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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병장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11월, 군생활의 끝이 보이는 시점이다.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 왔을때, 눈에 보이는 군인은 죄다 무시무시한 고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죄다 귀여운 후임들이다. 중대에 고참이라고는 고작 4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다들 시체놀이에 열중하는 나머지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희망찬 새해가 오면 나는 집에 간다!"
"내년이 올거 같냐? 안와 임마!"
좀비처럼 쓰러져 있던, 심병장이 나를 보며 놀리고 있다. 그는 며칠 후, 말년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휴가를 복귀하면 바로 전역이다. 밥이 안될 때는 몰랐는데, 말년 때 한 달이란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가츠야!"
"아 왜!"
"크리스마스때 교회가서 기도하렴! 새해가 오게 해달라고! 앜ㅋㅋㅋㅋㅋ"
"..........."
비참한 현실이다. 후임들을 나를 우러러보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당장 며칠 후 말년휴가를 떠나는 심병장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괜히 잘 놀고 있는 윤병장에게 다가가서 헤드락을 걸었다. 고참에게 당한 거는 후임에게 풀어야 제격이다.
"야 깐돌이! 노올자!"
"아 저 병장입니다! 이제 이러시면 곤란하지 말입니다!"
"음... 미안하구나 윤병장! 내가 실수한 거 같다! 너무 느슨하게 걸었구나! 말을 할 수 있다니! 죽어! 죽어!"
"커헉!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그렇게 후임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오전 일과, 요즘 같이 추운 날은 내무실 밖에 나가 있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다. 나는 최대한 내무실을 벗어나지 않는 작업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좀처럼 입맛에 맞는 작업이 없었다.
중대 사열대 앞에 모여있는 우리들 앞에 행보관이 나타났다. 금일 예정된 작업을 브리핑하며 적재적소에 병력들을 투입시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야외에서 하는 힘든 작업들이었다. 그러던 찰나, 행정반에서 계원이 나오더니 훈련 상황판을 만들어야 된다며 소대별로 1명씩 빼달라고 하였다.
상황판이라? 그까이거 대충~! 종이 자르고, 지도 붙이고, 절연테이프로 감아주면 완성되는 초 널널한 작업이 아닌가? 게다가 따뜻한 내무실에서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있게 손을 들고는 외쳤다.
"병장 가츠! 상황판 자신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안돼!"
"제 2년 군생활의 혼을 담아 만들겠습니다! 삼한지세를 능가하는 작품이 나올 겁니다!"
"내 20년 군생활이 너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구나!"
"저의 상황판이옵니다! 제 것이오! 제가 아닌 그 누구도 그 상황판을 만들 순 없습니다!"
"정말 안될 놈이구나! 네 놈은 상황판을 만들 자격이 없다!"
"자격? 그 자격! 그런건 행보관님께서 만들어 주셨어야죠? 가르치는게 행보관님 아닙니까?"
"군인이 농땡이 피우면 안된다는 걸 가르쳐야 한단 말이냐? 비켜서거라!"
"싫습니다!"
"비켜서어!"
늘 행보관은 이런식이었다. 분명히 우리들의 어머니같은 존재로서 항상 최일선에서 우리들을 지켜주지만, 말년병장들을 좀처럼 쉬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수십년간의 군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짱박혀있든 귀신같이 찾아내어 일거리를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티격태격거리고 있는데, 아침상황보고를 마친 중대장이 지휘통제실에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전병력 내무실에서 대기하라고 하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내무실에서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곧 소대장과 부소대장이 들어오더니 전원 개인 관물대와 장구류, 총기를 꺼내고는 실탄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하였다. 갑자기 생뚱맞게 무슨 실탄 타령인가?
"지난 밤, 지휘통제실에서 경계근무용 실탄 한 발이 사라졌다. 지난 밤 연대탄약고에 투입 된 우리 중대와 대대탄약고에 투입 된 6중대 그리고 위병소 근무를 나간 8중대가 모두 용의자다! 철저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원래 근무 투입, 복귀시 지위통제실 앞에서 당직사령과 대대부관, 교대장을 통해서 철저하게 실탄 확인을 하기 때문에 설사 잃어버려도 즉시 확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필시 지난밤 어리버리한 간부와 병사들의 합작품임에 틀림없다. 아님 모두 배째라 근무를 섰나 보다.
