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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 처음 등교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초등학교시절, 매일같이 붙어다닌 우리 삼총사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무서운 게 없었는데 말이다.
2009/08/15 - [가츠의 옛날이야기] - 가츠의 옛날이야기, 짝사랑
"짝사랑의 라이벌이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였어!
중학생이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거였다. 처음 입는 교복은 나에게 무진장 컸다. 어머니와 교복사 아줌마의 연합작전으로 인해 나에게는 너무나 큰 교복이었다. 한창 사춘기 시절, 지나가는 모든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시기였기에, 내 몸에 맞지 않는 교복은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바지의 통이 너무 컸고, 길었기 때문에 있는 힘껏 배 위로 올려입어야 했다. 자칫 가슴까지 덮어버릴 기세였다. 그리고 스포츠형으로 짧게 자른 머리도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진학한 중학교는 우리 도시에서 유일한 남녀공학이었다. 물론 남녀합반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여간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 남녀합반으로 바뀌었고, 3학년 교실에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진지하게 1년, 재수를 할까 고민하였다.
"앜ㅋㅋㅋㅋㅋㅋ"
중학생이 되었지만, 아침마다 하는 뽀뽀뽀와 TV유치원 하나 둘 셋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 둘 셋을 다보면 무조건 지각이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집을 나서야 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이상한 교복을 입고 중학교로 가는 길, 행여 초등학교 여자 동창들을 만날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 편에서 떼거리로 몰려오는 초등학교 여자 동창들,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다가 아예 드러누워 웃기 시작하였다.
"왜...왜 웃어?"
"풉! 찐따같애!"
역시 그들의 눈에도 나의 모습은 웃기기 그지 없었다. 학교를 향하면서, 또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자고로 남자의 세계에서 첫 인상만큼 중요한 게 없다. 다들 처음 만나기 때문에 기싸움이 치열할 것이다. 자칫 3년동안 넘지 못하는 산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초반부터 강하게 나가야 된다.
그때부터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강자는 일찍 등교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체벌따윈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배포를 급우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어느덧 예정된 등교시간은 지났고, 거리에 학생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간혹, 뒤늦게 뛰어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저건 진짜 금기시 해야되는 행동이다.
"쯧쯧! 차라리 일찍 오는 것만도 못해!"
교문에서 서성이기를 수분여, 이제 충분히 늦은 거 같았다. 한 손은 커다란 교복바지주머니에 꽂은 채로 한껏 건방진 표정으로 교실문을 활짝 열었다. 사실, 유리창으로 미리 선생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짜고짜 들이대면 돌이킬 수 없기에 주의하여야 한다. 나무로 된 교실문은 굉음을 내고 열렸다. 이 정도 포스면 완벽하겠지? 눈에 한껏 힘을 주고는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애들아 관심 좀!"
나의 바램과는 달리, 아무도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뻘줌해진 나는 빈 자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뒷자리부터 살펴보았다. 원래 강자들은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교실을 관장한다. 맨날 엎드려 자는 거 같지만, 모든 게 속임수이다. 그들은 그 상태에서 온 신경을 동원하여 급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그들은 이미 기를 감지할 수 있는 자들이다.
너무 늦게 온 탓일까? 뒷자리는 이미 처음 보는 녀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비키라고 하고 싶었지만, 양보하기로 하였다. 원래 진정한 강자들은 먼저(?) 시비를 걸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맨 앞자리에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당시, 책상과 의자의 크기가 앞 쪽에는 작았고, 뒤로 갈 수록 컸기에, 나에게는 무척 협소하였다. 앉았는데, 무릎이 책상에 닿아서 책상이 들렸다. 행여 주위 급우들이 볼까봐, 살짝 옆으로 돌려 앉아서는 깊은 한숨을 내뿜었다.
순간, 교실문이 재차 힘차게 열리더니, 나 같은 녀석이 또 들어왔다. 역시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내 뻘쭘한 지, 쭈삣거리며 뒷자리를 살펴보는 듯 하였다. 그러나 어김없이, 내 옆에 와서는 나처럼 옆으로 돌려 앉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웠다. 이 녀석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의 이름은 정훈이었다. 나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아나! 간만에 학교오니깐 죽겠구만!"
"야!"
옆에 앉아 있던 정훈이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당돌하게 먼저 말을 걸다니, 내가 만만해 보이는걸까? 더 이상 약하게 나가서는 죽도 밥도 안될 거 같았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몸을 돌려 그를 째려보며 말하였다.
"뭐? 니가 부르면 내가 돌아 앉아야 되냐? 어? 이걸 확!"
"사탕 먹을래?"
"응!"
"자!"
"고...고마워!"
생각지도 못한 정훈의 캔디러쉬에 나는 본능적으로 해맑게 웃으며 덥석 받고야 말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중학교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초등학교 때처럼 먹을 거 주는 녀석이 진정한 강자였다. 그렇게 정훈과 나는 매일같이 맛있는 것을 나눠먹으며 새로운 우정을 쌓아갔다.
그 순간, 다시 교실문이 힘차게 열렸다. 도대체 우리같은 녀석들이 얼마나 더 있는걸까? 이제 더이상 앉을 자리도 없는데 말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독사처럼 생긴 선생님이 우리를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뭐...뭐지?"
"방금 들어온 두 놈 나와!"
"어떻게 알았지? ㄷㄷㄷ"
"이노무새끼들! 난 또 간첩인 줄 알았네! 교문이 무슨 휴전선이야? 왜 안 들어오고 지랄이야!"
그랬다!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학교 전체를 관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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