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보기
가츠의 군대이야기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갓 전입온 이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벌써부터 우울해지는군요 ㅜㅜ
가츠는 23살되던해 1월말에 입대를 하였다. 2년 6개월 동안 중국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사실 가츠군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걷기, 달리기,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이다. 고등학교때는 등교거리가 집에서 걸어가면 10분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자주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다닐정도로 걷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다고 0.1톤 이런 체형은 아니고 181/76 정도의 보기에는 멀쩡한 육체를 유지하고 있으나, 현격히 낮은 기초체력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다. 중국에서의 유학시절 2년 6개월간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향락의 시간을 보냈고, 귀국 후에는 입대한다고 다시 6개월간 더 빡세고 놀고 입대하였다.
이런 상태이니 가츠군의 체력은 허접 그자체였다. 문제는 보기에는 한 덩치하고 튼튼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회에서야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대배치 후 엄청난 시련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자세한 소속을 밝혔지만 가츠군은 강원도 전방 예비사단의 소총중대 출신이다. 전군을 통털어서 가장 많은 훈련를 소화하면서, 몇몇 메이커부대들이 기계화 사단으로 전환된 시점에도 이기자 부대는 여전히 제 27보병사단이다. 험준한 산악 작계지역을 항상 걸어서 이동해야되는 소총수로서는 첫째도 체력이요, 둘째도 체력이요, 셋째도 체력이다. 정신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리 강한 정신력이라도 육체가 못버티면 끝인거다.
헌데 이런 저질체력 가츠군은 102보충대를 통해서 27사단 소총수로 배정되어 자대배치를 받았다. 추후 입대, 훈련소 이야기도 상세히 작성할 듯하니 이번시간에는 물 흐르듯 넘기겠다. 신교대를 퇴소하고 자대배치 받은 중대로 이동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은 중대가 지상합동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날이었다. 원래 복귀행군이 40여킬로로 잡혀있어 새벽에나 되어서 복귀할 예정이었는데 인접부대의 자살사건으로인해 조기복귀 명령이 내려졌고 계획된 행군 코스를 가로 질러서 막 복귀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행군코스는 큰 훈련이 아닌 이상 항상 주둔지 근처이다. 예를 들어 5시간째 행군중이다. 이미 몸은 지쳤고 내가 지금 왜 걷고 있는거지? 정신이 혼미해질때즈음 부대는 어김없이 갈림길에 도착한다. 몇 번의 훈련으로 인해 행군코스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그냥 도로를 따라 20-30분만 걸어가면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는 주둔지가 나온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1400고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왼쪽으로 들어간다. 이러니 미치는거다! 모르는 행군 코스면 그냥 멍하니 걸으면 되는데, 이건 어디가 천국이고 지옥인지 알고 걸으니깐 말이다.
이 날이 나의 군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조기 복귀였는데, 난 그자리에서 훈련 받는게 아니었고 중대 행정반에서 갓 들어온 전입신병이었다. 훗날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전입동기 4명과 함께 중대 행정반에 그대로 얼어있는 가츠군, 동기들 중에 가장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았다. 곧 들이닥친 각소대 분대장들. 하나같이 인상이 어찌나 험악한지, 원래 병장쯤 되면 사회 나갈 준비를 하면서 뽀얀 피부와 해맑은 미소를 갖추는게 일반적인데, 우리 중대 분대장들은 이거 인민공화국 병사들 같았다. 물론 일주일동안 야외훈련받고 왔으니 당연한 거 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간부들이 간부회의 참석하러가서 행정반에는 계원들과 각소대 분대장, 그리고 전입신병 5명만 있었다.
분대장들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수근거린다.
'오호, 저색히 덩치 좋은데 우리 소대 델꼬갈래!'
'야 저번에 떡대 두놈, 느그들이 가져갔잖아, 이번엔 우리 소대차례다!'
'야이 XXXX, 그 개 XX같은놈들, 완전 덩치만 컸지, 개 폐급이야. 아나 XXXX 산 하나 넘는데 기절이나 쳐하고 뺑끼는 존내 심하고 아나 XXXX 갈아 마셔버릴뻔 했잖아!!'
'아 ㅋㅋㅋ 암튼 니네 사정이고 이번에는 우리가 저놈 데려간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나를 두고 하는 말인거 같았다. 순간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나를 서로 데려간다고?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항상 행군이 주된 소총중대에서는 행군시 낙오 안하는 신병이 최고이다. 일단 신병이 튼튼하면 신병군장에 이것저것 부담없이 때려박을수 있다. 신병 군장이 무거워 질수록 고참 군장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반면 신병이 약하고 비실비실하면 오히려 신병 군장품목을 고참들이 대신 챙겨가야되고, 행여 낙오라도 하면 난리하는 거다. 중대장의 갈굼은 기본이요, 그로부터 줄줄이 내려오는 내리갈굼. 그래서 분대장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소대, 분대에 강한 신병을 데리고 올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일단 간부들이 지정하지만, 분대장들과 간부들간의 쇼부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악랄해보이는 분대장이 나에게 물었다.
