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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병장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8월, 분대장이 된 지도 3개월차에 접어 들 무렵이었다. 분대장이 되면 일개 병사로서는 최고의 권력을 누릴 수 있다. 내무실의 제왕인 것이다. 그러나 마냥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장이라는 위치는 항상 무거운 책임감이 수반된다. 2분대장인 나에게는 6명의 분대원이 있다. 부분대장인 윤상병을 비롯하여 막내인 김이병까지 그들의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
매일 저녁점호를 하기전 분대결산시간이 되면, 나는 분대원들에게 한가지만 신신당부하였다. 본인으로 하여금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 철저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군인들이기에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차려를 받거나 갈굼을 받을 때가 비일비재하였다.
"오늘 특이사항?"
"없습니다아!"
"김이병! 오늘 누가 너한테 욕하거나 때리거나 더듬거나 한 적 없어?"
"이병 김OO! 없습니다아!"
"오늘밤 나를 제거하거나 몰래 부대 밖으로 나갈 계획은 차질없이 준비하고 있는가?"
"..........."
분대결산시간이 되면 분대원들의 얼굴을 일일히 확인하며 특이사항을 확인한다. 혹시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은지? 신변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분대장 수첩에 기록을 하였다. 분대장이라면 항상 안 보는척 하면서 열심히 분대원들을 관찰하는 편이지만, 특히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주로 막내를 위주로 대화를 한다. 어차피 일병급 이상은 어느정도 적응하였기에, 크게 염려하지 않지만 이등병들은 아직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관리하여야 하였다. 막내와 상담을 하는 도중, 옆에 있던 정일병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내심 모르는 척 하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저 눈빛 낯설지 않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본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결산을 마치고, 윤상병을 조용히 따로 불렀다. 그리고는 정일병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윤상병도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각별히 정일병을 잘 지켜보라고 지시하였고, 나는 좀더 관심을 가지기로 하였다. 정일병은 나보다 일년 늦게 입대한 아들군번이었다. 전입 초창기때는 아들! 아들! 하면서 잘 대해주었는데, 한달 전 일병이 된 뒤로는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항상 고참들의 포커스는 이등병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체구, 내성적인 성격의 정일병이었다. 그러고보니, 분대장 인수인계를 할 당시에도 고참이 나에게 주의를 주었던 기억이 났다. 정일병은 마음이 여리고, 조용한 성격이라 도통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확실히 정일병은 평소와 다르게 하루종일 표정이 어두웠고, 무기력해보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이상징후을 보자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행여 사고라도 치면 분대장인 나부터 헌병대로 끌려갈테니 말이다. 급우울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냥 직접 붙잡고 물어볼까? 내성적인 녀석이라서 순순히 이야기 하지 않을텐데, 괜히 별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떠는 것일 수도 있고, 하아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연신 애타는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가츠야 왜 울고 있어?"
"나 너무너무 불안해! 이제 병장달고 집에 갈 날이 좀 보이나 했더니 어흐흑흑ㅜㅜ"
"왜 뭔데? 총이라도 잃어버렸어?"
"그건 아니고 분대원 하나가 어째 심상치 않아!"
"뭐야! 화장실로 끌고가서 화끈하게 물고문 한판 고고! 모든걸 다 불게 되어 있어!"
"아나 꺼져! 무슨 쌍팔년대도 아니고! 난 진지하다구!"
"그럼 PX가서 맛있거라도 듬뿍 사주든가!"
옆소대 동기가 울고있는 나에게 다가와 놀리고 있었다. 순간, 멀리서 윤상병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확실한 정보를 입수한 게 틀림없었다. 윤상병은 내 앞에 서더니 한껏 거만한 포즈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녀석은 좀만 잘해주면 기어오를려고 하는게 문제다.
나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눈높이를 맞추라고 하였다. 이내 분위기 파악을 판 윤상병은 조신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는 나에게 보고하였다.
"가츠병장님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확...확실한 정보겠지?"
"장사 하루 이틀 하십니까? 저 스파이 윤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
"정일병녀석! 사귀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랬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어제 본 그녀석의 낯설지 않은 눈빛! 그건 바로 1년전의 나의 눈빛이었다. 갑작스런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인해 하루하루가 무의미하였고, 공허하였던 바로 내 모습이었다. 정일병도 당시 나와 같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 낙천적이고, 쾌활하였던 나마저도 소대원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내성적인 성격의 정일병이라면 당장 무슨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나는 관물대로 가서 분대장 관찰일지를 꺼내서는 정일병의 기록을 다시 훑어 보았다. 그에게는 고등학교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아마 그의 첫사랑이겠지?
물론, 사회에서도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헤어질 수 있다. 다만 군대에서 그 빈도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입대 전에 미리 정리하고 오는 이들, 군생활 중에 헤어지는 이들, 전역하고 헤어지는 이들까지 끝까지 가는 커플을 보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만큼 2년이란 시간은 서로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다.
남자는 2년동안 모든 사회생활이 올스톱 되어 버리지만, 사회에 있는 여자는 그렇지 않다. 학업을 계속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며 그녀들의 삶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현실은 현실이다. 떨어져 있는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장애물이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을 것이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군대에서는 수많은 첫사랑이 아쉬움을 남긴 채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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