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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번째 이야기네요. 지난 이야기가 블로거뉴스 베스트가 되는 바람에 많은 분들께서 방문해주셨네요. 제가 병장때 저희 중대에 병체험실습 오신 장교님도 글을 보시고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네요. 또한 많은 분들께서 자신 부대만의 폭풍구보를 소개 해주셨고요. 자그마치 88년 군번이신 이기자 선배님도 오셔서 우측에 보이는 채팅창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오랫만에 그 시절을 회상 할 수 있고, 아직 안 가신 분들이라면 이런 분위기구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오늘도 가츠군은 세번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오랫만에 그 시절을 회상 할 수 있고, 아직 안 가신 분들이라면 이런 분위기구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오늘도 가츠군은 세번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가츠는 05년 1월 군번이다. 당시부터 군대의 내무생활은 거의 혁명수준의 개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입대 불과 몇주 전, 논산훈련소 인분사건이 전국적 이슈를 연일 보도되었고, 당시 우리 연대에서만 잇달아 일어난 자살 사건때문에 그 중 한건은 전파를 타고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27사단 신교대에 입소할 때부터 조교들의 욕설과 반말은 없었다. 내심 화끈한 신교대 생활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편했다.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편했다. 입대전 선배들에게 들은 무수한 무용담이 와닿지 않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대학시절, 우리나라 체대보다도 더 빡세다고 자부할 수 있는 선후배체계을 보낸 나로서는 신교대는 고등학교 수업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당시 상황이 그랬으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신교대를 퇴소하고 자대배치를 받은 가츠는 본격적인 내무생활에 들어갔다. 이미 눈치하나는 기똥차게 빠른 가츠군은 누구보다도 완벽한 위장군기와 샤바샤바로 험난한 막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시간, 폭풍구보사건 이후로 한동안 개갈굼을 먹었지만 대망의 첫 훈련, 유격훈련을 어렵사리 버텨내고 다시 평탄한 시간이 찾아왔다. 사실 유격훈련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질 듯하고 눈물 없이는 안되기에 추후에 유격훈련을 주제로 한 편 작성하도록 하겠다.
유격훈련을 복귀하고 얼마 뒤, 우리 분대는 저녁을 마치고 중대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분대 수저통을 쫄래쫄래들고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인솔하는 분대장은 '가츠만 군가한다 군가, 팔도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쭈욱펴면 고향의 안방
얼싸 좋다 1분대 신나는 어깨춤
우리는 한 가족 팔도 사나이
힘차게 장단맞춰 노래 부르자
정다운 목소리 팔도 사나이~♬
연병장을 떠나가라 고래고래 군가를 외치고 있는 가츠군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대대 지통실 앞에 빵모자를 눌러쓰고, 떠블백을 메고 있는 한무리. 오오오오 신병이다! 신병이 온거다!
많은 군인들은 지인들에게 자기 군번줄은 완전 풀렸다! 완전 꼬였다! 라고 한다. 이 의미는 처음 배치받고 소대에 들어갔는데 소대원 대략 30명이라 치자. 이 중에 상, 병장층이 20명 있고 10명이 일, 이등병이라고 생각해보자. 문득 처음에는 완전 괴물같은 상,병장이 득실거리니깐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딱 1년을 생각해보자.
내가 상병달때 내위로는 10명 뿐이라는 거다. 그중 8명은 분대장, 부분대장일테고, 이들은 사실 그냥 내무실에 있는 시체들이다. 그리고 내 밑에는 파릇파릇한 후임 20명이 있다는 것이다. 내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20명의 로봇들이 1년만 고생하면 생기는 것이다.
간혹 신이 내린 군번줄이라며 일병이 분대장 잡고 있는 소대도 있다. 물론 일반 소총부대에는 거의 드문일이고 극소수의 본부중대에서나 가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케이스의 경우 같은 타분대장들과 짬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항상 모든 일을 짬당할 수 있다.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다.
