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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야 쉽게 가자! 이거 먹고 찰싹 붙어라!"
때는 01년 11월 6일, 지난 12년 공교육의 산실이 몇시간만에 평가되기 하루 전이다. 이 날을 위해 코흘리개 꼬꼬마때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학교를 갔다. 심지어 태풍이 몰아쳐도 꿋꿋하게 말이다. 그러고보니, 수험생이 고3 때는 1년동안 추석, 단 하루만 빼고 학교를 갔었다. 우리에게 방학도 주말도 그 흔한 공휴일도 없었다.
아침 6시 기상하여, 30분까지 등교를 하였고,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야자를 하였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하룻밤만 자고 나면 모든게 끝난다. 차라리 하루빨리 수능을 보고 싶었다.
그동안 온라인 게임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가?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항상 재밌는 게임정보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수행평가를 한다는 명목으로 잠시나마 할 수 있었던 인터넷, 나는 최신정보를 보며 마우스 커서를 해당 게임사이트로 향하였고, 나는 회원가입만 하고는 침만 흘리고 있었다.
"미친듯이 하고 싶다!"
"아들! 자야지! 내일 학교 안가?"
항상 그런식이었다. 최신 게임 정보는 다 꿰차고 있었지만, 정작 해본 것은 없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나는 그저 이론만 강한 녀석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까지 초토화시킨 당연 내가 대세! 국내 유명 게임 개발사인 그라비티에서 만든 라그나로크라는 게임의 오픈베타가 한창이었다. 오픈베타라고 하면, 개발사에서 정식 서비스를 하기 직전에 마지막 문제점을 체크해보는 단계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사용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큰 문제점이 없는 이상, 오픈베타 때의 정보는 그대로 정식 서비스로 이어진다.
이 녀석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하지만 아쉽게도 수능 치기 일주일 전부터 오픈베타 서비스에 돌입하였다. 마치 수험생을 농락하듯이 말이다.
"미친거 아냐! 나를 피말려 죽이게 할 셈인가?
게임 커뮤티니에서는 라그나로크의 대한 평이 쉴새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지독한 비평가이었던 그들은 마치 짠 듯, 최고의 찬사를 내지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으면 그럴까? 나는 미친듯이 궁금하였지만, 수험생이라는 신분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바야흐로 게임의 묘미는 자신의 케릭터를 육성하여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빨리, 많이 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벌써 지난 1일부터 오픈베타를 하였기에, 나는 슬퍼할 수 밖에 없었다.
"다들 벌써 고수가 되었겠지? 난 허접일 뿐이야! 어흐흑흑ㅜㅜ"
수능 전날, 지인분들께서 합격엿과 떡을 선물하여주셨다. 나는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내일 있을 전투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컴퓨터로 수능 정보를 보기 전원을 켰다. 컴퓨터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나의 인생은 바꿨다.
뉴스에는 온갖 수능 정보로 가득하였다. 작년보다 쉽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였다. 물론 추측기사였을 뿐이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편한 숙면을 위해 컴퓨터를 끌려고 하는 순간, 습관적으로 즐겨찾기 해놓은 게임 커뮤니티를 클릭하였다.
나는 두 눈을 의심하였다. 신규서버는 접속자가 많아지면 의레 증설하지만, 보통 오후 시간대이다. 순간 오타가 아닐까 의심도 하였지만, 게시판에는 이미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다들 신규서버에서 새로운 고수가 되기 위해 전략회의가 한창이었다.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온건가?"
침대에 누운 나는 조심스레 알람시계를 새벽 3시 50분에 맞춰놓았다. 그리고 무슨 케릭터로 키울까? 초반에 어디에서 사냥을 할까? 파티를 맺고 해야되나? 당장 내일 아침에 있을 수능 걱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나의 머릿속은 온통 게임 생각으로 가득찼다.
다른 수험생들은 수능 걱정으로 잠을 뒤척일때, 나는 게임 생각으로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후 알람이 울리자 귀신같이 눈이 떠졌다. 평소 학교갈 때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가 5.1채널 돌비서라운드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부리나케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게임사이트에 접속하여 서버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새벽 4시가 되자, 기다리던 신규서버가 오픈되었다. 미친듯한 속도로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상으로 접속하였다. 역시 우리나라는 게임강국이었다. 이시간에도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접속하기 시작하였다. 저마다 고수를 꿈꾸며 말이다.
"님들 새벽부터 대단하군요!"
"저 이따가 수능보러 가야됨!"
"악ㅋㅋㅋㅋㅋㅋㅋ 대박!!!!!!"
"응원해주세요!"
"미리 재수학원부터 등록하샴!"
"............"
그렇게 게임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신나게 사냥을 하였다. 얼마나 하였을까? 어느덧 날이 밝았고, 어머니가 아침을 차려주시기 위해 일어나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탁월한 게임감각으로 동시간대 최고랩을 찍을 수 있었다.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식탁으로 갔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특별히 아버지께서 시험장까지 태워주셨다. 차를 타고 가면서 거울을 보았다.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일까? 눈이 유난히 퀭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신 아버지는 걱정스런 말투로 말씀하셨다.
"아들, 너무 긴장해서 잠을 못 잔게냐? 떨지말고 차분하게 풀고와!"
"................"
그렇게 나는 피곤한 몸으로 시험장에 들어갔고, 지난밤 수능 추측기사를 낸 기자를 찾아내서 사냥하고 싶었다. 작년과 비슷하기는 개뿔! 역대 최악의 난이도로 평가되는 당시 수능은 많은 수험생으로 하여금 눈물 짓게 만들었다. 나는 당시를 조심스레 회고해본다.
"새벽에 게임해서 못 친 게 아니야! 수능 자체가 어려웠던거야!"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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