군대에서 실탄 한 발의 의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총은 항상 내무실에 비치하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발포할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도 있고, 평소 싫어하던 고참을 쏠 수도 있다. 바야흐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암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심병장! 전역기념으로 하나 챙긴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어제 교대장 나갔잖아!"
"왜이래! 떨어진 낙엽도 안 밟고 다니고 있는데!
"아 이상하네! 진짜 누가 가져간거지?"
"그냥 잃어버린거 아냐?"
그렇게 우리는 오전내내 이잡듯이 실탄수색에 전념하였다. 내무실은 물론, 근무로, 근무지까지 전병력이 동원되어 찾고 또 찾았다. 이미 모든 부대일정은 정지되었고, 오로지 실탄을 찾아오라는 대대장의 특명만이 유효하였다. 물론 간부들도 사고방지나 상부보고에 대한 압박감 등으로 반드시 찾고 싶겠지만, 정작 제일 찾고 싶은 당사자들은 우리였다.
추운 겨울, 사방팔방을 내달리며 조그만한 실탄을 찾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점심시간이 다되었는데도 찾지 못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오니 야외강의장으로 집합하라는 전파가 왔다. 그곳에는 대대 전간부를 비롯하여 대대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어지는 대대장의 정신교육, 평소 병사들의 기본권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시는 대대장님은 행여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여 우리들에게 연신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진 한마디!
"찾는 인원은 포상휴가증을 주마!"
포...포상휴가라니! 일순간, 우리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하였다. 오전까지 어쩔 수 없이 투덜거리며 찾던 우리들은 다들 수색견이 된 거 마냥, 의욕적으로 실탄을 찾기위해 뛰쳐나갔다. 이미 부사관들은 지뢰탐지기를 동원하여 수색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에 질세랴 더 열심히 수색하였다.
"유해발굴을 했으면 벌써 수십구는 찾았을거야!"
당시 군대에서는 한국전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한창이었다. 우리 옆 대대에서도 발굴사업에 투입되었다. 지금처럼만 찾는다면, 모조리 찾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못 찾을 거 같았다. 전 병력이 투입되어 이렇게 열심히 수색하였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잃어버린 게 아닌거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가져간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시간은 저녁시간이 다 되었지만, 수색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면, 야외에서의 수색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미 수차례 수색하였지만, 해가 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병장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 진짜 못해먹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한 발 꼬불쳐둘걸!"
"그러니깐! 포상휴가도 가고 얼마나 좋아!"
"간부들은 비상용으로 챙겨놓은 거 있을텐데!"
이제는 얼굴, 손, 발이 꽁꽁 얼었고, 허리마저 끊어질 거 같았다. 진짜 돈주고 살 수만 있다면 내 돈 주고서라도 당장 구입해서 메꾸고 싶었다. 분위기를 보아서는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 같았다. 잠깐 쉴려고 연병장에 주저 앉았는데, 보이지 않던 행보관이 귀신처럼 나타나서는 구박하였다.
"가츠 이거이거 또 농땡이 핀다! 잘 좀 찾아봐! 분명히 연병장에 있을거야!"
"........."
좀전까지만 해도 안보이시더니, 그새 나타나서 갈구다니! 정말 존경스럽다! 연병장에 있기는 개뿔이 있어! 차라리 연병장에 있는 모래 갯수를 세는게 더 현실적일 거 같았다. 나는 투덜거리며 다시 일어나서 찾는 시늉을 하였다.
그순간, 뒤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찾...찾았다아!!!!!"
8중대 병사 한명이 높이 손을 치켜들고는 연병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손에는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실탄이 들려 있었다. 우리들은 그 병사를 중심으로 회오리처럼 몰려들어 기뻐하였다. 500여명의 대대원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연병장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멋진 장관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8중대 병사는 실탄을 꼭 쥐고는 지휘통제실에 있는 대대장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워하였다. 분명히 그가 찾은 위치는 이미 수십번은 더 수색한 곳인데,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다. 어쨌든 찾았으니 다행이다. 우리들은 모두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따뜻한 내무실로 복귀하였다.
순간, 나의 시야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서있는 행보관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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