가츠의 경우 군번줄은 좋은 편이었다. 내가 1월 군번이었는데 소대내 동기가 4명 (그 중 한명은 본부계원으로 빠지고, 또다른 한 명은 헌병대에 소원수리 긁어서 타부대로 전출갔다.)이었다. 그 위로 한달고참이 2명, 2개월고참이 한명 (사실 이 고참이 신이내린 군번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악의 저질체력과 아둔함, 거짓말, 비위생 등 고참대우를 못받는 케이스였다.) 그 위로 6개월 고참이었다. 나름 선방한 군번줄이었다.
특히, 한달 고참 2명은 나랑 죽이 잘 맞아서, 일병 달자마자 말트고 지냈을 정도였으니, 괜찮았다. 6개월 고참들이 내무생활의 주적이었다. 사실 그들이 진정 꼬인 군번이었으니 우리 12,1월군번들이 좋게 보일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이고 그들이 부분대장 잡고 우리가 상병실세일 때부터는 가장 재밌게 노는 사이였을 뿐이다.
아~ 아까 동기소개하다가 소원수리 긁어서 헌병대 간 녀석이 생각나서 재미난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하자면, 당시 그녀석은 나랑 같은 분대였다. 당시 1분대는 나의 한달고참 포함 이등병만 3명, 일병 1명, 상병 1명, 병장 2명 도합 7명이었다. 보통 편제가 1번 분대장부터 10번 부분대장까지 10명이 완편이지만 그 중 2명은 동원예비군들이고 대개 순수 현역병력으로 8명 정도가 완편이다. 물론 군대의 인원조절에따라 다르지만 대개 8명이고 그중 누가 전역하면 7명 정도였다.
동기 녀석은 1월초 군번이었는데, 나보다 한살인가 두살 많았다. (당시 가츠는 23세) 나도 늦게 왔는데 그녀석은 더 늦게왔다. 덩치는 작고 피부는 뽀얀 그런 녀석이었다. 근데 그녀석이 공중전화로 군헌병대에 성희롱 당했다며 허위신고를 한게 아닌가?
당시 중대는 발칵 디집어졌고, 온갖 추궁이 시작되었지만 말그대로 허위신고였다. 그 녀석은 지난 몇번의 훈련과 아침 구보등 자신의 미래가 빤히 보이는 소총중대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편한 부대로 전출가기 위해서 쇼를 한거였다. 어찌보면 나보다 똑똑한 놈일수도 있겠다. 그녀석 전출가고난 후 남은 동기들끼리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나 그색히, 결국 빵실한(편안한) 부대 갔네!'
'진짜 나도 눈 딱 감고 전화할까? ㅋㅋㅋ'
'그럼 난 니 전화할때, 바로 뛰어가서 보고할꺼다! ㅋㅋㅋㅋㅋ'
아무튼 우리 중대가 헌병대사건으로 초토화되고, 이틀쯤 지났을 무렵,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나에게 일어났다. 금요일 저녁, 내무실에서 총 닦고 있는데 전파가 왔다.
'3소대 가츠이병, 행정반으로'
사실 이등병을 직접 지목하면서 부르는 일은 이등병 시절 거의 없다. 대개가
'각 소대 작업인원 3명씩 행정반으로'
이런 내용이지. 이등병이 행정반으로 전화올리도 없고 특정일을 시킬리도 없을테니 말이다.
내심 분대장도 긴장한듯, 너 무슨짓했어? 라는 표정을 보였다. 당시 분대장은 유격 3년차! 전역을 3주 남긴 말 그대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되는 판국에 이틀전, 동기녀석때문에 헌병대 조사를 받은 최악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긴장하면서 행정반을 들어갔다.
'이병 가츠, 행정반 용무있어 왔습니다!'
들어서니 그날 당직사관은 우리 부소대장님이었다. 부소대장님 약력은 지난 시간에 소개했다. 이등병에게는 천사 그 자체이지만 고참들에게는 대대에서 최고로 무서운 간부이다. 말보다 손이 빠르고 손보다 발이 빠르다. 부소대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우리 가츠 소포왔네~ 뭔지 열어보자꾸나~'
순간, 머리가 띵했다.
