, 분대장에게 큰일을 보러간다고 보고하고, 물을 찾아 떠났다. 숙영지 바로 옆에는 시원한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자마자 나는 이성을 잃었고, 냉큼 달려가서 계곡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하였다.
'하아~! 살것같다~! 너무 달콤해~! 벌컥벌컥~!
그순간, 계곡위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야아~! 가츠~! 무개념 개똘아이~! 왜 계곡물을 퍼마시고 앉아있어~! 어!!!!'
그랬다~! 비록 깨끗한 깊은 산속의 계곡물일지라도, 혹시 탈이 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절대 마시면 안된다고 교육받았다. 그러나 나는 갈증의 유혹을 견딜수 없었고, 신나게 마신 것이다. 그러나 하필, 씻으러 온 분대장에게 딱 걸린 것이다.
그날밤 텐트에서 나는 고참들과 왜 계곡물을 마시면 안되는가?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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