' 야 너 어디갈래? 1소대? 2소대? 3소대? '
내 운이 다된건가? 왜 하필 나에게 먼저 질문을 하는거야? 나는 나의 23년 된 뇌를 태어나서 가장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때마침 간부들이 들어왔다. 계원들이 간부들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1소대장님 이것좀 확인해주셔야 됩니다.'
'포반장님, 지금 탄반납하러 오시랍니다.'
'3소대장님 XXX이병 의무중대 진료받으러 갔습니다.'
순간 나는 3소대장님이 가장 선해보였고, 그의 미소띤 얼굴이 나의 군생활을 평탄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이윽고 당당하게 질문한 분대장에게 외쳤다.
'3소대 가고싶습니다!'
순간, 행정반 모든 시선이 나를 주시하였다. 분대장들은 오호~ 놀랍다는 표정이었고, 밥 안되는 계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간부들은 머리를 가우뚱거리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미친놈 하나 들어왔군 이라는 표정을 짓는 와중에 3소대장님이 더욱더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헤이~ 보이~'
'이병 가츠'
'으응 머라구~~?'
'이병 가아아츠으으!'
'머라는겨?'
'이이이벼어엉 가아아츠츠으으!'
'아 ㅋㅋ 3소대 오고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웰컴 투 천사의 집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천사의 집? 머지 정말 나의 환상적인 초이스인건가?
5중대 3소대의 정체를 살펴보자?
소대장 중위 이OO
조선대 체육학과출신 ROTC, 땅땅한 체격의 선한 인상의 소유자. 독실한 기독교인, 천사의 집 원장, 이등병킬러, 폭발하는 순간 콤비네이션 발차기가 발동된다. 사고병사들을 친히 자기소대로 편입시켜 무사 전역을 위해 앞장선다.
부소대장 하사 최OO
병출신 부사관으로 사실 진작에 중사로 진급했어야 했지만, 각종 폭행사건으로 인해 전역 때까지 하사로 전역하신 육군 최고 왕고 하사, 3소대 부소대장으로 임명되면서 급 변신하여 이등병들의 천사로 강림.
뭔가 심상치 않은 전개다. 그리하여 가츠는 3소대 1분대 2번 소총수로 파란만장의 군생활의 서막이 열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츠의 저질체력은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으며, 소대 유망주로서 고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월요일 아침점호가 시작되기전까지는 말이다.
금요일날 자대전입 왔으므로 2박 3일간의 행복이었다.
우리 부대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에도 아침점호 후 3km 알통구보를 한다. 말이 영하 20도지 그 날씨에 알통구보를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일단 위병소를 벗어나기전까지는 소대별로 오와 열을 맞춰서 걸어나간다. 사실 이때는 덜 춥다. 위병소를 통과하면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달리는 순간 송곳같은 칼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앞 뒤로 흔드는 손은 얼어터질 것 같고, 얼굴은 떨어져 나갈것만 같았다. 벗은 상체는 손과 얼굴의 고통으로 인해 추위를 느낄 여력도 없다.
2년 군생활 하면서 주말이 제일 좋았고, 그 다음은 비오는 날, 그리고 전투체육이 있는 수요일이다. 모두 아침 구보를 안하는 날이다. 밥 안될때는 목청 터져라 부르는 군가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발 맞추기 때문에 힘들었고, 밥되고는 그냥 뛰는거 자체가 귀찮았다.
훈련소에서 한 달간 못피운 담배를 주말내내 고참 손에 이끌러 나가서 연신 신나게 피웠다. 여자친구에게 마음껏 전화도 하고, PX에 가서 기름진 냉동과 과자, 음료수도 먹었다. 문득, 여긴 정말 천사의 집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당직사관은 우리 소대장님이었다. 전역을 4개월 앞둔 중위 왕고 천사의 원장! 역시 말년이라서 그럴까? 주말내내 중대원들을 편하게 쉬게 해주었다. 저녁 점호도 쉬엄쉬엄 끝났고, TV연등도 1시간 시켜주었다. 한데 TV연등을 하면서 분대장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아나 XX 하필 오늘이 우리 소대장님 당직이냐! 토요일날 당직 하셨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게 말이다, 내일 또 폭풍구보 하겠네. 깔바지 벗고 점호나가야 되겠군'
'가츠야 내일 아침점호 끝나면 우리 소대장님 인솔하에 아침구보하거든. 우리 소대장님이 뛰는 거 겁나 귀찮아 하시거든. 그래서 아침구보할때 내리 풀스피드로 달리신다. 보통 대대 전체 인원이 뛰기 때문에 3킬로 뛸 때 한 10분정도 걸리는데 우리 소대장님은 앞 제대 다 따라잡으면서 처음 스피드로 그대로 달리셔. 내일 낙오하지 말고 잘 뛰어야되!'