이등병에게 소포라니! 그것도 나도 모르는 소포라니!! 나도 모르니 분대장에게 보고도 안된 소포!!!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게 소포를 보낼 사람이 없는데, 부모님이나 여친에게는 나를 죽이고 싶으면 보내라고 미리 엄포를 했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이냐 말이다.
소포 주소를 보니 서울에서 온 소포였다. 보내는 사람을 보니 뚜둥. 대학교 선배였다. 그것도 제일 친한, 친형같은 선배였다. 그 형이 정녕코 날 너무 사랑해서 날 죽일려고 하는구나. 근데 그 형도 당시 수방사 헌병대에서 군복무 중이었다. 드디어 부소대장님의 칼질이 시작이었고 소포상자는 개봉되었다.
뚜둥~!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 한통의 편지와 사제 전투모가 들어있었다. 얼마뒤에는 백일휴가를 나가니깐 그 때 쓰고나가라는 눈물겨운 동생사랑이었다. 부소대장님 껄껄 웃더니 좋은 선배 뒀구나~! 라고 말을 한 순간! 상자에는 작은 명함이 하나 있었다.
살라가둘라 메치카둘라 비비디 바비디 부!!!
수방사 헌병대장님의 그윽한 미소가 프린팅되어있는 한 장의 명함!
전우여~ 고민이 있으면 주저말고 전화하여라~! 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헌병대라면 치가 떨리는 부소대장님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었다.
'가츠야 이 아저씨 누구야? 삼촌이야? 아빠친구야?'
'이병 가츠!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근데 이게 여기 왜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 사실인데 선배는 헌병으로서 전국 각지의 사건사례가 시시각각 들어오고 허구한날 탈영하고 자살하고 하니깐 행여나 내가 딴 맘 먹고 죽을까봐. 그럴바에는 전화를 하라는 의도였다고 하였다. 덕분에 잘 살고있는 가츠가 죽을 뻔했지만.
부소대장님은 나를 붙잡고 이리저리 추궁하였지만, 나 또한 자세한 정황을 알리 만무하였고, 결국 가츠 너도 모르는 사람이니 이 명함은 우리가 보는데서 찢고 버리자~! 오케이! 그래서 명함은 눈앞에서 산산조각났고 나는 편지와 전투모를 들고 내무실로 갔다.
내무실로 가자 고참들은 우리 가츠 소포왔네~ 이야 사제 전투모네~ 가츠도 이제 OOO따라 따른 부대 가는가보다~ 가지마 가츠야! 등 고참들의 놀림이 시작되었고, 우리 불쌍한 분대장은 힘없이 분대장 수첩을 들고 나에게 손짓하였다.
'너마저 형을 피말려죽일려고 하는구나, 형 이제 다섯밤만 자면 말년가. 제발 이제 그만 나좀 집에 보내주면 안되겠니?'
그의 눈망울은 슬퍼보였고, 관찰일지를 작성하는 그의 손은 생기가 하나도 없어보였다. 물론 다음날 나는 일병층한테 개갈굼 먹은 것은 두말할 소리도 없고. 이 모든게 떠나간 동기와 선배의 합작품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막내 가츠에게 드디어 신병들이 들어왔다. 싱싱한 3월군번 2명이 우리소대로 배정받았다. 그들의 데리고 오는 분대장들은 연신 웃음을 지으며 신나보였다.
'야 이것들아, 형의 신들린 짱깨(가위바위보)실력으로 요녀석들 데려왔다! 본좌를 칭송하여라~~!'
내 앞에 서있는 2명의 신병. 오호 딱봐도 물건들이었다. 한 놈은 186에 훨칠한 키에 탄탄한 체격, 또 한 놈은 프로복서 출신에 야무진 체격. 앞선 이야기에서 신병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자세히 소개하였다. 물론 당시 나는 그것을 기만하여 개갈굼 먹었지만, 애네들은 한눈에 봐도 튼튼해 보였다.
