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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가 사는 동네는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육박하더군요. 가만히 집에서 뒹굴거리기만해도 땀이 나더군요. 어느덧 여름이 코 앞으로 다가온거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름의 문턱에서 겨울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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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R 2BN 연병장 >
군인에게 겨울은 정말 가장 힘든 시절이 아닐까싶다. 온몸을 엄습해오는 송곳같은 추위속에서도 새벽에 지친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서 외곽근무를 나가야된다. 곰이 추운 겨울, 겨울잠을 한창 자고 있을때도, 군인들은 산 속을 누비며 뛰어다니고, 그 곳에서 텐트를 치며 숙영을 한다.
가츠가 군입대전 하얼빈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얼빈의 위치는 쉽게 설명해서 한반도의 북단에 위치한 백두산에서 기차타고 북쪽으로 12시간을 달리면 나온다. 매우 추운 곳이다. 그렇지만 나는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의 추위가 훨씬 더 매섭다는 것을,...
가츠가 102보충대에서 27사단 신병교육대로 배치받고 제일 처음 받은 교육이 제설작업이다. 아침부터 조교들이 신병들을 불러내서는 낯선 제설작업 도구들을 주면서 온천지에 덮힌 눈을 치우라고 하였다. 연병장, 영외도로, 대대CP등 종일 눈만 치웠다. 당시 설날을 낀 5주간의 훈련소 기간중 교육없이 눈만 치운 날이 열흘 정도는 될 것같다. 당시 조교는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교육생들! 훈련소에서 사격잘하고, 각개전투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설작업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자대가서 제설작업만 잘해도 고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자대가서 고생하지말고 훈련소 기간에 제설작업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마스터하고 가도록 합니다!'
제설작업? 그게 머 마스터까지 할만한 스킬이 필요한가? 그냥 눈만 치우면 되는 것을... 글쎄~ 사실 제설작업에 왠만한 군생활 작업 스킬이 다 스며들어있다. 삽질,빗질,곡팽이질,단가질,지구력,눈치보기,추위와의 싸움 등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영외도로에서는 주로 3명에서 5명이 대비를 들고 △ 진형을 유지하며 치고나간다. 신교대에서 조교들에게 제설작업을 미리 전수받은 가츠는 자대에서 제설작업때마다 고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이등병 시절에는 제설작업하는 날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힘든 아침구보도 뛰지않고, 그냥 묵묵히 눈만 치우면 되니깐 말이다. 고참들도 눈만 열심히 치우고 있는 후임들을 딱히 나쁘게 보지 않는다. 또한 고참들과 같이 눈을 퍼 옮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 물론 점점 밥이 되면 될수록 귀찮아지고 싫어졌지만 말이다.
자대배치 받고 며칠 후 바로 윗 고참이었던 심이병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야 가츠! 너 운 졸라 좋네~! 우리중대 저번주에 화악산폭설때문에 도로 통제되었다고, 제설 작업 갔는데 진짜 죽을 뻔했다. 내 인생의 최악의 날이었다! 흑흐그ㅎㅜㅜ'
관련 사진이 있나 찾아봤는데, 한 블로거님께서 이렇게 적절한 사진을 올려주셨길래 퍼왔다. 바로 저 곳이다! ㅋㅋ
그렇게 자대배치 받고 몇일 후 보란듯이 하늘에서는 위풍당당하게 악마의 X가루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불침번은 기상시간도 아닌데 소대원들을 깨우기 시작하였다.
'기상하십시오! 기상하십시오! 금일 폭설로 인해 조기 기상입니다. 05시 30분까지 제설작업도구 챙겨서 중대사열대로 집합하시랍니다!'
이윽고 고참들은 투덜거리며, 저주받은 강원도를 연신 외쳤고, 후임들은 잽싸게 중대 뒤 창고로 가서 제설작업 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당직사관의 지휘를 받으며 소대별로 영외도로, 연병장, 대대주차장 등으로 흩어져서 제설작업을 시작하였다.
우리 소대는 연병장을 배정받아서 연병장으로 작업도구를 들고 이동하였다. 막내 가츠는 신교대에서처럼 빛나는 삽질로 고참들의 사랑을 듬뿍받아야겠다고 다짐하였고 보란듯이 녹색눈삽을 들고 당당하게 삽집을 할려는 찰나!
'이야~ 우리 막내는 눈삽들었네~! 이야~! 막내가 눈삽들고 눈퍼주면 우리는 포대에 눈 담아서 버리려가면 되는구나~! 막내님~! 눈퍼주세요~! 사랑하시는만큼 왕창 퍼주세요~!'
헉! 그랬다. 빛나는 눈삽은 빛나는 고참들의 전유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주위 일병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이 나에게 박히고 있었다. 잽싸게 눈삽을 김상병에게 드리고, 쌀포대를 들었다. 그날 가츠는 고참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진정으로 알 수있었다. 너무 사랑받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흑흑...
사진에서처럼 뭔가 신기해보이는 작업도구들은 들지마라. 그냥 밥안될때는 살포시 포대나 단가를 들기 바란다. 단가는 사실 일본어의 단까(たんか)라는 어원인데 군대에서는 아직 들 것이라고 하지않고 단가라고 쓰고 있다. 나무막대기 2개에 폐포대를 끼어서 만드는 들 것이다. 단가의 위력은 덤프트럭을 능가한다. 못 옮기는게 없다! ㅋㅋㅋ
앗!!! TV에서 우리의 지성이형이 챔스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잠깐만 20초만 응원하고~!
지성 파래이~! 고오올~! 맨유팬들이 불러주는 지성 공식 응원가 개고기송이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니 흥분하지 마시고 같이 응원하시길~!
지성이형도 이 응원가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하네요~!
비하하는 것이 아니니 흥분하지 마시고 같이 응원하시길~!
지성이형도 이 응원가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하네요~!
그렇게 제설작업은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으며, 눈만 오면 이루어진다. 상병시절 2달간 화악산 중봉에 경계파견 나갔는데, 어제처럼 어린이날인 5월 5일이었다. 그러나 보란듯이 1450고지의 화악산 정상에서는 미친듯이 폭설이 내렸고, 어린이날 우리 소대는 1450고지 정상에서 중간 거점까지 내려오면서 미친듯이 눈을 치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작업인가!'
많은 이들은 외친다. 종일 치우고나면, 내일 또 더 많이 퍼붓는데, 또 치우면, 그 다음날 또 내리고, 끝없는 단순 노동의 끝이 뭔지 보여주는 제설작업. 왜 하는걸까?
사실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속에서 항시 군인들은 보급로와 작전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비하여야 된다. 전쟁났는데 눈때문에 고립되면 곤란하니깐 말이다. 그말은 들은 나는 문득, 그럼 북한군은 제설작업하면서 쳐들어 오냐! 어!
실상은 아침에 연대장님이나 대대장님의 안전한 출근로 확보이다. 신과 같으신 연대장님께서 출근하시는데 도로가 미끄럽다고 생각해봐라. 군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겨울 군번인 가츠 군생활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제설작업이었다. 전역 당일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눈이 내렸고, 당직병은 나에게 말했다.
'어이~ 가츠아저씨~! 마지막으로 눈한번 쓸고 가야지~! 이제 나가면 눈 쓸 일 있겠어? 눈만 보면 몸이 근질근질할텐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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