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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병장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10월, 교육훈련을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후임들에게 내무실 정리를 지시하고는 중대 공원 벤치에 가서는 담배 한개비를 물었다. 가을 하늘을 유난히도 맑고 높았다. 내 앞으로 후임들이 연신 왔다갔다하며 청소를 하느라 분주하였다. 새삼 이등병 때가 생각났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오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내무실 정리를 하여야 했다. 그때 병장들은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며 쉬고 있었다. 휴지통을 들고 그들 앞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부러워 하였는가? 이제는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병장이었다. 근데 별로 즐겁지 않다. 이제는 민간인이 되고 싶었다.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내무실로 들어가서 활동복으로 환복을 하였다. 땀내나는 전투복을 벗어버리고 활동복으로 갈아입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그순간, 중대 인사계원이 내무실로 들어오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가츠 병장님~!"
"왜?"
"원래 대대부관하기로 한 김병장이 아파서 가츠병장님이 투입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
"장난하냐? 미친 거 아냐! 이게 요즘 오냐오냐 했더니! 일로와 일로와!"
"어흑... 제가 넣은게 아니고 부중대장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설마? 부중대장님이 당직사령이냐?"
"넵!"
그랬다! 전 소대장이었던 김중위, 지금은 부중대장직을 맡고 있다. 오늘 당직사령이다. 당직사령이라 함은, 주간에는 대대장이 지휘관으로 임무를 수행하지만, 퇴근하면 지휘관이 없다. 고로 당직사령이 야간동안 부대를 관리 감독한다. 밤의 황제라고 할 수 있겠다. 황제는 당연히 일을 하지 않는다. 그를 보좌할 부하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대대부관이다. 쉽게 중대로 치면 당직사관과 당직병의 관계라고 보면 되겠다.
김중위는 나를 유난히 좋아하였다 또한 부담없이 부릴 수 있기에 나를 대대부관으로 지목하였고, 비번인 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울면서 다시 땀내나는 전투복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전투조끼와 탄띠를 결속하였다. 눈치빠른 이일병은 잽싸게 총기함에서 나의 총기와 방독면을 떡하니 셋팅하였다.
"아나 오늘 일찍 잘려고 했는데...."
연신 투덜거리며 대대 지휘통제실로 내려갔다. 나의 등 뒤로는 소대원들이 수고하라며 힘차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이것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지휘통제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중위가 웃으며 나를 반겨 주었다.
"오우 가츠 맨~! 왔썹 맨~!"
"아흑! 왜 하필 접니까?"
"너라면 왠지... 내가 편할 거 같애! 앜ㅋㅋㅋㅋ"
"오늘 무조건 야식은 피자와 통닭입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다!"
"아나 쪼잔하지 말입니다! 화끈하게 사줘야지! 조건이 뭡니까?"
"이따가 5대기 점검할 때 잡히지 마라!"
그랬다! 김중위에 나에게 내건 조건은 5대기 점검시 잡히지 마라는 거였다. 예전에 5분대기편에서 작성하였는데, 당직사령의 임무 중 하나가 5분대기조를 점검하는 것이다. 보통 비상상황을 걸어가지고 그들의 출동상태와 임무숙지 등을 확인한다.
비상상황은 주로 거수자 출현이다. 하지만 훈련이기에 당연히 거수자는 없다. 고로 대대부관이 주로 거수자 역할을 한다. 김중위는 내가 5분대기조에게 잡히지 말고 도망다니라는 조건을 건 것이다. 사실, 그들도 병사고 나도 병사이기에 서로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쉽게 쉽게 잡혀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야식 앞에서는 전우도 없다!"
어느덧, 밤이 깊었고 점호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5분대기조도 점호를 취하고 취침을 해야하기에 대개 점호전에 점검을 한다. 물론, 시간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김중위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무전기를 들고 지휘통제실 앞으로 나갔다. 나에게는는 대대탄약고로 가서 숨으라고 하였다.
이번주 5분대기조는 옆중대인 6중대였다. 바로 옆 막사이고, 음료수 자판기를 같이 사용하기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차라리 그게 낫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밉겠지만, 그래도 안면이 있으니 이해해줄거야! 나는 절대 잡히지 않을거다! 후훗~!
"5대기 비상 5대기 비상! 대대탄약고 거수자 출현!"
김중위는 5분대기조에게 무전을 날렸고, 6중대 막사 앞에서는 뛰쳐나오는 병사들로 일대 장관이었다. 잘 훈련된 이기자 용사들은 신속하게 대형을 갖추고는 대대탄약고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가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앞쪽부터 병장, 상병, 일병, 이등병순이다. 맨날 시체처럼 누워있는 병장들이 실제 상황에서는 단연 발군의 스피드와 작전수행능력을 발휘한다. 역시 짬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대대탄약고 주변에서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안전하게 숨을 곳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순식간에 잡힐 것이다.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당당하게 대대탄약고 정문 앞에 서있기로 하였다. 곧 5분대기조의 수색 1조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안면있는 얼굴이었다. 수색 1조의 분대장은 나를 발견하더니 말을 걸었다.
"가츠아저씨! 거수자임?"
"아님!"
"여기 왜 있음? 수상한데?"
"대대탄약고 출입일지 연대에 보고해야 된다길래 확인하러왔음!"
"그럼 거수자 누군지 알아요?"
"아까 보니깐 당직사령님이 작전계원 아저씨에게 뭐라고 하던데!"
"오케이 탱큐베리감사! 거수자는 작전계원이다! 고고씽!"
그시간 작전계원 아저씨는 지휘통제실에서 훈련문서를 만들기 위해 연신 컴퓨터를 두들기고 있었다. 5분대기조가 그를 잡을려고 한다면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나를 잡을 생각도 안할 것이고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완전범죄다! 내심 고생하는 그들이 미안하였지만, 나는 야식이 너무 간절하였다. 나중에 커피사줄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먹고 살아야지!
나에게 속은 그들을 바라보벼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데, 아뿔사! 분대장과 제대로 눈이 마주쳤다. 자칫 모든게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절대 눈동자가 흔들리면 안된다. 분대장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려고 하였는데, 눈동자가 흔들리고 말았다. 어흐흫흑ㅜㅜ
"당신 거수자지!"
"우하하하하!"
나는 큰소리로 웃으며, 그들을 밀치고 연병장을 향해 도망갔다. 약이 바짝 오른 그들은 나를 잡기위해 뒤쫒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각종 화기와 장비로 무장한 그들보다는 내가 빠르다. 그러나 그들은 머릿수가 많다. 곧 다른 곳을 수색하던 나머지 인원까지 합류하였고, 30여명의 완전무장한 군인들은 나를 잡기위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가츠아저씨 왜그래? 군생활 하루 이틀하는 거 아니잖아!"
"미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야!"
"잡으면 죽일거야!"
이미 그들은 포승줄을 풀어서 카우보이 마냥 윙윙 돌리고 있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정면에 수색 2조가 일제히 나타나더니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눈빛은 흡사 독이 바짝 오른 맹수같았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제압하였다. 그들은 나를 땅바닥에 눕히고는 포승줄로 손과 발을 꽁꽁 묶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는 그냥 잡았다고 치고 넘어가는데, 그들도 제대로 독이 올랐나 보다.
"아아 님하 아파요! 갑자기 왜 포승줄이예요! 아아 살살!"
"웃기네! 그러길래 왜 도망가! 소대장님 그냥 사살하면 안됩니까?"
".............."
저 멀리서 포박당하고 있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김중위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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