< 전역 후 다시 복싱계로 돌아간 후임 >
< 이녀석 들어온뒤로 나의 위장군기는 묻혔다. 참고로 11시방향에 누워자고있는 가츠군 >
< 군생활동안 나의 손과 발이 되어준, 3월 군번 송OO과 서OO >
불과 한달 전 가츠로 인해 한번 심하게 당한 고참들마저도 이번엔 제대로 된 놈들이 왔구나! 라며 만족스러워 하였다. 그리고 나처럼 2박 3일을 황금같은 주말을 보내고, 첫 아침구보 당일.
천진난만한 녀석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해밝게 점호를 취해고 있었다. 바보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은 과연 니들이 완주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이녀석들 무사히 완주하였다. 당시 당직사관이 1소대장 말년 중사님이었던감도 있지만 사실 1.5킬로만 찍고 돌아왔다. 폭풍구보를 통한 입증은 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녀석들로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며칠후, 우리 중대는 군지검 훈련때문에 당일치기로 화악산 매봉정찰을 명령받고 화악산으로 출동하였다.
화악산이라?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높이는 아담하게 딱 1,468m이다. 경기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며 경기 5악 중 으뜸으로 치며 이기자 부대의 주요 작계지역이다.
사진에서는 군부대의 흔적이 없지만 각 정상마다 주요 군사시설 및 부대가 있다. 우리 소대의 임무는 그 중 한 곳을 방어하러 가는것이었다. 여느때처럼 우린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신공으로 힘차게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대략 줄기차게 올라가면 한 2시간가량 소요된다.
물론 이미 몇번의 출동과 지난 유격훈련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가츠지만, 죽도록 힘들었다. 또한 우리 소대의 선두에는 폭풍구보의 창시자 이중위님이 아니신가. 소대장님은 말년은 무슨 개뺑이냐며 투덜거리며 미친듯한 속력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얼마후, 3분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이 XXX야 똑바로 안걸어? 어쭈 쇼를하는만, 아나 이색히 엉덩이 실룩실룩 거리는봐라! 죽여버릴라! 안 올라가?'
그렇다. 우리의 서이병 한계가 온것이다. 얼핏 돌아서 그의 상태를 보니, 이미 눈동자는 풀렸고 영혼은 빠져나간거 같았다. 일명 유체이탈이 시작되었다. 그냥 멍하니 흐느적 거리며 걷고있었다.
그렇다면 프로복서출신의 송이병은 잘하고 있는걸까? 2분대쪽을 보니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았다. 하지만 혼자 우리 소대원 전체의 땀을 흘리는 거 같았다.
1시간쯤 올라갔을까? 쉴 법도 한데 우리 소대장님 쉬는 시간도 아깝다며 주구장창 올라가신다. 서이병은 이미 단독군장 해제상태로 질질 끌려올라가고 있었고, 그의 고참들은 그의 총과 조끼, 탄띠를 대신 들고는 연신 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무렵, 2분대쪽에서도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프로복서 출신의 송이병도 쳐지기 시작한거다. 솔직히 그녀석은 정말 낙오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에 황당한 2분대 고참들은 득달같이 갈구기 시작하였다.
'야 미친 XX야! 너 새까 운동선수잖아! 니가 왜 낙오해? 아나 나약한 놈! 미친거 아냐?'
그 순간, 나의 군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명언이 송이병 입에서 나왔다.
'허억 헉헉... 정상병님! 복싱은 3분하고 쉬고 합니다! ㅜㅜ 살려주세요! 엉엉'
헉.. 그랬다.. 복싱은 분명히 3분 1회전하고 휴식을 가진다 ㅋㅋㅋㅋㅋ
그 사건이후로 그녀석들도 금연에 들어갔고 얼마후 무적의 이기자 용사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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