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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악랄가츠입니다!"
"오호! 반가워요!"
휴대폰을 손에 쥐고 한참을 망설였다. 마치 이등병 시절, 대대장실에 면담하러 가는 기분이랄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의 배우이자, 문화부장관을 역임하신 김명곤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있다.
선생님과 나의 만남은 김명곤의 세상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처음 선생님의 블로그를 방문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프로필 사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랐다. 그렇게 몇 번의 글을 더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52년생이신 선생님께서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신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얼마전,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선생님께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연락처를 몰랐기 때문에 쿨하게(?)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당돌한 나의 부탁에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받아주셨다. 이 모든 것이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사히 책이 발간되었다.
일면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 나를 선생님께서는 그저 귀여운 청년으로 여겨주셨다. 나는 더이상 감사의 인사를 늦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하하! 그래요! 어디서 볼까요?"
"제가 지방에 살아서 지리를 잘 몰라요! 편하신 곳으로 말씀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광화문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나요!"
약속 당일, 나는 이미 서울에 있었다. 몇몇 일정이 잡혀져 있어서 지인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지난 밤, 하루종일 컨퍼런스 행사를 하고, 저녁에는 지인과 함께 음주를 하였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자리 누운 나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알람을 설정하였다. 정오에 만나기로 하였다.
너무 의식을 한 탓일까? 3시간도 안잤는데 눈이 떠졌다. 좀 더 자기로 하며 눈을 감았는데, 너무 고요하다. 침대는 나의 몸을 한없이 끌어당기고 있는 거 같았다. 문득 자면서 선생님이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떠보니 어느덧 시계는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지인이 나의 휴대폰 알람을 끄고는 저 멀리 방바닥에 충전을 시켜놓고, 출근 해버렸다.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나는 미친듯이 화장실로 달려가서 씻었다. 씻는 와중에도 초침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인의 집이 충무로라는 점이다. 부랴부랴 광화문에 위치한 코리아나 호텔에 도착하니, 11시 45분이었다.
그날은 다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나는 호텔 로비 앞에서 맨해튼의 뉴오커마냥 한껏 자세를 잡고 옷깃을 여기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문득 한가지 걱정이 들었다. 평소 사람을 못 알아보기에 항상 동창들에게 욕을 먹곤 하였다. 선생님은 나를 모르실텐데, 나도 못 알아본다면 정말 상큼한 만남이 되지 않을까?
나는 선생님이 나온 작품을 떠올리며, 최대한 모습을 기억할려고 노력하였다. 정오가 다가오자 멀리서 낯익은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께 다가갔다. 나를 발견하신 선생님은 다소 부담스러워하시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오오 반가워요 가츠군!"
선생님은 이미 예약해놓은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평소 말주변이 부족한 나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였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선생님은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 주셨고, 전혀 불편하지 하지 않았다.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블로그라는 하나의 주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새롭고 즐거웠다.
내가 회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먹음직스런 회를 보며 군침을 흘렀다. 그러고보면 선생님은 정말 도사같았다.
"그는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고, 허풍쟁이고, 한편으론 소심하고, 자의식에 가득찼으면, 겁쟁이기도 했고, 첫사랑의 실연에 상처를 받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청년이다."
선생님이 나에게 써준 추천사의 일부이다. 추천사를 읽은 부모님과 지인들은 모두 감탄을 하였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 주제는 블로그에서 세상 사는 이야기로 넘어왔다.
선생님도 내 또래의 자녀가 있었기에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시며 격려를 해주었다. 외국에 나가있는 따님을 이야기 하실 때는 왠지 모르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묻어 나왔다.
처음 만날 때만 하더라도 사실, 선생님께서 문화부장관을 하셨기에, 나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눈 앞에 계신 선생님은 그저 이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였다. 분대장만 하여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에게서는 그 어떠한 권위의식도 느낄 수 없었다. 문득, 나는 조심스레 예술인으로서 문화부장관을 하셨을 때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하였다.
"크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국립중앙극장장을 하면서 이미 행정경험을 하였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화와 예술에 관한 업무였기에, 더 큰 무대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일하였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지금 이 시간에도 피곤하신 몸을 이끌고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하시고 계신다. 예전보다 더 바빠지셨기에,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건강 걱정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요즘 일이 너무 재밌다며 즐거워 하셨다.
아버지는 지금 아버지만의 빛나는 무대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정작 아들인 나는 아직 이렇다 할 나만의 무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데 말이다. 부끄럽다. 나의 표정을 읽으신걸까? 선생님은 나의 꿈에 대해 물어보셨고, 걱정하지 말라며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낌없이 해주셨다.
단 한 컷을 찍었는데도 화보가 따로 없다. 그는 천상 배우였다. 어느새 식사는 끝나갔고,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올해, 선생님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준비하시느라 무척 바쁘셨는데, 아쉽게도 신종플루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 아마 다음 만남은 내년에 있을 전주세계소리축제장이 아닐까? 나만의 다짐을 조심스레 해본다.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는 나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경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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