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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94년, 나는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5학년때이다. 이미 3학년때부터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베이직을 마스터하고 나름 컴퓨터의 선두주자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친구들과 학원에 남아서 신나게 고인돌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컴퓨터를 장만하셨다. 당시 돈으로 200만원넘게 주시고 구입하셨으니 정말 값비싼 물건이었다. 아마 그당시 집에 있는 가전제품중에 단연 최고가의 몸값을 자랑했다. 아버지는 막 컴퓨터에 입문하신 상태였고, 당연히 컴퓨터의 나의 전유물이 되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당시 컴퓨터의 사양은 대략 이정도였다.
CPU : 486DX2 66MHz
RAM : 8MB
HDD : 240MB
FDD : 5.25" 3.5"
94년 당시 최신기종의 사양이었다. 윈도우즈 3.1이 깔려있었지만 지금처럼 전원을 켜면 바로 윈도우로 부팅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DOS로 부팅하여 다시 윈도우를 실행해야 윈도우가 실행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윈도우로 할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기에 주로 도스만 사용하였다. MDIR를 이용하여 자유자재로 디렉토리를 이동하면서 신나게 도스게임들을 실행시켰다. 고인돌, 하드볼, 페르시아왕자, 폭스, 모탈컴뱃, 폭소피구, 금광을 찾아서, 남북전쟁등 이름만 들어도 떨리지 않는가?
당시 집에 컴퓨터가 있는 친구들이 드물었다. 마침 우리반에 이군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군의 아버지가 컴퓨터관련업계에 종사하셔서 그녀석 집은 보물창고였다. 나는 6학년이 되어서야 PC통신에 입문하였는데, 그녀석은 벌써 천리안과 나우누리를 오가며 각종 최신 게임들을 다운받아서 즐기고 있었다.
'야 가츠야~! 너 컴퓨터 샀다며?'
'응~! 완전 좋아~! 날아갈것 같애~!'
'호오, 그럼 오늘 마치고 우리집에 가자 재밌는거 복사해줄께~!'
'우와 진짜~! 이군 최고~!'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이군과 함께 분식점으로 가서, 거금 300원을 주고 핫도그를 사주었다. 핫도그로 우정을 돈독히한 나는 이군의 집으로 들어갔다. 가자마자 컴퓨터를 부팅한 이군은 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정말 그녀석의 컴퓨터에는 최신게임들로 가득하였다.
'우와 짱이다~! 이거 새로나온 삼국지 무장쟁패잖아~!'
'응~! 이거 완전 재밌어~! 이거 복사해줄께~!'
'이군, 넌 진짜 진정한 나의 친구다~!'
그렇게 이군은 나를 위해 삼국지 무장쟁패를 압축하기 시작하였고, 연신 디스켓에 복사하였다. 그러던 와중, 이군은 갑자기 거실을 확인하더니 방문을 잠궜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야 갑자기 문은 왜 잠궈?'
'가츠야~! 너 이런거 본적없지? 형님께서 어제 천리안에서 WWW라는 곳에 들어가서 구해온게 있어~!'
'오홍? WWW 그게 머야?'
'이런 무식한 녀석~! 월드와이드웹을 몰라? 쯧쯧 멀었군~! 암튼 봐봐~!'
그랬다. 당시에는 인터넷을 사용하기위해서는 PC통신을 이용해서 유료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 사이트도 몇군데 없었고, 굳이 할만한게 없었다. 단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영문 성인사이트~! 성인사이트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금발여인들이 전라의 나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눈에는 신세계였다. 아마 당시 컴퓨터를 하지않는 성인들 또한 볼 수 없는 자료들이다. 그만큼 그때는 지금처럼 성인물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오오!!! 저 누나봐~! 우와~! 신기하다~! 쩐다~!'
'음.. 저렇게 생겼구나 @.@'
그렇게 가츠는 이군의 도움으로 난생처음 벗은 여자의 사진을 보았다. 그순간 이군은 정말 대단한 존재같아 보였다. 이녀석은 한국사람이 아닌가봐~! 어떻게 이런걸 구할 수 있는거지? 나는 곧 이군에게 이것도 복사해달라고 졸랐다~!
'아나 ㅋㅋ 이런건 원래 혼자만 간직하는건데~!'
'아까 핫도그 사줬잖아~! 이것도 복사해줘~! ㅜㅜ'
'쳇~! 알았어~! 근데 디스켓이 보자... 없는데... 저기에 복사하면 되겠다~!'
이군은 먼지가 수북히 쌓인 디스켓을 한장 구해와서는 므흣한 사진을 복사해주었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는 게임보다도 사진이 훨씬 소중해졌다. 마치 보물을 얻은거 마냥 신나서 디스켓을 가슴에 꼭 안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컴퓨터를 부팅하고는 게임과 사진을 내 컴퓨터에 복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열심히 보았다. 보고 또봐도 신기하였다. 사진을 보면서는 나는 이제 매일 이군집에 놀러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사진은 혹시나 아버지한테 걸릴까봐 게임과 함께 폴더안에 또 폴더를 만들고 또 폴더를 만들고 계속 만들어서 꼭꼭 숨겨놓았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문서작업을 하셔야된다면 컴퓨터를 부팅하였는데, 부팅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정말 신기한데, 꼭 내가 마지막으로 할때는 잘되는 것이, 다음 사람이 하면 고장이 난다. 그리고 항상 내가 범인으로 몰린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범인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아버지는 컴퓨터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곧 엔지니어 아저씨가 집으로 방문하였다. 그리고는 모든것을 고쳐주는 만능디스켓을 넣고는 부팅하였다. 역시나 된다. 그리고 아저씨는 당시 한국의 유일한 백신인 V3를 가동시키고는 바이러스 체크를 하였다.
뚜뚜뚜뚜.....
얼마나 했을까? 바이러스가 무더기로 검색되기 시작하였다. 아저씨는 연신 모니터를 보시더니 고개를 가웃거리신다.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위치가 신기해서인가보다. 하긴 내가 폴더를 참 많이 만들어서 깊숙히 넣어두었지 ㅋㅋㅋㅋ
'이거 새 컴퓨터인데 어디가 문제인겁니까?'
'네 선생님, 이게 바이러스가 걸린거 같은데.. 최근에 뭐 설치하신 거 있습니까?'
'글쎄요, 저는 딱히 안해서 주로 아들녀석이 하는데...'
'그래요.. 치료는 다했습니다. 근데 바이러스 위치가 독특하네.. 한번 확인해볼까요?'
헐... 아저씨~! 치료를 마쳤으면 곱게 집에 가실 것이지... 왜 남의 사생활을 확인할려고 하는 거예요~! 그르지마라요 ㅜㅜ 나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심장도 두근두근~!, 심장박동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저씨는 연신 폴더를 찾아들어가더니 결국 숨겨놓은 게임과 사진을 발견하였다.
모니터 화면에는 성인이 보기에도 민망한 사진들이 선명하게 출력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입이 쩌억 벌어지셨다. 알고보니 사진을 담은 디스켓에 바이러스가 숨겨져있었는데, 통째로 복사하면서 컴퓨터에도 전염이 된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걸어잠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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