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보기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가 문득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근무에 투입되었을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보통 부대로 신병이 들어오면, 신병 적응을 위해 2주간 근무를 열외시켜준다. 갓 들어온 신병에게는 근무는 정말 병맛일거다. 불침번 근무만 해도 당장 근무시간중에 외곽 근무자들을 깨어야 할 것이고, 후번 근무자도 깨워야 하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아나?
신교대처럼 그냥 교육번호 순서대로 자고있으면 다짜고짜 가서 발로 차던지, 꼬집던지, 물던지 어차피 동기니깐 부담없이 깨울수 있지만, 본인을 제외하고 죄다 고참인 자대에서 행여 잘못 깨우는 순간, 그날밤은 다 잔것이다.
그래, 차라리 불침번 근무는 쉽다. 외곽근무를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선임 근무자보다 신속하게 환복하여 총알같이 행정반으로 이동하여 총기함에서 근무자 총기를 빼고 총기현황판을 최신화해야 된다. 원래 FM은 당직사관 입회하에 당직사관이나 당직병이 직접 총기를 주고, 총기현황판을 최신화시켜야 되지만, 전날 총기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총기현황판 최신화라? 적응하지 못한 이등병들에게 가장 두려운 임무이다. 그날 중대 야간 근무자들의 총기, 포승줄, 대검, 야간투시경이 모두 배치되어 있다. 총기함에 각 총기별로 들어있는 보유수를 넣고 뺄때마다 정확하게 최신화 시켜주어야 되는데, 말처럼 그게 쉽지가 않다. 당장 소대내 고참들 관등성명도 모르는데, 그 고참의 화기까지 알고 있어야 되고, 크게는 타 소대 고참들의 화기까지도 알고 있어야된다.
물론, 어느정도 짬이 차면, 근무편성표만 보고도 총기현황판을 스슥~ 고칠 수 있다. 숫자까지 세아릴 필요도 없이 정확히 말이다. 하지만, 신병들은 하나하나 다 세면서 고치고 고쳐도 당최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당직병이 답답하게 지켜보다가 나의 선임근무자를 갈군다.
'야이 XXXX야! 신병한테 제대로 인수인계 안했어? 못하잖아! 그럼 니가 와서 같이 하던가! 아나!'
결국, 그 타임 근무는 정신없이 갈굼만 받다가 끝나는 것이다. 이건 그나마 양호하다. 자기딴에는 맞다고 고치고 근무를 투입하거나 소대로 복귀하였는데, 그 사이 대대 당직사령이나 연대 당직사령이 순찰와서 총기함을 확인하다가 틀린 것을 확인하는 순간, 당직사관은 다음날 아침상황보고에서 대대장한테 털리고, 중대장한테 털리고, 연병장에서는 줄기차게 군장을 돌고 있는 당직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틀리게 고친 신병의 미래는? 상상하기도 싫다! ㅋㅋㅋ
고로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신병들에게 2주간의 적응기를 주면서 근무를 열외시켜준다. 그동안 부지런히 고참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보직을 확인하여 총기까지 달달 외워야 된다. 그리고 항시 소대의 열외인원과 열외사유를 숙지하고 있어야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순간, 중대 전체의 병력 열외사항 및 총기 현황까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될것이다.
신병 가츠군이 자대 전입 온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우리 3소대는 경계전담주에 걸렸다. 경계전담이란? 말그대로 한 주동안 경계근무가 나가는 것이다. 당시 우리 대대는 연대탄약고, 대대탄약고, 위병소 근무가 있는데 위병소는 8중대가 항상 전담으로 투입되고, 연탄과 대탄을 5,6,7중대가 24시간 근무를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정해진 교육훈련과 작업등이 있으니, 주간에는 한 개 소대가 전담하여 주간에 근무를 투입하는 것이다.
사실, 소대원들은 경계전담주를 좋아라한다. 남들 일과시간에 나가서 작업하고, 교육훈련 받을때, 내무실에서 대기하다가 근무시간에 맞춰서 근무서고 돌아와서 또 대기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는 소대에 휴가자등 열외병력이 많아서 근무팀이 안나온다고 1주일밖에 안된 신병 가츠군도 근무에 전격 투입되었다. 또한 재수없게도그날이 대대에서 사격하는 날이라서 최소한의 근무팀만 놔두고 전원 사격장으로 가야 했기에 찍고빽으로 근무를 서라고 하였다.