아 X됐다! 내가 3킬로를 언제 뛰어봤드라. 고등학교 체력장할때도 1500미터였는데, 아 정녕 3킬로 뛰어본적이 없는 건가? 막상 그냥 정상적인 속도로 3킬로를 뛰어도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찰나에 이건 뭐 전설의 폭풍구보란다.
원래 취사장 식사 순서에 맞춰서 중대별로 일주일씩 돌아가며 순서대로 위병소를 출발하여 뛰는데 5중대가 꼴지로 출발했을때 본부중대,8,7,6중대를 다 따라잡아버리고 일등으로 복귀했단다.
아아아~~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올리가 없지. 지금 난 소대 유망주로서 한껏 기대를 받고 있는 몸인데. 아침 해가 뜨면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걸까?
재깍재깍! 6시되기 10분전부터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의 10분...... 아직도 기억난다.
제발 비가와라! 비가와라! 비가와라!
아니 전쟁이나 터져라!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러나 국방부시계는 흘러간다. 6시가 되자 불침번이 외친다.
'기상하십시오! 기상하십시오! 금일 6시 20분 아침점호 집합입니다!'
분대장은 웃으며 내 손을 잡으며 지난 주말처럼 어김없이 담배피러가자고 하였다.
'가츠 베이비~ 우린 담배나 피러가자꾸나~♪ 룰루랄라~♬'
얼마후 중대 사열대 앞에서 당직병의 인원, 총기보고를 시작으로 아침점호가 시작되었다. 도수체조까지 마친 후 구보가 시작되었다. 위병소 밖으로 나가는 걸음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우리 대대의 3km 구보코스는 일단 위병소를 통과하면 약 500m의 내리막 코스를 지나 2km 용호정 호수를 한바퀴 돈 후, 다시 500m 오르막 코스를 올라서 복귀하는 코스이다. 특히 마지막 500m의 오르막 코스는 마의 코스이다.
나는 2번 소총수였기 때문에 분대장 바로 뒤에서 뛰었다. 하지만 맨앞에 분대장들은 절대 발을 맞추며 뛰지 않는다. 안그래도 발맞추며 뛰기가 어색한 나에게 바로 앞에서 지맘대로 뛰는 분대장은 사회악이었다! 위병소를 벗어나자마자 중대 맨앞에 위치한 소대장님은 전력질주를 시작하였다. 우리 소대는 중대 맨뒤에서 뛴다. 1소대, 2소대, 본부포반이 순서대로 총알처럼 뛰쳐나간다.
우리소대 선임분대장이
'3소대 뛰어!'
'악!'
'가!'
'군가한다 군가! 구보가! 하나 둘 셋 넷!
아침을 열어주는 사나이 함성
맨주먹 불끈 쥐고 정상을 향해
발 맞춰 뛰어간다 우리는 무적
군화소리 착착착 승리를 위해
박수소리 착착착 영광을 위해
이거 내리막길도 벗어나기 전에 숨이 차오른다. 좌우뒤에서는
'야이 XX야 발 안맞춰? 군가 몰라?'
3중 콤비네이션 갈굼이 시작되었다. 용호정 반바퀴를 돌면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며 허벅지, 종아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500m 오르막길 코스에 당도하였다.
가츠군 바로 뒤에는 4번 유탄수 천사 김일병이었다. 근데 천사 김일병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나 이런 미친놈, 야 가츠 미쳤나? 군생활 그만하고 싶냐?'
3소대에서 낙오는 천사마저도 악마로 만든다. 결국 가츠군은 오르막코스에서 대열을 완전 이탈! 이로서 소대 유망주에서 개폐급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전입 동기들도 하나 둘씩 낙오하기 시작하였다. 내심 그녀석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역시 군대는 동기밖에 없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부분대장과 함께 얼마후 중대 사열대 앞으로 도착했다. 사열대 위에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소대장님, 사열대 앞에서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100명의 중대원들, 대략 아찔한 순간이었다.
점호가 끝난 후 분대장이 막사 뒤 커피 자판기로 데려갔다. 이윽고 상담시작.
' 너 왜 못뛰어? 어디 아픈거냐? 이상하네? 왜 못 뛰지? 안 뛰는거지? 음... 일단 담배피지마! '
헐... 금연이랜다...
아나 그냥 때리지...
마구마구 때리지...
왜 하필 금연이야???
왜!!! 이런 독한새끼!!!
그랬다. 그후로 정확히 9일간 담배를 피지 못했다.
하지만 금연의 힘은 나를 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남들이 담배필 때 못 피는 그 심정은 나로 하여금 최고의 이기자 소총수로 만들어주었다. 그 후로 나의 군생활에서 낙오란 단어는 없었고, 낙오하는 후임들을 악랄하게 갈구는 악랄가츠만이 있었다.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분대개편 (52) | 2009.04.24 |
---|---|
가츠의 군대이야기, 분교대 입소기 (97) | 2009.04.21 |
가츠의 군대이야기, 절대권력 (59) | 2009.04.20 |
가츠의 군대이야기, 첫 후임 (118) | 2009.04.15 |
가츠의 군대이야기, 첫 포상휴가 (150) | 2009.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