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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자기 이름만 쓸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냐?"
이랬던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하얼빈에 위치한 대학으로 진학을 하였다. 지난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창시절, 한문수업을 제대로 임한 적이 없었다. 늘 한자는 나에게 미지의 언어였다. 上편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먼저 보고 오시면 한결 쉽게 이해가 되실 것이다.
2010/04/27 - [가츠의 옛날이야기] - 가츠의 옛날이야기, 중간고사 上편
"아들! 엄마가 학습지도 시켜줬잖아! 곧 잘하드만!"
"그 때는 선생님이 예뻤잖아!"
"죽어! 죽어!"
어렸을 때, 잠깐 배운 학습지가 전부였다. 그 뒤로는 도통 한자를 공부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기초한자가 전부였다. 여기서 기초란 숫자 1부터 10, 월화수목금토일, 더도 말도 딱 여기까지였다. 그런 내가 중국 본토로 가게 된 것이다. 중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중국어라고는 고작 니하오, 쎄쎄가 전부였다.
"고대문서를 접한 기분이야!"
난생 처음보는 한자들이 나로 하여금 정신줄을 놓게 만들었다. 게다가 중국어는 성조라는 것이 있다. 같은 발음이라도 →(1성) ↗(2성) v (3성) ↘(4성)처럼 4가지 발음법에 따라 뜻이 천차만별이었다. 발음하기도 어렵고, 헷갈리는 성조는 당최 왜 있는 걸까?
중국어는 한글과 영어와는 달리 표의문자이다. 글자 하나 하나에 뜻이 있기 때문에 알아야 할 한자가 수천개나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들도 정확히 모든 글자를 알지 못한다. 그나마 일상생활에 자주 사용하는 한자가 이 정도인 것이다. 만약 성조가 없다면 글로 쓰는거야 별 상관은 없겠지만, 대화를 할 때는 정확한 의미 전달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어어... 음... 저거! 이거! 이거! 주세요!"
기숙사에 있는 매점에 가서도 온갖 손짓을 다해가며 물건을 구입하여야만 하였다. 때로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구입할 때가 많았다.
중국의 학업과정은 9월부터 신학기가 시작된다. 그렇기에 3월에 간 나는 6개월간 어학연수를 받으며 어느정도 중국어를 익힌 다음, 9월에 정식으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고로 처음 6개월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미리 기본을 쌓아야지만 정규수업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두려움도 잠시, 곧 선배, 동기들과 급격하게 친해지며 중국어는 뒤로하고 중국 문화부터 배워나갔다. 평소에는 운동도 죽어라 안하면서 중국에서는 축구부를 시작으로 농구부, 볼링부 등 닥치는 대로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매일밤 불타는 젊음을 거리에서 마음껏 발산하였다.
"무슨 체대에 온 기분이야!"
사진은 우리 학교의 자랑인 체육관이다. 이 곳에서 굵직굵직한 대회가 많이 열렸다. 기억나는 대회로는 아시안 농구게임, 당시 야오밍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국가대표를 모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보니, 어느새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연수생들 또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봐야지만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본과로 들어가면 출석일수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학교를 잘 나가야 하지만, 입학 전, 연수생이었던 나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 출석을 결정하곤 하였다.
"오랫만에 보는 빈칸 채워 넣기!"
중국어를 처음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시험은 주로 빈칸 채워 넣기 같이 매우 간단하였다. 그나마 어려운 부분이 문장 만들기였다. 하지만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고, 마냥 놀기만 하였던 나에게는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이거는 컨닝으로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시험 당일, 교실에 들어가서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교수님이 들어오시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러더니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놀라시는 게 아닌가?
"뭐...뭐지?"
"가츠! 한국 간 거 아니었어? 그동안 어디있었어!"
"..........."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시험지를 받고는 문제를 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정말 쉬운 난이도였기때문에 그럭저럭 풀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풀고 있는데, 객관식 문제가 나왔다.
"헐! 보기는 알겠는데! 문제가 해석이 안돼!"
객관식 보기에 나와있는 단어들은 기초적인 단어라서 쉽게 뜻을 알 수 있었는데, 정작 문제가 무엇을 설명하는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이 얼마나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물론 전부 중국어로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게 현실로 닥치니 정말 난감하였다. 그렇다고 교수님께 문제 해석이 안된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제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공부를 안하면 문제를 못 푸는게 아니라 아예 못 읽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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