그말인즉슨, 1시간 30분 근무서고, 복귀하면 약 30분정도 쉬다가 다시 투입하여 근무를 서야된다. 하루에 5, 6번을 말이다. 그렇게 가츠군은 남들보다 일주일 빠르게 근무에 투입되었고, 그것도 하루에 5번이나 서는 바람에 초반부터 아주 빠삭하게 총기현황판과 친해질 수 있었다.
경계전담 첫날, 소대장님은 소대원들에게 경계전담간의 주의사항 등을 브리핑하셨다.
'이번 경계전담주는 우리 소대에서 주간으로 계속 투입된다. 열외자들이 많아서 신병인 가츠도 예외적으로 투입되니 선임 근무자들은 신병 잘챙겨주고, 특히 야간에는 수화를 확실하게 하고, 제발 좀 FM으로 근무쓰도록! 참고로 저번 주에 1대대에서 야간에 수하불응자한테 경고사격을 하여 연대장님께서 근무자들 포상휴가 보내줬다. 너희들도 확실한 근무기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상!'
그렇게 가츠군은 그날 오전부터 연탄, 대탄을 차례로 번갈아가면서 근무를 투입하였다. 대대 사격하는 날은 대체적으로 간부들도 신경이 날카롭고, 고참들도 짜증나고, 후임들은 이리저리 치여서 힘들고, 대대전체가 무거운 분위기다.
'야 가츠야~ 사격하러 안가서 완전 좋은데! 너 임마! 완전 축복받은거야! PRI제끼고 얼마나 좋아 ㅋㅋ'
사실 나가서 쉴새없이 교육받는거보다 확실히 편하긴 했다. 그냥 총들고 서있으면 되는 것이고, 친절한 이상병님에게 P-96K, TA-312 사용법을 교육받고, 이것저것 노가리까면서 재미나게 보냈다. 그리고 고참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다. 평소에는 막내에게 대화를 걸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막내가 고참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물론, 괴롭히기도 하겠지만 절대로 죽이지는 않는다! 그냥 같이 놀아라~! 그러다보면 친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가 떨어지고 각 중대별로 사격인원들도 복귀하였다. 이제 가츠군은 중대막사 바로 옆에 위치한 대대탄약고에서 마지막 근무를 서고 있었다. 후번 근무자는 사격을 복귀하고 돌아온, 3분대 김상병과 최일병이었다.
이미 수차례 수하를 경험한 가츠는 신속하게 수하를 마치고, 근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교대장은 근무일지를 점검하고 있었고, 이상병은 김상병에게 인수인계를, 나는 최일병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찰나, 초소 뒷쪽에 야간 사격장으로 올라가는 쪽문이 있다. 그곳에서 한무리의 병력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최일병은 잽싸게 나에게 전방을 감시하라고 하고는 의욕적으로 쪽문으로 가서 수하를 하였다.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화랑! 화랑! '
'아저씨 7중대 15명 야간사격 복귀요!'
'화랑! 화랑!'
'아저씨! 우리 7중대라고요! 사격갔다오느라 암구호를 ...'
탕~!!!!!!!!!!!!!
이거 뭔가요~! 어둠에 휩싸인 대대의 정적을 깨는 한 발의 공포탄 소리!
중대막사에서는 중대원들이 뛰쳐나왔고, 96K에서는 다급한 당직사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대탄! 무슨일이야? 어? 뭐야?'
할말을 잃고 멍하니 서있는 우리 교대장과 이상병, 김상병모습이 보였고 뒷쪽으로는 7중대 아저씨들에게 회심의 공포탄을 쏜 후, 의기양양하고 있는 최일병이 보였다.
고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이 XXX야! 이런 XX같은 놈아! 개념은 밥 말아먹은 색히야! 그래 니가 밖에 나가고싶은 모양이구나!
내손으로 전역시켜주마!'
그렇게 신병 가츠의 첫 근무는 최일병을 갈구고있는 교대장, 쪽문을 열어주고 있는 이상병,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당직사령을 배경으로 훈훈하게 클로즈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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